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압수수색하려던 '쿠팡 노동자'를 만나다

[기고] '왜 여기서 이런 일 하냐'는 질문에 '나는 이게 좋아요'라고 답하기 ②

한국사회에서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에 '물류센터 노동자입니다'라고 답하면, 다른 직장을 찾기 전 잠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퇴직 후 용돈벌이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혹은 능력, 학벌 등이 부족한 사람들이 일하는 곳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물류센터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업무를 그저 괜찮다고 여기는 걸 넘어서 일터를 애정하고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일터를 위해 애쓰는 게 회사의 '눈엣가시'가 되어서 해고를 당한 후, 부당한 해고를 당했다며 소송을 하고 '복직 투쟁'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들이 '안 좋은 일자리'라며 수군거리는 일터로 복직하겠다고 기를 쓰고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전합니다. 로켓 배송으로 유명한 쿠팡에서 일하다가 해고되었고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2023년 8월 22일, 경찰은 쿠팡 물류센터 노동조합의 최효 인천분회장, 정성용 지회장에게 압수수색을 하려 했다. 당시 최효 분회장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집에 있지 않아서 압수수색을 당하진 않았다. '압수수색'이라는 단어는 강압적이고 두려운 느낌을 준다. 흉악한 사람에게 행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정말 최효 분회장은 흉악하고 나쁜 사람이라서 경찰의 압수수색 대상이 되었을까. 도대체 어떤 요구를 걸고 어떤 노동조합의 활동을 했길래 압수수색까지 당했을까. 지금의 최효 분회장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땀 흘리는 노동이 싫지 않았다

2016년, 효씨가 온갖 알바를 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언니와 효씨를 강제로 독립시켰고 자매가 같이 사는 것도 아니었기에 효씨는 알아서 살아남기 위한 생계형 알바를 해야 했다. 레스토랑, 감자탕집 등 식당에서 서빙하고 세탁소에서 옷을 개서 배달하고 휴대폰 공장에서 불량 검사도 했다. 일은 고되고 하기 싫을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효씨는 일이 나쁘지 않았다. 플라스틱이 녹은 냄새와 반질반질한 기계를 만지는 촉감은 공장에 애정을 갖게 했고 감자탕집 사장님이 맨날 트는 90년대 노래와 소박한 인테리어가 만드는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효씨는 아등바등 일하면서도 땀 흘리는 노동이 싫지만은 않았다. 2017년 10월, 사람들 대하길 어려워하는 효씨에게 친한 언니가 일할 곳을 추천해주었다. '여긴 너 일만 잘하면 사람들 상대하는 건 신경 안 써도 괜찮아.' 쿠팡 물류센터였다.

2017년 10월 27일, 효씨가 처음으로 쿠팡 덕평 물류센터로 출근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쿠팡 물류센터는 난장판이었다. 물건은 많은데 차분하게 정리해서 둘 공간이 부족하니 사람들이 선반에 마구 욱여넣었다. 그리고 당시엔 공정을 사람들이 나눠서 맡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모든 공정을 함께 했다. 어떤 물건이 필요한지 알아보는 것부터 포장까지 내가 집은 물건은 내가 책임지는 구조였다. 그러니 작업 환경은 어수선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효씨는 그게 좋았다. 어릴 때부터 산만해서 항상 책장에 물건을 욱여넣고 책을 이중으로 꽂기도 했다. 산만한 성격의 사람이 산만한 장소에서 산만한 일을 하는 건 성격에 맞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너무 정신 사나워서 힘들 거 같다고 하지만, 차분하고 잘 정리된 공정에서 일하는 게 좋은 사람이 있다면 산만하고 어수선한 환경에서 일하는 게 좋은 사람도 당연히 있는 법이다. 효씨는 그런 환경이 좋았다. 효씨는 가끔 아르바이트 어플에 검색해서 쿠팡 알바 후기를 찾아봤는데 그때마다 '여기 한 번 온 후로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밑바닥으로 살기 싫다'같은 후기를 보면 기분이 나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차원의 기분 나쁨도 있지만 내게 애정이 있는 직업과 공간을 함부로 말하는 게 불쾌했다.

▲천막 앞에서 소식지를 돌리고 있는 최효 씨 ⓒ이훈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집행위원

봉사라는 이름의 당연한 공짜 노동

약 4년간 효씨는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자로 일했다. 목사님인 아버지 덕에 효씨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과 친밀했다. 음악 공부도 재밌었고 악기를 다루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가난한 20대'가 집에 피아노를 두고 산다는 건 참 어려웠다. 효씨는 피아노가 치고 싶어서 주변 교회들에 찾아가서 자신을 반주자로 써달라고 했다. 그렇게 효씨는 평일엔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고 주말엔 자신이 원하는 노동을 했다. 약 3년쯤 반주자로 일했을 무렵, 효씨는 고민이 됐다. 수년간 교회를 다니며 지켜보니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교회에서 하는 일이 조금 이상했다. 누군가는 주일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일주일 중 하루를 온전히 교회에 쏟았다. 누군가는 사람들이 예배가 끝나고 와서 당연하게 먹을 밥을 차렸다. 누군가는 교회를 구석구석 청소했고 누군가는 주기적으로 교회 화장실을 뽀득뽀득 닦았다.

그러나 누구도 돈을 받지 않았다. 물론 '봉사'하겠다며 자원해서 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다들 '네 할 일이잖아?'라고 '정기적으로 열심히 무료로 하는 노동'을 당연시하는 건 이상했다. 2019년 1월, 효씨는 중고등부 담당 전도사님을 만났다. "전도사님, 제가 3년간 공짜로 피아노 반주를 했는데 이건 좀 아닌 거 같습니다. 금액이 적더라도 돈을 받고 싶습니다" 효씨는 잘 안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며 큰 용기를 내서 말했는데 상황은 생각보다 꽤 잘 풀렸다. 다음 달, 효씨의 통장에 10만원이 들어왔다. 효씨는 '내가 해냈어. 내가 내 권리를 주장했어'라는 뿌듯함이 들었다.

노동조합이 생겼다고?

2019년 말, 효씨는 퇴직금을 받고 쿠팡 덕평물류센터를 그만두었다. 물론 퇴직금은 많지 않았기에 그걸로만 생활한다는 건 말도 안 됐다. 오전엔 세탁소 아르바이트를 했고 가끔은 CJ 물류센터, 쿠팡 인천센터도 단기로 다녔다. 1년간 일도 하고 공부도 하다가 2021년, 인천으로 이사오면서 자동차 공장을 다녔다. 플라스틱 사출 공정에서 불량을 점검하는 일이었다. 3개월쯤 다녔을 무렵, 트위터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쿠팡 물류센터 노동조합의 설립을 축하하는 글을 쓴 것을 보았다. 보자마자 생각했다. '여기로 가야겠다' 안 그래도 자동차 공장을 그만두고 싶어서 고민하던 차였다. 2021년 6월, 인천1센터로 이직했다. 효씨는 쿠팡으로 오자마자 노조 사이트에서 가입 신청을 했다.

▲14일 오후 서울 쿠팡 잠실 본사 앞에서 열린 쿠팡 노동자 투쟁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물풍선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며칠 후 전화가 왔다. 현재 쿠팡물류센터 노동조합 지회장인 정성용이었다. 당시 성용씨는 인천분회장이었는데, 조합원 모임이 있으니 만나자고 했다. 가보니 약 8명의 조합원이 있었고 다같이 쿠팡에 대한 불만과 노조에 대한 기대를 말했다. 효씨는 현장 내 위계적이고 차별적인 문화를 바꾸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쿠팡 물류센터 내 차별적인 문화는 심각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단기 노동자를 '알바'라고 부르며 반말로 대했다. "야, 알바 저쪽으로 가봐", "알바들은 일 못하잖아"라며 대놓고 무시했고 청소 시간에 정규직끼린 친절하게 쓰레기봉투를 주고 받다가도 단기 노동자에겐 말도 없이 봉투를 던졌다. 비정규직 차별이었다.

단기 노동자들이 출근하면 남자는 전부 힘쓰는 라인으로, 여자는 전부 포장 라인으로 보냈다. '남자는 힘이 세니까', '여자는 꼼꼼하니까'라는 낡은 고정관념에 기반한 것이었다. 성차별이었다. 물류센터엔 (당연하게도) 성소수자도 있었다. 그들 중 소위 '티나는 성소수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대놓고 혐오의 대상이 됐다. 지나가기만 해도 사람들은 수군거리거나 입에 올리기조차 꺼려질 법한 폭력적인 말도 서슴치 않았다. 뒷담화만 당하면 운이 좋은 수준이었다. 성소수자 차별이었다. 효씨도 단기 노동자로 오래 일했기에 "거기 까만 모자 이리 와봐"라던가 '여자는 포장 업무야'의 프레임 속에 갇히기도 했고 센터에서 집 근처까지 남성이 쫓아오는 스토킹도 겪었다. 효씨는 쿠팡은 변해야 할 게 아주 많고 모두 중요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의 최우선순위는 수평적인 문화 구축이라고 한다.

사외노조의 활동은 조직 문화에 위배된다

2022년 2월, 인천5센터의 조합원이 계약 해지되었다. 조합원은 자신이 왜 해지되었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데 이유가 너무 알고 싶다고 했다. 조합원이 부당하게 해고되었을 가능성을 노조가 무시할 순 없기에, 해당 조합원과 효씨, 또 다른 세 노조원은 함께 인천5센터를 찾았다. "왜 이 사람이 해고됐는지 말해달라. 우리는 싸우러 온 게 아니다. 대화하러 온 거다"라며 해고 사유를 질문했다. 그러나 담당자는 "저희는 해고 사유를 말해드릴 의무가 없는데요?"라며 무시했다. 다섯 사람은 센터 안으로 들어가서 센터장을 찾았다. 무리한 요구는 아니었다. 해고된 사람이 해고한 사람에게 왜 나를 해고했냐고 묻는 것뿐이었다.

▲미국 뉴욕증시 상장사인 쿠팡의 올해 2분기 매출이 58억3천788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증가하면서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쿠팡이 제시한 분기 평균 원/달러 환율 1천314.68원을 적용하면 매출은 약 7조6천749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다. 사진은 9일 서울 시내의 한 주차장에 세워진 쿠팡 배송차량들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업무방해, 무단침입으로 징계를 받았다. 효씨도 2개월 감봉을 당했다. 또 다른 노동조합 투쟁도 징계 사유로 둔갑 되곤 했다. 효씨는 물류센터 내에 냉난방장치를 설치하라는 피켓팅을 하기 위해 퇴근 시간에 앞줄에 서서 선전전을 하고 있었다. 당시 겨울이었는데, 센터 내 온도가 너무 낮아서 노동자들이 저체온증으로 고생하고 있음을 노조가 인지했다. 효씨도 이를 바꾸기 위한 피켓팅을 한 것이다. 효씨에게 관리자는 찾아와서 "최효 사원이 계속 이러면 전체 사원들의 퇴근 시간을 늦추는 방법밖에 없습니다"라며 협박했다. 그러면서 "이건 회사에게 허락받지 않은 사외노조의 활동입니다"라며 활동을 제한했다. 효씨는 "태어나서 사외노조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다"며 강하게 맞섰다. 그리고 2022년 6월 30일, 효씨는 징계를 받았던 이력과 함께 '최효 사원은 조직 내 융화가 안 된다'는 사유로 해고됐다.

더워서 일 못해요

해고 후 약 13개월이 지난 올해 8월, 쿠팡 물류센터 노조는 인천4센터 정문 옆에 천막을 쳤다. 천막의 이름은 '폭염시기 온도감시단 인천출장소'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조의 상황에 따라 효씨는 인천분회장이 되었고 인천에 친 천막에 거의 상주하며 조합원들에게 8월 1일 하루 파업을 함께 하자고 독려했다. 수년간 선전전을 진행한 곳이지만 이렇게 사원님들의 반응이 좋은 것은 처음이라며 다소 신기하게 여겼다.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와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폭염 속 물류센터 현장을 고발한다 - 온도감시단 활동 보고 및 서명운동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위터는 21세기형 노동 교실

효씨를 인터뷰하면서 다른 노동자 인터뷰와 다르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중 가장 유의미하게 느껴진 건 트위터를 통해 노동자 의식이 생겼다는 점이다. 실제로 효씨는 27살에 '노동조합'이란 단어를 처음 들은 사람이었다. 노동 수업 들은 적은 당연히 없고 주변에 노동조합원도 없었다. 그저 '트위터'라는 얕지만 쏙쏙 박히게 알려주는 '내 손 안의 선생님'이 있었던 것이다. 파리바게트 노동조합이 싸우는 소식을 통해 '노동조합'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공짜 노동이 나쁘다고 알려주어 교회에서 권리를 주장하도록 해준 것도, 쿠팡 물류센터 노조가 생겼음을 알게 해준 것도 모두 트위터라는 '신박한 선생님'이었다. 언젠가 쿠팡 물류센터에 쉬는 시간과 에어컨이 생기고 해고자는 복직되고 수평적인 문화까지 자리 잡히는 날, 효씨가 '이 영광을 트위터와 나누고 싶습니다.'라고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리는 걸 상상한다. 그리고 그 글을 보는 누군가 '우와 노동조합이란 게 있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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