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전환 시대, '인간 너머의 국가'를 살펴야 할 때

[초록發光] 녹색전환-비인간-인간을 위한 국가의 모색

코로나19와 함께 살아왔던 지난 3년여의 시간 동안 우리는 바이러스라는 비인간(nonhuman)이 인류에게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경험했다. 그동안 인류 문명의 우수성은 곧 인간의 이성, 예측가능성 안에서 자연을 성공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바탕 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보여준 예측불허한 행위성(빠른 전파 속도, 무수한 변이의 출현 등) 앞에 인류는 무력감을 학습해야 했다.

이처럼 코로나 팬데믹은 인류에게 막대한 희생을 치르게 했지만, 그로 인해 인류는 값비싼 배움도 얻었다. 팬데믹, 인류세, 기후변화, 극심한 자연재해라는 복합위기가 발생하는 지구 위에서 비로소 인류는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기 위한 녹색전환의 움직임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최근 녹색전환 논의에서 주목할 지점은 비인간에 대한 관심이다. 흥미롭게도 6월 중순 개최되었던 서울국제도서전은 비인간을 핵심 주제로 내세웠다. 2022 SF어워드 대상을 수상한 최의택 작가가 최근 발간한 소설집 제목이 비인간인 것도 변화된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대중문화, 문학의 영역에서 비인간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되기 전에 학계에서는 비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선구적인 성찰이 이루어져 왔다.

지난해 가을에 별세한 저명한 과학기술사회학자이자 비인간 연구에서 핵심적 이론인 행위자-연결망 이론(ANT: Actor-Network Theory)을 제안했던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2015년 파리에서 개최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앞두고서 자신의 학생들과 당사국 총회 역할극을 기획했다. 라투르는 학생들에게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총회의 참여주체들(국가관료, 초국적기업, 환경단체)뿐만 아니라 토양, 바다, 대기, 물고기와 같은 비인간들도 참여주체로 포함하여 그들의 입장에서 연기할 것을 주문했었다.

이 역할극의 의의는 총회의 참여주체로 그동안 인류에게 필요한 자원(resource)으로 기능했던 비인간들이 '말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대화 테이블에 비인간들이 인간과 나란히 앉아 있더라도 국가관료와 초국적기업들이 여전히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비인간들은 위태로운 주변부에 속한다는 비대칭적 권력관계를 드러내었다는 점에 있다. 필자는 이 역할극의 의의를 전자보다 후자에 좀 더 무게를 둔다.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전환(轉換)은 과거보단 미래를, 오래된 것보다는 새로운 것으로 관점과 행동을 돌린다는 뜻으로 읽힌다. 녹색전환에 있어 비인간이라는 익숙하지 않던 단어가 부각된 데에도 유사한 의도가 깃들어 있다. 하지만 필자의 입장은 녹색전환을 이유로 단순히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기보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형성한 구조, 제도, 조직, 습성,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데 있다. 대표적으로 인간이 만든 가장 근대적 산물인 국가를 비인간과 연관하여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나의 화두이다.

1990년대 제시된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론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 경제성장의 요인으로 양차대전 이후 다른 제3세계 국가들처럼 지대추구행위를 하거나 단기적 사적 이해관계에 의존하는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국가 단위에서 장기적인 경제개발 계획을 수립, 추진한 국가 관료의 역할을 주목했다. 반대로 2000년대 들어서는 사회로부터 독립되어 진행되었을 것으로 간주된 국가 관료의 정책 선택이 실제로는 다양한 사회세력들(자본, 정치인, 지역주민 등)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밝혀 그간 경제성장에 있어 국가 관료의 역할을 과도하게 강조한 사조를 비판하는 연구가 증가했다.

사회세력이 국가정책에 미친 영향에 대한 강조 수준은 학자들마다 다르다. 하지만 전후(戰後) 동아시아의 근대화/도시화/산업화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점에는 학자들의 동의가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국내 환경사회학, 환경정치학 연구자들은 발전주의 국가를 반(反)환경적, 반생태적으로 간주했다. 조국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전개된 수출주도 산업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자유재/공유재(commons)였던 자연이 국가에 의해 국유재/경제재라는 자원으로 전환되고 성장을 위해 환경파괴가 정당화되었다는 사실은 ‘반환경적 발전주의 국가’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당시 연구자들은 대안적 국가형태로서 녹색국가(대표 논자: 구도완, 조명래)를 만들거나 국가의 중앙집권적 특성을 반생태적 경향성의 핵심으로 보고 국가보다 작은 지역 단위의 정치체(polity)들이 모인 생태자치연방(대표 논자: 문순홍)을 제안했다. 하지만 녹색전환으로 가기 위한 규범성이 강조되면서 녹색국가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머물렀다.

규범적이고 추상적 개념은 녹색전환으로 가는 여정이 비인간들에게 비단길만 펼쳐지지 않았다는 점을 안내해주지 못한다. 인간중심주의에 젖어 있는 인간과 비인간에 대한 감응 수준이 높은 인간 간의 경합 과정이 어떻게 국가의 정책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필자는 '반환경적, 반생태적' 발전주의 국가의 안과 밖에서 인간과 비인간 간의 갈등, 모순, 타협의 과정이 어떻게 국가의 정책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지를 섬세하게 분석할 수 있어야만 선배 연구자들이 제시한 녹색국가, 생태자치연방이라는 종착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아니면 없을지를 전망하는 게 가능하다고 본다. 필자는 이러한 고민을 최근 국제학술지에 "인간 너머의 국가(the more-than-human state)"라는 개념으로 제안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북한, 일본, 중국, 대만, 싱가포르를 포함한 동아시아 차원에서의 비교연구를 고민 중이다.

동물카페 영업을 가능케 한 국가 제도에 관한 찬반 논쟁이나 국가가 추진한 대형토목사업을 중단시키고자 법인격을 부여받으려는 비인간(천성산 도룡뇽, 설악산 산양 등)의 정치적 의제화 등으로 대표되는 여러 사건은 비인간과 국가가 결코 동떨어진 관계가 아님을 환기시킨다.

라루트가 별세하기 직전에 국내 출간된 <스스로를 의식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녹색 계급의 출현>(2022, 이음)에서 그는 기존의 '계급'과 어울리지 않는 '녹색'을 결합하는 시도를 했지만 "국가는 결코 새로운 녹색 계급의 필요를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다"(95쪽)며 국가에게 기대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그가 살아있었다면 녹색 계급만큼이나 물과 기름과 같은 혼종적 개념인 인간 너머 국가 연구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필자와 함께 새로운 설계도를 그리려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는 떠났고 지구상에 남아있는 인간들은 녹색전환의 실현을 위하여 비인간들과 함께 학술적으로든 실천적으로든 국가를 좀 더 붙잡아야 한다.

참고문헌

김준수, 이강원, 최명애, 박지훈, 황진태. 2022. "인간 너머의 국가론에 대한 다학제적 논평." 대한지리학지, 57권 1호, 109-116.

Jin-Tae Hwang. 2021. "Theorizing the more-than-human state." The Professional Geographer, Vol. 73, no. 4, 64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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