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극우 연정 '사법 개악' 강행에 대혼란… 전 총리 "내전으로 간다"

시위·예비군 복무 거부 더해 기업들이 앞장서 파업 촉구…속도 조절 주문했던 백악관도 "유감" 표명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 극우 연정이 국민적 반대에 부딪힌 사법부 무력화 법안 통과를 강행하며 이스라엘이 혼란에 빠졌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 <예루살렘포스트>, <로이터> 통신 등을 보면 24일(현지시각)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가 사법부 권한을 축소하는 법안 통과를 강행하며 1만 5000명 규모의 시위대가 예루살렘 크네세트, 대법원 및 텔아비브 고속도로 등에서 시위를 벌였다.

일부 시민들은 이른바 사법정비법 통과를 막기 위해 수일 전부터 크네세트 인근에 텐트를 치고 버텼고 이날 오전엔 크네세트 앞 도로에 몸을 묶고 버티기도 했다.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수천 명의 시민들이 거리에 머물자 경찰은 물대포 등을 발사해 시위 진압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적어도 19명을 체포했다. 이스라엘인들은 올 초 사법정비안이 발표됐을 때부터 반대 시위를 이어 왔다.

이날 앞서 크네세트는 합리성 혹은 적법성을 벗어난 행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을 대법원이 사법심사를 통해 뒤집을 수 있도록 한 사법부의 기존 권한을 폐지하는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야권은 최종 표결에 불참하며 반발했지만 총 120개 의석 중 여권 의원 64명의 찬성으로 법안이 가결됐다.

이스라엘 정부의 사법부 무력화 시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법정비 법안 설계자인 야리브 레빈 법무부 장관은 이번 법안 통과가 "역사적인 첫 번째 조처"라며 추가 입법을 예고했다. 극우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도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향후 크네세트가 다수결로 대법원 판결을 뒤집을 수 있도록 하고 법관 임명에 정부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방향의 추가 입법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성문 헌법이 없는 이스라엘에선 대법원이 정부와 크네세트의 권력을 견제하는 수단이 돼 왔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정부와 크네세트가 같은 연정에 의해 통제된다. 반대자들이 정부의 사법부 무력화 시도를 곧 민주주의 파괴로 보는 이유다. 법안 표결이 끝난 뒤 야권을 대표하는 야이르 라피드 이스라엘 전 총리는 "슬픈 날"이라며 "이는 (네타냐후) 연정의 승리가 아닌 이스라엘 민주주의의 파괴"라고 비판했다.

이스라엘의 저명한 사학자 유발 노아 하라리 예루살렘 히브리대 사학과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네타냐후 연정 구성원들은 이미 아랍인, 여성, 성소수자(LGBTQ)를 차별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그러한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바 있다. 대법원이 빠지면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거에 이겼다고 해서 무제한적 권력을 갖는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수의 독재"라고 설명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마을을 아예 없애 버려야 한다는 발언을 한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장관과 같은 극우가 "핵무기와 첨단 사이버 무기로 무장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 중 하나를 이끌고 있다"며 네타냐후 정권은 "이스라엘을 넘어 중동 전역에 불을 놓을 수 있으며 이는 중동을 훨씬 넘어서는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위에 더해 기업들이 앞장서 파업 및 휴업을 독려하고 예비군 1만 명 이상이 군 복무를 거부하며 당분간 이스라엘 사회의 총체적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를 보면 24일 이스라엘 주요 150개 기업 임원 모임인 이스라엘 비즈니스 포럼은 "경제에 막대한 해를 끼치고 사회를 분열시킬 법안"에 대한 합의 도출을 정부에 강제하기 위해 파업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이스라엘 200개 주요 기술 기업 모임도 휴업과 휴가 부여를 통해 사법 개악 반대 시위에 노동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이스라엘 의료 협회도 의료 종사자들이 25일 하루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주말까지 이미 1만 명 이상의 예비군들이 복무 거부 선언을 한 상태다.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는 24일 영국 <채널4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금 내전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정부가 이스라엘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기로 결정했다"며 인구 다수가 정부가 불법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보는 "시민 불복종"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속도 조절을 주문한 사법정비안을 네타냐후 정권이 밀어붙임에 따라 미국과의 관계가 더욱 껄끄러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백악관은 24일 성명을 내 법안 통과가 "유감"이라고 밝혔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이스라엘의 평생 친구인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에서 주요한 변화가 계속되려면 가능한 광범위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공적으로, 또 사적으로 표명해 왔다"며 "오늘 표결이 가능한 가장 적은 수의 찬성으로 이뤄진 것은 유감"이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미 매체 <악시오스>에 보낸 성명에서 사법정비안으로 인한 "분열"을 지적하고 "이스라엘이 직면한 위협과 도전을 고려할 때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이 사안을 서둘러 처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며 속도를 내기 보다 합의를 추구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주 네타냐후 총리를 재집권 7개월이 지나 비로소 미국에 초청했지만 방문 시점은 "올해 안" 정도로 구체화하지 않은 상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스라엘 사법부 독립성을 크게 약화시키는 네타냐후 총리의 움직임은 바이든 대통령이 설정한 민주주의 증진 의제에 도전한다"고 분석했다. 매체는 다만 현재로선 군사적 지원을 포함해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크게 변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지난주 미 하원은 이스라엘에 대한 초당적 지지를 재확인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24일(현지시각) 이스라엘 시민이 예루살렘에서 사법부 무력화 법안 입법 반대 시위를 벌이다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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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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