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시대가 돌아오고 있다

[복지국가SOCIETY] 위기의 대한민국, 시민은 무엇을 할 것인가?

헤겔은 "역사는 단계별 발전과정을 거치며 마치 한 사람의 생이 나고 성장하며 늙어가는 과정과 같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관념론적 사관에서 역사는 이성의 지배를 따르며, 자유라는 목적지를 향해 점진적으로 진보한다고 보았다. 믿을 뻔했다. 아니, 지금도 필자는 사고의 밑바탕에선 이 말을 여전히 신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귀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이미 챗 지피티(GPT)라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등장했다. 3.0, 3.5버전에 이어서 4.0버전을 지나고 있는 챗 지피티는 이제 어디까지 나아갈지도 예측이 불가하다. 이 같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생산성이 비례적으로 향상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유토피아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전환될까. 그럴 리는 없다.

'기술발전에 따른 유토피아 구현'은 왜 불가능할까. 제2차 산업혁명에 따른 석유문명의 가속화시대와 제3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정보혁명 시대를 거쳐 오면서 불거진 '사회적 격차' 문제의 경향을 보자. 기술의 폭발적 발전에 따른 사회적 과실 분배로 빈부의 격차와, 새로운 계급의 고착화·세습 문제는 얼마나 극복 되었는가.

1차 산업혁명기의 빈부격차가 10:90에 가까웠다고 한다. 반면 2차 산업혁명기에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병폐인 경제공황과 두 번의 세계대전 그리고 동·서 이념대립에도 불구하고 서구사회의 복지정책 확대와 평등을 향한 노력으로 20:80 정도로 격차가 완화됐다. 수치적으로 보면 빈부의 격차가 완화되고 있는 같아 '역사는 정으로 발전 하겠구나' 하는 착각을 갖게 한다.

한편 1991년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뜻밖에 해체되면서 동구권 전체가 그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를 두고 서방은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싸움에서 자본주의가 최종 승리한 것으로 자평하며 의기양양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였던 크리스 하먼은 "1991년 소련 붕괴는 사회주의의 몰락을 뜻하는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종류의 자본주의가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로 전환된 '게걸음'이었을 뿐"이라고 일갈 했다. 여하간 동구권의 몰락은 서방의 '신자유주의' 사조의 등장을 촉발하였고, 이와 더불어 정보혁명이라는 제3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게 된 글로벌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라는 깃발아래 세계를 다시 재구조화 했다.

문제는 신자유주의적 글로벌자본주의 물결이 휘졌고 지나간 사회에, 중산층의 급격한 몰락과 복지의 축소라는 공통된 상흔이 남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상흔들을 통해서 '기술의 발전이 역사의 정의로운 발전으로 진전될 것'이라는 희망은 여지없이 좌초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금 제4차 산업혁명을 논하기 전에, 우선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글로벌자본주의의 폐해를 어떻게 극복해야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제4차 산업혁명기의 사회에서는 단 1%의 가진 자(부와 권력)가 99%의 가지지 못한 자를 오롯이 통제·지배하는 것을 보게 될 수도 있다. AI(인공지능) 등 신기술은 더 효과적이고 정교한 지배와 통제를 가능케 하고. 가진 자의 숫자가 작을수록 그들의 파이는 커진다.

양극화된 계급사회의 고착화

사실 우리 사회는 제4차 산업혁명의 본류에 진입도 하기 전에 '1%대 99% 사회'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즉 상속받을 유산이 없는 사람이 개인의 노력과 힘으로 신분상승을 이룩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가 이미 급격하게 세습계급의 사회로 진입하였다는 것이다.

K-POP으로 유명세를 탄 '강남스타일'이란 노래가 있다. 이 노래로 '강남스타일'이란 단어는 하나의 밈처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강남'만의 '스타일'은 실제로 존재한다. 이 '강남'에는 아무나 진입할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한다. 이 장벽은 한국의 '1%'들이 만들고 있고, 우리 사회 신분 사다리의 최상부에서 철옹성이 되어 있다.

이 장벽 카르텔의 신규회원이 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치·경제·문화의 각 분야에서 기득권을 가진 1%, 그들은 서로 얽히고설켜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기득권에 의한 모든 특권은 교육을 통해 그들의 자녀와 그 자녀의 자녀들에게로 고스란히 대물림된다.

지난 5월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도 서울대 정시 등록자 중 강남3구(강남/송파/서초) 출신이 22.1%였다. 양극화와 쏠림현상이 심각한 수준임을 방증하는 일례다. 특히 전국 의대 정시 등록자 가운데 강남3구 출신 비중은 2022년 기준으로 22.7%에 달했는데, 강남3구의 고교생 수는 전국의 3.2%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다.

성골과 진골, 양반과 상놈의 신분을 구분하고 계급을 나누는 것은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역사의 유물로만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지금도 우리는 1%의 강남과 99%의 비강남이라는 신분으로 나뉜 계급사회에 살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이 계급은 사실상 세습까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신분사회에서 '가지지 못한 99%'의 이들은 삶이 고단하기 이를 데 없다. 세계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기상이변, 물부족, 식량부족, 지구온난화, 지하수고갈 등의 환경문제 등으로 발생하는 모든 고통은 오롯이 이 99%의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1%의 사람들인 기득권 집단이 가지는 계급적 성격이 점점 공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그대로 방치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중요한 특징인 탈계급과 탈신분세습의 원리는 변질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계급주의의 극복의 역사가 이른바 자본주의 발전의 과정이었고, 탈계급주의는 탈세습신분과 궤를 같이 했기 때문이다.

극우 정부가 가져온 퇴행들

지금까지 우리사회는 이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완화에 관심을 가진,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진영의 정부를 3번 경험했다. (이 글에서 필자는 민주진영 정부를 '중도 우파 정부'로, 보수진영 정부를 '극우 보수 정부' 표현한다.편집자 주.) 그 중 두 번의 정부는 앞선 극우정부의 파탄지경의 국정난맥상을 넘겨받아 뒷수습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중도우파 정부를 이어 집권한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극우인사들은 두 번의 중도 우파 정부 동안을 '잃어버린 통한의 10년'으로 규정하였다. 그들은 절치부심하며 재탈환한 정권에서 그 기간 동안 하지 못한 사욕을 채우기라고 하듯 온갖 악행을 대놓고 자행했다. 4대강 살리기라는 기만적 선전을 통한 토건세력의 배불리기, 국정원 선거 개입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사건, 세월호 참사 축소 은폐시도 등 제동장치가 고장난 폭주 열차가 되어 치달았다.

이와 같이 집권의 목적이 오직 사적 이익추구의 극대화에 있던 극우 보수의 두 번에 걸친 집권과 그들의 본말이 뒤바뀐 국정운영은 시민들 삶의 직접적 붕괴를 부추겼다. 청년실업의 증가, 비정규직 확대, 중산층의 붕괴, 빈부격차의 심화, 2014년 30대 여성이 어린자녀들과 동반자살한 한 사건처럼 생활고에 따른 비관자살의 다발적 발생 등 무능하고 부패한 집권세력이 초래한 재앙적 사회를 두고 당시 사회엔 '헬조선'이라는 자조적 신조어까지 나왔다.

권력의 일탈적 오남용 문제도 심각한 지경이었다. 일례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2월부터 2015년 9월까지 2년여 사이 검찰수사를 받던 피의자 중에 46명이 자살을 했다. 이 수치는 2005년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일어난 피의자 자살건수 100건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수치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2년 동안 발생한 피의자 자살건수가 10년 전체 자살건수의 절반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경찰과 검찰, 국정원 그리고 또 하나의 권력기관인 '기레기'라 매도되고 있는 우리 언론은 당시 철저하게 권력에 복종했다. 그들은 조직과 개인의 사적 영달에 충실히 복무하면서 집권세력의 무능과 부패를 옹위하는 전위조직으로서의 역할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다.

결국 이러한 무능과 부패의 극우적 보수 집권세력은 들불처럼 일어난 촛불민심에 의하여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엄동설한에도 불구하고 수백만이 광장에서 부패척결과 국가적 재난에 대한 책임자처벌을 요구했고, 정권은 민주주의의 복원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저항에 투항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촛불민심의 요구를 등에 업고 다시 집권하게 된 세 번째 중도 우파 민주정부가 결과적으로 촛불민심의 기대를 허무하게 날려버렸다는 것이다. 그 결과 민주정부는 좌초되었고 수구적 과거 세력이 재집권을 이뤘다. 그들의 파렴치한 준동은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파괴적이다.

위기의 대한민국, 시민은 무엇을 할 것인가?

재집권에 성공한 수구 보수 세력은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들만이 사회의 중심세력이 되고자 하는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수구적 극우보수 세력의 안하무인격 파렴치한 준동 앞에서 우리는 87년 체제의 형식적 민주주의의 허약한 체질을 시리도록 경험하고 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공론화를 말하면 ‘빨갱이’로 몰아가는 수구 보수 세력은 언제나 존재했다. 다만 민주정부의 구성원들은 그들을 다루는 방법을 몰랐고 ‘엄중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 결과는 어떤가. 그나마 믿고 있던 87년 체제의 민주주의 체제마저도 뿌리 채 뽑혀질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지금은 엄중한 상황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의 과제는 무엇일까. 사태를 직시하자. 그리고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할 뿐'이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자.

권력의 지배양식이 그 사회의 환경을 반영할 뿐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민주적 합리성에 기반한 권력이 국가를 경영하는 정부의 정착을 위하여 필요한 제도와 원칙에 대하여 치밀하게 고민하자. 그리고 우리가 정말 원하는 민주복지국가의 모습과 역할에 대한 상을 명확하게 그리자. 이제 더 이상 성장과 경제 제일주의가 삶 자체의 목적이 아님을 알아채자.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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