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채 상병 수사 '외압' 마지막 퍼즐은 '尹 지시'?

군인권센터 주장 "모든 정황 맞아 떨어져 … 외압 장본인은 윤석열 대통령"

고(故)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이 윤석열 대통령의 구체적 지시로부터 시작됐다는 의혹이 나온 가운데, 군인권센터가 "해당 의혹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라며 "외압의 시작은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과 김형남 사무국장은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정훈 대령의 수사결과 보고까지 조용하던 국방부는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후 긴급대책회의까지 열며 외압을 시작했다"라며 "외압에 대통령의 개입이 있었다는 것이 정황상 거의 확실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앞서 전날인 27일 MBC <스트레이트>는 '지난 7월 31일 대통령 주재 회의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사단장 혐의가 적시된 수사결과를 보고 받은 윤 대통령이 국방부장관을 질책했다'는 요지의 비공개 문건 내용을 공개했다.

매체에 따르면 당시 윤 대통령은 안보실 참모에게 "사단장 등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할 예정"이라는 보고를 듣고는 이종섭 국방부장관에게 연락해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라고 질책했다.

7월 31일은 국방부가 당초 예정돼 있던 채 상병 수사 언론브리핑을 급작스럽게 취소한 날이다. 이후 국방부는 그 전날인 30일 국방부장관과 해군참모총장이 직접 결재한 '(사단장 혐의가 적힌) 수사결과 이첩'을 중단하려 했고,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이 수사결과를 원안 그대로 경북경찰청에 이첩하자 국방부 수사본부 및 검찰단 등을 통해 해당 자료를 회수하고 박 대령을 항명 혐의로 입건했다.

박 대령 측은 국방부장관이 결재까지 마쳐 경찰로 이첩 예정이었던 수사결과에 대해 '국방부의 태도가 하루 만에 갑작스럽게 변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수사 외압 의혹을 제기했다. 여기에 '대통령실의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은 지난 7일 <아시아투데이>가 군 관계자의 제보를 통해 최초 제기한 바 있다.

당시 매체는 "31일 오전 대통령실 회의에서 '해병대 1사단 익사사고 조사결과 사단장 등 8명을 업무상과실치사혐의로 경찰에 이첩할 예정'이라는 보고가 있었고, 이후 윗선 누군가가 이 장관에게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는 취지의 지적을 했다는 이야기를 군 고위인사로부터 들었다"는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는데, 이는 MBC의 27일 보도와도 내용적으로 일치한다.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군인권센터 김형남 사무국장(왼쪽)과 임태훈 소장(오른쪽) ⓒ프레시안(한예섭)

이날 군인권센터는 "채 상병 수사 외압 정황을 타임라인 순으로 정리해본 결과, 7월 31일을 기준으로 급변한 국방부의 태도엔 대통령실의 개입이 있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임 소장은 특히 "MBC <스트레이트>는 7월 31일 오전에 대통령실에서 대통령 주재 회의가 열렸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하였으나,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7월 31일 오전 11시경 대통령실에선 윤 대통령이 주관한 비공개 수석비서관 회의가 열렸다"라며 "윤 대통령은 이 회의에서 '사단장 등 8명을 업무상과실치사혐의로 경찰에 이첩할 예정'이라는 보고를 받고 격노한 것으로 알려진다"고 주장했다.

7월 31일 전후 국방부의 태도 변화를 시간 순으로 나열할 때 '외부 개입'의 정황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국방부 측은 현재 수사결과를 갑작스럽게 변경하려 한 것을 두고 '수사결과 보고 당시부터 수사결과에 의문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센터 측은 이 같은 해명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고 지적한다.

센터에 따르면 박 대령은 7월 30일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국회 국방위원장, 여·야당 간사, 보좌진 대상 설명회'를 준비하라고 지시 받는데, 이는 당초 예정에 없던 설명회였다. 임 소장은 "예정에 없던 설명회를 국회를 상대로 하라고 지시한 것은 그만큼 수사결과가 만족스러웠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라며 "장관이 시종일관 주장하는 대로 수사 결과에 의문점이 있었다면, 예정에 없던 국회 설명회를 지시한 건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해병1사단의 임성근 사단장에 대한 군 내부의 조치 변화도 '앞뒤가 안 맞는' 정황으로 제시됐다. 임 사단장의 경우 박 대령의 수사 원안엔 혐의가 적시됐었으나, 현재 국방부 측 조치로 혐의자에서 제외된 상황이다.

센터에 따르면 사단장 혐의가 적시된 수사결과가 보고된 7월 30일 오후 해병대 사령관은 국방부장관, 해군참모총장 등과 사단장의 인사문제를 상의했고, 이후 사령관은 사단장의 보직심사절차를 진행하는 것으로 결재를 받았다. 센터는 "이때까지만 해도 장관, 참모총장, 사령관 모두 사단장 책임을 인정하고 수사 이첩에 따른 후속 인사조치도 계획하고 있던 것"이라며 다음날인 31일부터 국방부가 보인 태도변화를 지적했다.

센터 측은 지난 18일 <프레시안>과의 질의응답에서도 전현직 해병대 장성급 간부 등의 제보를 통해 △수사단이 수사 원안을 확정했을 당시엔 과실치사 혐의가 확정된 임성근 해병1사단장 보직심사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며 △이를 인식한 임 사단장은 군 내에서 불만을 표했고 △이후 '사단장 혐의 적시'를 둘러싼 일련의 외압이 시작됐다는 정황을 파악했다고 밝힌 바 있다.

▲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군사법원에서 열린 채상병 순직 사건 '해병대 항명' 관련 군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에 출석하기 위해 국방부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황을 종합하면 △국방부는 7월 30일까지는 박 대령의 수사 원안을 그대로 수리하고 사건을 경찰에 이첩하려 했지만 △7월 31일 오전을 기점으로 예정된 언론브리핑을 취소하는 등 갑작스럽게 수사 절차에 변화를 일으켰고 △내부적으로 보직해임 절차를 밟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 임 사단장 인사조치 또한 이날을 기점으로 변화했다는 말이 된다.

센터 측은 이 '7월 31일 변화의 기점'이 바로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나온 '대통령 지시'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센터에 따르면 당일 오후 해병대사령부에선 긴급한 대책회의가 열렸고, 국방부에서도 당일 우즈베키스탄 출국이 예정돼 있던 국방부장관이 직접 주재한 긴급대책회의가 열렸다. 국방부장관은 이 자리에 해병대 부사령관을 배석시키기도 했다. 이후 당일 오후 2시 51분 경 국방부차관에게 사건 재검토를 지시했다.

임 소장은 "만약 장관이 별다른 외압 없이 (자신의 판단으로) 수사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면 출국을 앞두고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해병대부사령관을 소환하면서까지 대책마련에 부심했을 까닭이 없다"라며 "대통령이 개입하지 않고 국방부장관 주장대로 장관 스스로 사건 수사결과가 이상하다고 판단하여 결재를 번복한 것이라면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통령이 격노해서 장관을 질책했다면 갑자기 긴급대책회의가 열리고 장관 등이 이전에 내린 모든 판단이 뒤집힌 상황이 쉽게 이해될 수 있다"라며 "결국 이 사건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사망 원인 규명을 방해하기 위해 권력자가 조직적으로 수사에 개입한 권력형 범죄"라고 주장했다.

이날 센터 측은 "대통령을 위시한 수사 외압의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라며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 실시 △특검 구성 등을 국회에 요구했다. 군인권센터가 사건 관련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낸 국회국민동의청원은 지난 26일 청원인 정족수인 5만 명을 달성해 현재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한편 이날 임 소장은 "사단장을 처벌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미리 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면, 사단장을 혐의대상자에 포함해 경찰로 이첩하겠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격노할 까닭이 없다. (윤 대통령은) 이미 보고받기 전부터 사단장을 수사 선상에 올리면 안 된다는 조언을 누군가로부터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라며 윤 대통령 결정에 대한 '제3자 개입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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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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