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이 김대중 선생 왼손 아니요? 그 양반 이길 사람 없소"

박지원 전 국정원장 출마로 들썩이는 해남·완도·진도 [르포]

"김대중 대통령 왼손 아닌가? 박지원이 나오면 그 양반 이길 사람이 없을 거요."

4일 오후 전남 해남읍의 버스터미널 앞 택시승강장.

타는 듯한 더위에 지친 택시기사들이 기사 휴게실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기사 A씨는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내년 총선에 해남·완도·진도 지역구에 출마한다는 얘기를 들었냐"는 물음에 곧바로 반응했다.

그는 "워낙 유명하고 똑똑한 양반이라 나오면 국회의원은 따 논 당상"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어 "정동영, 천정배 다 나온다고 하니 당에서 공천을 줄까 싶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택시 기사는 "나는 며칠전 (박 전 원장 한테)전화도 받았다"며 "내년에 나올테니 잘 도와달라는 말을 했다"고 은근 자랑했다.

그러면서 고개를 들어 맞은편 건물을 바로 보며 "지금 국회의원이 잘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해남읍 버스터미널앞 택시승강장. 도로 맞은 편 건물에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 해남지역사무실이 위치하고 있다.2023.8.4ⓒ프레시안(박진규)

택시 승강장 건너편은 현 지역구 국회의원인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역사무실이다.

해군 군수사령관 출신인 윤 의원은 19대부터 출마해 3수 끝에 지난 2020년 21대 총선에서 금배지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내년 재선을 앞두고는 강력한 대항마인 박지원 전 원장의 출마설로 타격을 받은 모습이다.

◇ 역대 국회의원, 인구 많은 해남출신 독차지…진도 출신 박지원이 나선다면?

해남·완도·진도 국회의원 선거구는 원래 해남·진도와 완도·강진으로 나뉘었으나 18대부터 해남·완도·진도로 재편됐다.

이런 정치 지형상 예전 한 지역구였던 해남-진도의 투표성향이 같고, 여기에 완도가 독자 목소리를 내는 형태로 선거가 진행돼 왔다.

인구수는 지난달 말 기준 해남 6만5133명, 완도 4만7068명, 진도 2만9183명으로 해남의 표심이 당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지난 18대와 19대 때는 해남 출신 후보들이 난립하면서 완도 출신의 현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무소속과 민주통합당 후보로 나서 재선에 성공한 바 있다.

이후로는 줄 곧 해남 출신이 지역 국회의원을 휩쓸었다.

지난 총선에서도 해남 출신의 윤재갑 민주당 후보와 윤영일 민생당 후보가 격돌했다. 민주당 경선에서는 윤광국 전 한국감정원 호남본부장이 나서면서 해남윤씨 종친들 싸움이라는 우스갯 소리가 나왔다.

그만큼 해남 윤씨가 지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해남윤씨 종친회 한 임원은 "박지원 전 원장이 내년 선거에 출마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관심을 끌지만 종친회 후보도 2명이나 나온 이상 특정 후보를 미는 분위기는 없다"며 "역대 선거에서도 종친회 차원에서는 특정 후보를 위해 움직인 적은 없다"고 중립을 강조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4일 해남매일시장을 찾아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며 사진을 찍고 있다.2023.8.4ⓒ프레시안(박진규)

내년 총선에서는 정치 거물 박지원 전 원장이 해남·완도·진도 선거구 출마를 밝히면서 이 지역 뿐만 아니라 광주전남 전체 총선판이 온통 박 전 원장에 쏠린 모습이다.

그간 간접 출마설을 흘려온 박 전 원장은 4일 광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호남연수원에서 열린 광주시교육청 청소년 정치캠프 강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념을 발전시키고 호남 정치의 복원을 위해 내년 총선서 제 고향에 나가기로 했다"며 해남·진도·완도 지역구 출마를 공식화 했다.

이날 강연 이후에는 곧바로 해남으로 내려와 해남매일시장을 방문, 주민과의 접촉을 넓혀가는 등 선거모드로 들어갔다.

그러나 비판적인 목소리도 들린다.

해남에서 민주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40대 B씨는 "박지원 전 원장이 유명한 분이긴 하지만 이제 정치를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냐"면서 "결국 정당 후보자가 되려면 당원을 많이 확보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저렇게 분위기만 띄우는 것은 혹시 비례대표로 가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진도군청 앞 철마광장에서 바라본 진도읍 전경.ⓒ프레시안(박진규)

◇ "이참에 진도 출신 국회의원 배출하자"…진도, 기대 가득

박지원 전 원장의 출마 소식에 진도는 더욱 들뜬 분위기다. 그동안 인구수에 밀려 진도 출신 국회의원은 염두도 내지 못했던 형국이었다.

밀양박씨 진도 종친회장을 맡고 있는 박병학씨는 "소선거구제 이후 진도 출신 국회의원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며 "정시채 전 의원은 해남 우수영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진도로 이사왔다"고 주장했다.

1985년 12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해남·진도 선거구에서 당선된 정시채 전 의원의 공식 프로필에 출생지는 진도이다.

박병학 종친회장은 "밀양박씨인 박 전 원장이 출마한다는 소식에 종친회가 모처럼 활기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진도 전체 유권자의 20% 정도가 밀양박씨 종친들"이라며 "종친들만 힘을 합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지지의사를 밝혔다.

진도읍의 한 경로당 회장인 C씨는 "저 분(박지원 전 원장)이 원래 고향일이라면 굉장히 앞장서서 일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 지역에서 참 나름대로 평이 괜찮았다"며 "솔직히 나이가 있어 정치를 그만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본인이 저렇게 건강 관리하면서 나간다고 하니 누가 만류하겠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진도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할 마지막 기회다"고 은근 기대했다.

▲4일 완도읍 시가지 모습.2023.8.4ⓒ프레시안(박진규)

◇ "민주당 공천 안주면 무소속 나와도 당선"…완도 '호의적'

인접 완도군은 더 나아가 무소속으로 나가도 거뜬하다는 의견도 흘러나왔다.

호남이 민주당 텃밭임에도 완도군의회는 전체 9명의 의원 중 의장과 부의장을 포함해 5명이 무소속이다.

또 다른 완도지역 민주당 원로당원 D씨는 "나도 나이가 들다보니 '나이 먹으면 그만하라'는 소리가 오히려 서운하다"며 "박지원이 당에 공천 안주면 무소속으로 나와도 당선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옛 국민의당 완도연락사무소장을 거쳐 현재 민주당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E씨는 "현재 국회의원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많으나 다들 중량감이 떨어진다"며 "중앙에서 존재감 없는 초선보다는 박지원 전 원장이 국회에 가면 지역이 더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내년 해남·완도·진도 지역구 총선에는 더불어민주당에서 윤재갑 현 국회의원과 박지원 전 원장 외에도 김병구 변호사, 윤광국 전 한국감정원 호남본부장, 이영호 전 국회의원, 장환석 전 행정관, 정의찬 이재명 대표 특별보좌관 등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국민의힘에서는 조웅 해남·완도·진도 당협위원장이 출마할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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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규

광주전남취재본부 박진규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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