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정비 '일단 연기' 네타냐후, 극우·시민 사이 '진퇴양난'

대규모 시위에 4월 말 이후로 미뤄…강행 땐 시민 지지 잃고 철회 땐 극우정당 연정 이탈 가능성

대규모 반대 시위에 직면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사법부 무력화가 골자인 사법정비 계획을 4월 말 이후로 미루겠다고 한 발짝 물러섰다. 극우와 연정을 꾸린 네타냐후 총리가 시민들과 극우의 상충되는 요구 사이에서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 <AP> 통신, <워싱턴포스트>(WP) 등을 보면 27일(이하 현지시각) 네타냐후 총리는 방송 연설을 통해 "국가 분열을 방지"하고 "대화를 통해 내전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대화를 위한 시간을 갖고자 한다"며 사법정비 계획을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크네세트(의회) 다음 회기가 시작되는 4월30일 이후로 절차를 미루고 이날 전 "광범위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올 초 사법부를 약화시키는 방향의 사법정비안을 제시한 뒤 이스라엘에선 반대 시위가 지속돼 왔다. 지난 25일 국가 안보 위협을 들어 사법정비 반대 의사를 밝힌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이 다음날 전격 해임된 것을 계기로 시위와 파업이 더욱 거세졌다. 시위 규모가 수십 만에 이르고 예비군은 복무를 거부하며 병원에서부터 학교·노동조합·항공사까지 파업에 동참하면서 나라가 마비 상태에 이르자 결국 네타냐후 총리가 한 발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 정부가 제시한 사법정비안이 통과될 경우 의회가 다수결로 대법원 판결을 뒤집을 수 있고 법관 임명에 정부의 영향력이 강화돼 사법부 권한이 크게 약화된다. 네타냐후 총리 본인이 부패 등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사법부 장악 시도는 내각 권력층들에 면죄부를 주기 위함이라는 의심도 팽배한 상황이다.

이스라엘 정부의 사법부 약화 시도에 우려를 표명해 온 미국 백악관은 27일 계획 연기 발표를 "환영"하며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조속히 타협안을 찾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민주주의 체제에서 근본적 변화는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기반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28일 톰 나이즈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가 백악관이 "일정이 확정되는대로 곧" 네타냐후 총리를 초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다만 사법정비 계획 연기가 취소나 수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네타냐후 연정에 참여 중인 극우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개혁은 통과될 것"이며 "아무도 우리를 겁에 질리게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정부 발표 뒤 주요 노조는 28일 총파업 계획을 철회했지만 시위는 계속됐다. 예루살렘에서 시위에 참여한 에이탄 카하나(27)는 사법정비안이 "완전히 철회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 왜냐하면 이는 개혁이 아니라 행정부의 쿠데타이기 때문"이라고 <로이터> 통신에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극우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재집권에 성공한 네타냐후 총리가 극우와 분노한 시민들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네타냐후 연정은 의회에서 120석 중 과반이 조금 넘는 64석을 점하고 있는데 벤그비르가 이끄는 오츠마 예후디트(이스라엘의 힘)가 이 중 6석, 베잘렐 스모트리히가 이끄는 또 다른 극우 정당 독실한 시오니즘이 7석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극우가 정권 유지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셈이다. 

이스라엘 매체 <예루살렘포스트>는 네타냐후 총리가 이번 연기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현재 국경 경찰 소속인 경비대 통제권을 벤그비르 장관에게 넘기기로 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연기 발표 뒤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정비안을 철회하거나 수정하려 할 경우 극우가 이탈해 의회 다수당 지위를 잃을 수 있고, 원안을 고수할 경우 사회적 위기가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매체는 네타냐후 총리의 전기를 집필한 바 있는 이스라엘 언론인 안셸 페퍼가 현 상황은 네타냐후 총리에게 "오직 부정적 결과만 있는 상황(lose-lose situation)"이라고 짚었다고 전했다.

▲27일(현지시각)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위치한 의회 앞에서 사법부 무력화를 골자로 하는 정부의 사법정비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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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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