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0일(이하 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세 확대 범위가 가자지구 최대 도시 가자시티에 그치지 않는다고 밝혀 가자지구 전체 점령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관련해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가 열렸고 최우방국 독일조차 이스라엘에 일부 무기 금수를 선언하는 등 국제사회가 발신하는 경고음은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다.
한편 이날 이스라엘의 언론인을 겨냥한 공격으로 가자지구 내부를 취재하는 희소한 언론인 중 하나였던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 기자 아나스 알샤리프(28)와 동료 4명이 숨졌다.
네타냐후 총리는 10일 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목요일(7일) 이스라엘 안보내각은 이스라엘군(IDF)에 하마스의 남은 두 거점인 가자시티와 중부 난민촌을 해체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는 이스라엘 총리실이 지난 8일 안보내각이 승인했다고 밝힌 공세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총리실은 당시 안보내각이 "총리 제안을 승인했다"면서도 이스라엘군이 "가자시티 점령" 준비에 나설 것이라고만 발표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이들 지역들에 대한 공세 확대가 "전쟁을 빠르게 끝내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네타냐후 총리가 밝힌 확장된 공세 범위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체 점령 우려에 불을 지핀다. 이스라엘은 이미 가자지구의 4분의 3가량을 통제하고 있는데 북부 가자시티와 중부 난민촌은 남은 4분의 1의 핵심 지역이다. 이들 지역엔 이스라엘의 통제를 피해 가자지구 주민 대부분이 몰려 있는 것으로 추정돼 강제이주 우려가 크다. 네타냐후 총리는 10일 회견에서 "먼저 민간인들이 전투 지역에서 안전지대로 안전하게 떠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이전에도 가자 서부 지중해 연안 알마와시를 일방적으로 안전지대로 설정했지만 이곳에서도 수차례 폭격이 보도됐다. 이스라엘 인질 또한 이들 지역에 붙들려 있는 것으로 추정돼 인질 가족을 비롯해 인질 안전을 우선시하는 이스라엘 내부 반발도 큰 상황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7일 미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자지구 전체 점령 "의도"를 밝힌 바 있기도 하다.
네타냐후 총리는 10일 회견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이 아니라 "해방"하려 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우리 목표는 가자지구를 점령하는 게 아니다"라며 "우리 목표는 가자지구를 해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포위한 채 2년 가까이 전역을 폭격 중인 가운데 네타냐후 총리는 "그들(가자지구 주민들)이 '하마스로부터 가자지구를, 우리를 해방시켜 달라'고 우리(이스라엘)에게 간청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제사회 이스라엘 비판 최고조…국제안정군 배치 목소리·독일, 이스라엘에 무기 금수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세 확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은 최고조에 달했다.
유엔 안보리가 10일 이스라엘의 공세 확대 관련 긴급회의를 연 가운데 주유엔 영국 차석대사 제임스 카리우키는 회의에서 "군사 작전 확대는 이 갈등 종식에 아무 도움도 안 된다"며 "이는 해결로 가는 길이 아니라 유혈사태 확대로 가는 길"이라고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가자 주민 보호를 위한 국제군을 배치해야 한다는 촉구도 이어졌다. 10일 안보리 회의에서 아심 이프티크하르 아흐메드 주유엔 파키스탄 대사는 이스라엘 공세 확대가 "인종청소 작전의 정점"이라며 안보리가 포위된 가자 주민들을 위한 국제보호군을 파견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8일 프랑스 정부도 이스라엘의 가자시티 점령 계획을 비판하며 "임시 국제 안정화군 배치"를 주장했다.
홀로코스트(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정권의 유대인 대학살) 원죄 뒤 이스라엘의 최우방을 자처해 온 독일마저 지난 8일 이스라엘에 가자지구에서 사용될 수 있는 일부 무기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독일 도이체벨레(DW) 방송에 따르면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10일 독일 공영방송 ARD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과 연대한다는 것은 이스라엘 정부의 모든 결정을 옳다고 간주하거나 지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우리는 이 나라(이스라엘)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계속 도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도 10일 이스라엘의 가자시티 점령 계획으로 가자지구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에 대한 "엄중한 우려"를 표명했다.
다만 도로시 셰이 주유엔 미국 대사 대리는 안보리 회의에서 "이 기구 구성원들이 하마스를 압박하는 대신 부추기고 보상 중"이라며 이스라엘과 함께 다수 나라들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입장을 취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10일 네타냐후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해 "가자지구의 남은 하마스 거점을 점령하는 계획"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총리실은 구체적 통화 내용에 대한 언급 없이 "네타냐후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변함없는 지지에 감사를 표했다"고 설명했다.
네타냐후 "가자 기아 정책은 거짓 선전…있었다면 가자서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10일 회견에서 가자지구 기아를 재차 부정하기도 했다. 그는 이스라엘 봉쇄로 인한 가자지구 기아는 "전세계적 거짓 선전"이라고 일축하며 "우리에게 기아 정책이 있었다면 가자지구에서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의 장기 식량 봉쇄로 가자지구에선 아사자가 급증하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10일까지 가자지구에서 어린이 100명을 포함해 217명이 영양실조 관련해 숨졌다고 집계했다. 2023년 10월7일 이후 이스라엘 공격으로 인한 팔레스타인인 총 사망자 수는 6만1400명을 넘어졌다.
제한적이나마 공급되는 구호품을 수령하려다 총격 당하거나 공중투하된 구호품에 맞아 숨지는 사태도 이어지고 있다. 10일 <로이터> 통신은 가자지구 언론국이 이날까지 공중투하된 구호품으로 인해 가자 주민 23명이 숨졌다고 집계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최근 가자지구 기아에 대한 국제적 비판이 높아지자 육로에 비해 고비용으로 적은 양의 물자만 공급이 가능한 항공기를 통한 구호품 투하를 허용했다.
10일 <AP> 통신은 가자 보건부 및 의료진을 인용해 구호품을 수령하려던 가자지구 주민 최소 31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구호 트럭을 기다리던 가자 주민들에 이스라엘군이 발포해 가자 남부 라파와 칸유니스를 가르는 모라그 회랑 부근에서 15명, 북부 국경 인근에서 6명이 숨졌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원하는 가자인도주의재단(GHF) 식량 배급소로 가던 주민들도 가자 중부에서 4명, 남부에서 6명이 숨졌다. 목격자들은 이들에게 경고 사격 및 총격이 가해졌다고 증언했다. <AP>에 따르면 가자인도재단 쪽은 "우리 부지나 인근에서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있음에도 10일 회견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입장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익숙한 것"이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평가했다.
이스라엘, '가자 참상 보도' 알자지라 기자 살해…해당 기자, 죽음 예감에 4달 전 유언 "딸 자라는 모습 보고 싶었다"
한편 10일 이스라엘의 언론인 겨냥 공격으로 알자지라 취재팀 5명이 숨졌다. <로이터>를 보면 이날 저녁 가자시티 알시파 병원 정문 앞 텐트가 이스라엘 공격을 받아 알샤리프를 포함해 알자지라 기자 4명과 취재 보조원 1명이 숨졌다. 모하메드 아부 살미야 알시파 병원장은 <뉴욕타임스>에 이스라엘 무인기(드론)가 이 병원 앞 언론인들이 사는 텐트를 공격해 총 7명이 죽고 8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 공격이 알샤리프를 겨냥했음을 인정하고 그가 하마스와 연계됐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앞선 언론인 살해에 대해서도 많은 경우 이들이 테러리스트였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래 국제 언론의 가자지구 취재를 막고 있는 가운데 가자지구 내부에서 보도하는 알자지라 기자들은 이 지역 참상을 현장에서 전하는 몇 안 되는 언론인 중 하나다. 알자지라는 성명을 내 "아나스와 그의 동료들은 가자지구 내부에 남은 마지막 목소리 중 하나였다. 이들은 이 지역 주민들의 처참한 현실을 여과 없이 현장에서 보도해 세계에 알렸다"며 "국제사회와 모든 관련 기관이 진행 중인 집단학살과 언론인을 겨냥한 고의적 공격을 끝내기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이어 "가해자에 대한 면책과 책임 추궁 부재는 이스라엘의 행동을 대담하게 하고 진실을 증언하는 이들에 대한 탄압을 더욱 부추긴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국제언론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CPJ)는 알샤리프가 이스라엘군 "중상모략"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그의 안전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알샤리프는 당시 "이 모든 일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점령 범죄에 대한 내 보도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며 "언제라도 폭격 당해 죽을 수 있다고 느낀다"고 밝혔다.
알샤리프 사후 그의 소셜미디어 계정엔 그가 지난 4월 미리 작성해 둔 유언이 게재됐다. 게시글엔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이스라엘이 날 살해하고 내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라며 "가자지구를 잊지 말아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또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기회를 얻지 못한", "내 눈의 빛"이었던 딸 등 자신의 가족과 "평화와 안전의 꿈을 꿀 시간조차 없었던"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을 돌봐 달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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