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 초등교사 사망, 약자에 기피업무 내모는 '학교' 잘못은 없나

[해설] 담임·학폭 등 기피업무에 저경력자 내모는 관행… "관리자 책임은 어디에?"

서울 서초구 소재 초등학교 교사 사망사건으로 교육계가 들끓고 있다. 서울교사노조 등 교육단체는 19일 해당 소식을 전하면서 학교폭력과 관련된 학부모 민원을 극단적 선택의 원인으로 제기했다. 전국 초등학교 교사들은 20일 집단 추모행동을 예고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선 '신규 임용교사였던 사망자가 학폭 관련 민원에 시달려왔으며, 민원인의 정체는 모 정당 소속 국회의원'이라는 의혹이 쏟아지기도 했다. 학교 측은 20일 학교 홈페이지에 교장명의의 입장문을 올리고 해당 의혹을 부정했다.

입장문에서 학교는 "고인의 담당 업무는 학교폭력이 아닌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 권한 관리 업무였고, 이 또한 본인이 희망한 업무"였으며 "(고인이 맡은) 학급에서는 올해 학교폭력신고 사안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건 직후 교육계에선 "쌓이고 쌓이던 교사들의 감정이 폭발하고 있는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애초부터 교육현장 내에선 '교육활동 침해행위'가 만연해 있는데, 학교와 교육부는 별다른 조처도 없이 이를 방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20일 오후 신규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 추모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약자에게 기피업무 내몰고, 교사 개인에게 업무책임 전가 교사들 "관리자 책임은 어디에 있나"

교육현장에선 담임, 학폭 관련 업무는 물론 나이스 관리 업무 또한 대표적인 기피업무로 꼽힌다. 사안 처리가 복잡하거나 전체 행정 시스템이 얽혀 규모가 크고, 문제 발생 시의 해결이 어렵기 때문이다.

손지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위원장은 20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해당 업무들은 업무 과중, 개인에 대한 과도한 책임부과, 다발성 민원 등이 쏠리는 기피업무"라며 "그런데 교육현장에선 이러한 업무들이 저경력, 기간제 등 취약계층 교사들에게 몰리는 관행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권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학폭 책임교사 현황'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전국 중·고등학교 학폭 책임교사 6152명 중 기간제 교원의 비율은 26.5%(1628명), 5년차 미만 저경력 교사 비율은 21.9%였다. 이중 355명은 신규임용 첫해에 학폭 업무를 맡았다. 기간제 교사들의 중고교 담임교사 비율도 지난 10년간 꾸준히 늘어 올해 4월 기준 27.4%에 육박했다.

손 부위원장은 특히 "학교는 교사 개인에게 '선택권'을 준다고 하지만, 연장자를 우선시하고 보수적인 교육계 문화 속에서 실제로 저연차 교사들이 업무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다"라며 "연차가 적거나 기간제인 교사들은 대부분 과다한, 다들 기피하는 업무를 자연스럽게 맡게 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특정 업무를 기피한다면 해당 업무의 환경개선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특히 담임이나 학폭 담당 교사의 업무는 업무량은 물론 처리과정에서 학생 및 학부모의 민원·소송 등 과도한 책임이 부과되는 민감 사안이다.

학교폭력 발생 시 학교는 관련 위원회를 열고 사안을 공적으로 처리하지만, 그 처리를 맡게 되는 이는 결국 관련 학생의 담임교사와 학폭 담당 교사 두 명에 불과한 것이 일반적이다. 공동체적인 해결이 필요한 사안을 한두 명의 업무 담당자가 맡게 되니 "과도한 공격이나 불합리한 민원에 노출되는 일도 그만큼 잦아진다." 지난 2월 '정순신 사태'에서는 법률지식에 해박한 가해자 측이 아예 교내 학폭 매뉴얼을 악용한 정황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손 부위원장은 "학교라는 공동체가 업무책임을 교사 개인에게만 전가하는 사이 교사들은, 특히 힘없고 목소리 작은 취약계층 교사들은 점점 더 위험한 업무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학교가 교사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업무와 업무상의 책임들을 개인들에게 전가하고 있고, 교사들이 호소하고 있는 '교육활동 침해' 피해사례는 그 과정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20일 오후 신규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 한 추모객이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활동 침해 작년 1학기만 1596건 … "학생 대 교사 구도 벗어나 '학교' 책임 강화해야"

지난해 12월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2022년 1학기까지 교육부에 접수된 교육활동 침해 심의 건수는 총 7724건에 이른다. 2019년 2662건이던 심의 건수가 2020년 1197건으로 줄었지만, 2021년 2269건으로 증가세를 보였고 2022년엔 1학기에만 1596건이 집계됐다. 교육부는 건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2020년, 2021년은 "코로나19로 인한 원격수업 진행으로 침해 심의 건수가 일시 감소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4년간 쌓인 전체 심의 건에서 침해 행위자의 비율은 학생(7089건, 91.7%)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번 서초구 초교의 경우에서 제기되고 있는 '학부모에 의한' 교육침해 행위 비율은 전체 635건으로 8.2%에 그쳤다. 다만 학생들의 연령대가 낮아 학부모와의 접점이 높아지는 초등학교의 경우, 학부모에 의한 교육침해 비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초등학교에서의 교육활동 침해 심의 건수만을 놓고 보면 전체 749건의 심의 건 중 학부모에 의한 침해 심의 건이 262건(34.9%)에 달했다.

통계발표 당시 교육부는 △수업 방해행위 적극 대응 △피해교원 보호 강화 △침해학생 및 보호자 대상 조치 강화 △교육활동 지원체계 고도화 △사회적 협력 확대 등 교육활동 침해 예방 및 대응 강화 방안을 내놓았지만 현장에선 "별 체감이 들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해 교육계의 숙원사업으로 꼽혀온 '학생 생활지도 권한'을 법령에 명시했지만 전교조 측은 △생활지도의 내용, 범위 등의 구체적 제시 △생활지도 자율성 보장을 위한 포괄적 생활지도권한의 명시 등을 해당 개정안의 과제로 지적한 바 있다.

특히 이들은 "권한은 학교장 등 관리자에게 쏠려 있고, 업무와 책임은 교사 개인에게 쏠려 있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한다. 손 부위원장은 "현재 교육활동의 모든 권한은 실질적으로 학교장에게 있고, 그 책임은 시행주체인 교사 개인에게 간다"라며 "교육부는 '학생인권과 교권의 대립' 구도를 벗어나 학교의 구조적인 부분을 건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에서 추모객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교육계에 따르면 이 학교 담임 교사 A씨가 학교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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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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