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자 92명 '여자라서' 탈락, 처벌은 벌금 500만 원뿐, 왜?

'채용성차별은 실재'… 남녀 7:3으로 채용성비 조작한 신한카드 유죄

신입사원 공채에서 채용성비를 조작해 점수가 더 높은 여성 지원자를 떨어트리고 남성 지원자를 합격시킨 신한카드 법인과 인사담당자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합격 점수를 받고도 '여자라서' 떨어진 지원자는 92명에 달했지만, 선고된 벌금은 각 500만 원에 불과했다.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4단독 유동균 판사는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신한카드 법인과 전 인사팀장 A 씨(현 부사장)에게 각각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신한카드는 지난 2017년 10월 진행한 '2018 신입사원 공개채용' 당시 남녀 서류합격자 비율을 7대3으로 미리 정한 뒤 점수가 더 높은 여성지원자들을 부당하게 탈락시키고, 점수가 더 낮은 남성지원자들을 해당 인원 수 만큼 합격시켰다. A부사장은 당시 인사팀장으로 해당 채용을 담당했다.

신한카드는 당시 3720명의 지원자 중 남성 합격자 성비를 7:3으로 조정, 257명(68%)과 여성 124명(32%)을 합격시켰다.

총 지원자의 성비는 남성 56% 대 여성 45%였는데, '성비조정'에 따라 합격점수를 넘었는데도 탈락한 여성지원자의 수가 92명에 달했다. 점수대로라면 합격자 남녀성비는 남성 165명(43%) 대 여성 216명(67%)으로 오히려 역전되는 꼴이다.

이날 재판부는 "(신한카드는) 사원급 이하에서 남성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을 차별했고, 일부 여성 지원자들이 좋은 점수를 받았음에도 서류 전형에서 탈락했다"라며 "신한카드는 2009년~2010년부터 유사한 방법으로 신입공채에서 남성 지원자를 선발해왔고, 남녀차별적 채용방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도 않았다"고 판결 취지를 밝혔다.

법정에서 신한카드 측은 성비조정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사원급 성비불균형이 극심했다', '직무가 남성에게 적합했다'는 등의 변론을 펼치며 해당 행위가 '정당한 차별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전산시스템 개발이나 외부업체 영업, 야간·휴일 근무가 많은 업무가 남성에 적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남녀 고정관념에 근거한 것으로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4월 15일 KB국민은행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 및 부정입사자 채용취소 촉구 기자회견. 2018년 수사가 시작된 국민은행 채용비리 사태에선 신한은행과 비슷하게 인사팀이 신입행원 남녀 비율을 6대4나 5대3으로 정하여 채용한 정황이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바 있다. 채용비리 사태에 관여한 국민은행 소속 모 인사팀장은 남성지원자 합격비율을 높일 목적으로 여성지원자의 점수를 고의적으로 낮추는 혐의를 인정받기도 했다. ⓒ프레시안(한예섭)

현행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고평법) 제7조는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하여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동법은 해당 '차별'의 개념을 "(성별을 근거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채용 또는 근로의 조건을 다르게 하거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는 경우"로 규정한다.

다만 해당 법은 제37조의 '벌칙'에서 체용 시 차별 금지 위반 행위에 대한 양벌을 "5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만 규정하고 있어 '근본적인 문제가 고쳐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따른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까지 규정하고 있는 정년, 퇴직 및 해고에 있어서의 차별보다는 현저히 낮은 기준이다.

이번 재판부 또한 △2017년 당시 신한카드 채용과정에서 성차별로 인한 부정 탈락·합격이 있었고 △해당 성차별 행위가 관행처럼 이어져오고 있었으며 △관행을 정당화하는 변론 또한 차별에 해당한다는 점을 판시했지만, 1심 판결로 인한 처벌은 벌금 500만 원에 그쳤다. 성차별 채용을 주도한 A 부사장은 2017년 논란 이후 승진해 현재 부사장 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이렇다 보니 채용성차별 문제는 사회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다. 신한금융그룹은 2015~2016년 당시 신한은행 신입공채 당시에도 남성 지원자 부정특혜, 여성지원자 부정탈락 등 합격자 성비를 조작한 혐의로 2018년 기소된 바 있다. 채용성차별은 신한그룹만의 논란도 아니다. 비슷한 시기인 2015~2018년 사이 국민은행, 하나은행 등 다른 유명 은행들에서도 점수조작 논란이 생겨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대한석탄공사와 가스안전공사(2017), 서울메트로(2016) 등 공공기업에서도 금융권과 유사한 '성차별 점수조작' 사건이 일어났고, 지난 2021년엔 동아제약의 신입공채 면접과정에서 면접관들이 여성지원자에게 군대 관련 질문 등을 한 사실이 밝혀지며 이른바 '동아제약 채용 성차별 사태'로 사안이 확장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2018년 '채용성차별 제재 및 권리구제 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현행 고평법상 '500만원 이하 벌금' 양벌 규정을 △해고 등과 같은 기준인 '5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으로 상향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노동위원회 구제절차 신설 등을 공언했지만 해당 조치는 2023년 현재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성계에선 관련 통계부터 정확히 수집하고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성·노동 단체 연대체인 채용성차별공동행동은 지난 2021년 "채용성차별은 기업의 고질적 성차별 관행으로 쉽게 뿌리 뽑히지 않는다. 엄정하고 적극적인 법 집행을 통해 기업이 채용성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만들어져야 한다"라며 "구직자의 신고만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채용성차별 실태를 파악할 수 있도록 지원자 성비 대비 합격자 성비를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이들은 또한 정부 차원의 채용성차별 근절 방안 마련, 적극적 특별근로감독 시행 등을 고평법 개정안과 함께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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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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