12.3 내란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 내란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의 시험대였다. 한국 시민들 덕분에 이탈했던 민주주의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지난 반년간 유지되던 긴장감이 사라지자 이런 질문이 불쑥 머리 속을 헤젓는다. 한국 같은 선진민주주의 국가에서 발생한 친위쿠데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파시즘 운동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아닐까? 윤석열의 쿠데타는 실패했다, 하지만 대중운동으로서의 파시즘은 몸을 막 풀기 시작했다. 파시즘에 대한 이해가 더욱 갈급해지는 시기다. 파시즘의 심리에 관한 몇 권의 책을 펼쳐본다.
파시즘의 특징은 운동성에 있다. 일반적 독재체제는 완벽히 수동적인 국민을 원하고 양성한다. 파시즘은 대중들의 지지와 선택을 받는다. 권력이 개인을 얼마나 파괴할 수 있는지 한국 현대사에서 보아온 사람들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모난돌이 되지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수동적'으로 권력에 협조한다. 수동적이기만 하던 대중들 일부가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매우 '자기파괴적'이다. 지지후보가 당선된 대선을 부정선거라 주장하는 태극기부대는 결코 자신들의 모순을 논리적으로 해결하려들지 않는다. 극우화 정향을 보이는 20·30대 남성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저 타자의 욕망이 좌절되는 것을 보고자 할뿐이다. '펨코남'이라 불리는 커뮤니티 청년 유저들이 원하는 세상은 여성, 노동자, 장애인들의 '능동성'이 좌절되는 것이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두를 혐오, 증오하는 자기파괴적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것을 알아보고자 20세기 최고의 사회심리학자로 평가받는 에리히 프롬의 책 <건전한 사회>(김병익 옮김, 범우사 펴냄)를 펼친다.
프롬은 인간의 건전한 욕구들을 충족시키는 시스템으로 사회가 설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사회가 건전한 사회다. 프롬은 인간 존재 자체로부터 파생되는 욕구들이 있다고 말한다. 다양한 욕구 중에서 내란사태와 관련해 주목해야하는 것은 '초월'을 지향하는 욕구다. 초월은 개별인간으로서 갖게되는 인간적 한계를 돌파하려는 욕구다. 프롬은 인간의 이성은 축복이자 저주라고 말한다. 이성 때문에 동물적 감각만으로 편안하게 살아갈 수가 없다. 프롬의 말이다.
"인간의 일생은 그의 종족의 생활양식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살아질' 수 없고 그 자신이 '살아야'하는 것이다. 인간은 권태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며 또한 낙원으로부터 추방된 느낌을 갖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간은 또 그 자신의 존재가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하나의 과제이며, 자기는 그 과제로부터 도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유일한 동물이다."(<건전한 사회>인용)
자유를 추구하는 욕망과 동물적, 자연적 결합을 추구하는 욕망을 늘 투쟁한다.
"우리는 두 개의 서로 모순되는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는 자궁으로부터 즉 존재의 동물적 형태로부터 더욱 인간적인 존재로 나아가려는 경향, 다시 말해 속박으로부터 자유로 향하는 경향이며 또 하나는 자궁으로, 자연으로, 확실성과 안정을 향해 되돌아가려는 경향이다."(상기책 인용)
이성의 존재로 인해 인간은 불편하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 이상의 무엇을 향한 결합을 추구하고 그 결합을 통한 초월을 욕망한다. 결합의 대상으로는 크게는 국가와 민족, 작게는 태극기부대와 극우 커뮤니티 등이 있을 것이다. 결합해서 자신 이상의 존재가 되려하지만 쉽지않은 과제다. 자신보다 더 큰 존재와 결합해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초월하려는 욕망은 많은 경우 좌절한다. 더 큰 자기가 되려는 초월이 좌절되는 지점에서 파괴성은 발생한다. 태극기부대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폭력성이다. 프롬은 이렇게 콕 집는다.
"창조할 능력이 없고 사랑할 능력도 없을 때 어떻게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문제를 해결하는가, 그럴 때에도 초월하려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즉 생명을 창조할 수 없을 때에는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인간이 자신을 초월하지 않을 수 없을 경우에 놓일 때 선택하는 궁극적인 길은 창조하느냐 파괴하느냐, 사랑하느냐 미워하느냐 하는 것이다."(상기 책 인용)

빌헬름 라이히의 <파시즘의 대중심리>(황선길 옮김, 그린비 펴냄)은 파시즘 이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책이다. 칸트와 헤겔이라는 희대의 천재를 배출한 나라에서 등장한 파시즘은 모두에게 너무나 낯선 것이었다. 20세기 인간 이성이 만개하던 근대 국가 독일에서, 당대에 가장 앞선 민주주의를 구현하던 바이마르 공화국에서의 파시즘의 등장은 지식인들을 절망하게 만들었다. 라이히는 파시즘의 원인을 대중의 심리적 성격에서 찾는다.
"파시즘은 권위적인 기계문명과 이 문명의 기계론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인생관의 억압을 받은 인간이 지니는 기본적인 감정적 태도이다. 우리 시대 인간들의 기계론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성격이 파시스트당을 만든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파시즘의 대중심리> 인용)
"파시즘은 보통 알려진 것과 같은 순수한 반동적 운동이 아니라 반역적 정서와 반동적 사회사상의 결합이다."(상기 책 인용)
지식인들은 파시즘 추종자들을 이해하기 어려워 한다. 자신이 당선된 선거에 대해 부정선거라 말하는 주장에 대해서도 논리적 모순을 갖지 않는다.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 파시즘에서 담론의 논리적 정합성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대중의 사회적 심리에 맞는 주장인가가 핵심이다. "히틀러가 대중심리에 끼친 영향력을 연구하려면 지도자 또는 어떤 이념의 주창자가 지닌 개인적 관점이나 이데올로기 또는 강령은 광범위한 계층에 퍼져있는 대중들의 평균적 성격구조에 조응해야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회비평가들은 파시즘의 등장을 불평등에서 찾는다. 라이히에 따르면 파시즘은 불평등이 아닌 대중들의 건강하지 못한 심리 상태의 귀결이다.
라이히가 말하는 핵심적 내용은 이러하다. 라이히는 건강한 성(性)이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침윤된 가족구조 안에서 억압되고 좌절된다고 말한다. 철학자 알튀세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지속시키는 장치로 교육기관, 미디어, 교회 등을 거론하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 말했다. 반면라이히는 집안의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권위에 대한 수동적 인간을 양성해낸다고 보았다. 가부장적 권위에 의한 성억압은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으로 이어진다. 성이 억압되면 그 에너지는 부정적 공격성으로 전환된다. 복종을 통해 개인은 자기혐오와 공격성 등의 파괴적 성격을 내면화한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하의 가족구조 안에서 발생하는 성억압은 공격성, 죄의식 등으로 이어진다. 가부장적 권위, 불합리한 권위에 대해 자발적 복종의지가 내면에 형성되는 것이다. 권위에 대해서 충실하게 복종하는 이들은 동료인 시민, 소수자들에 대해서는 적의를 드러낸다. 윤석열 지지의 한축이 기독교세력인 것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권위에 대한 친연성과 목사를 정점으로 하는 가부장적 조직운영, 보수적 성이데올로기는 이들을 특징짓는 징표들이다.
성(性)에너지의 자연스런 해소가 좌절될 때 사람은 공격적으로 변한다는 라이히의 주장을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이해해보자. 먼저 라이히가 말하는 성(性)을 성행위만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프로이트가 말한 에로스가 섹스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의 본원적 욕구이듯 라이히의 섹슈알리타트(sexualität)도 성욕을 포함한 인간의 자연스런 본능을 말한다. 민주주의가 절차적 측면에서 고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과 사회조직이 전근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왜일까? '지랄 총량의 법칙'이란 말이 한동안 회자되었다. 대다수 한국 조직마다 '지랄'을 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전변하는 경우도 흔하다. 간호사 사회에서 '태움'은 왜 지속될까? 한국 간호사 출신의 뉴질랜드 교민 유튜버('간호하는 채널 joy')는 한국·뉴질랜드 간호사 경험을 비교하면서 조직 문화의 차이를 말한다. 서로를 챙겨주고 배려하는 문화가 그에게는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던 것같다. 기업 조직 문화조차 한국보다 중국이 더 민주적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넷플릭스에서 가장 폭력적 사회를 형상화하는 나라는 단연코 한국과 인도가 제작한 영화·드라마였다. 중앙대 김누리 교수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68 혁명'의 부재에서 찾고 있다. 사회문화 전체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지 않고는 꼰대 문화로 지칭되는 사회적 억압의 구조는 소멸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개인들을 불행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사회심리학자 김태형은 이재명이란 천재적 행정가의 등장으로 청년 남성들의 불만이 많이 사그라들 것이라 전망한다. 필자도 동의한다. 다만 파시즘에 조응하는 대중의 정서는 수면 아래에서 계속 꿈틀댈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가부장적 사회 구조가 부과하는 부정성이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것은 그 부정적 힘이 경제 성장에 의해 희석되어왔기 때문이다. 한국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성장률 역시 낮아지게 되었고 이제는 그 '부정성'을 충분히 희석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닥치자 사람들의 내면이 파시즘에 반응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세계 체제론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외부의 자원을 내부로 수혈하면서 유지·확장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외부가 21세기 중반이 되면 사라질 것이라 예측한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경우 필연적으로 저성장에 허덕이게 된다는 의미다. 사회의 보상체계는 두 가지로 구성된다. 물질적 보상과 심리적 보상이다. 심리적 보상은 심리적 만족감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물질적 보상에는 뛰어났을지언정 심리적 보상에는 완전히 실패했다. 혐오와 극우화가 본격화된 것은 한국이 경제·문화적으로 세계의 찬사를 받던 문재인 정부 시기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최정점에 있었을 때조차 우리는 그 '부정성'을 극복해내지 못했다. 물질적 보상 못지않게 아니 훨씬 중요하게 심리적 보상에 초점을 맞춘 보상 시스템을 기획해야 한다. 물질적 보상을 위한 파이를 만들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심리적 안정감이 국민들에게 제공되지 않을 때 핵가족 사회에서 외로운 사람들은 파시즘에 공명하기 시작할 것이다. 파시즘을 깊게 공부해보고 싶은 분들에게 두 권의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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