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강화한다며 사교육 유발하는 자사고·외고·국제고는 존치?

서열화 우려 더 커져… "정부가 앞뒤 안 맞는 말 해" 지적

교육부가 일반고로 전환 예정이던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 국제고를 존치하기로 했다. 학생 선택권 보장 미명으로 이 같은 결정이 내려졌다. 고교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1일 교육부가 발표한 공교육 경쟁력 제고방안 자료를 보면, 교육부는 당초 2025년 일반고로 전환이 예정됐던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를 존치해 "공교육의 다양성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자사고를 설계한 인물인 이주호 장관이 교육부로 돌아오면서 일찌감치 예고됐던 결정이 내려졌다.

자사고 설립 당시 많은 교육 전문가들이 고교 줄세우기를 뚜렷이 해 일반고를 황폐화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대학 서열이 뚜렷한 상황에서 사실상 입시만을 위해 기능하는 자사고와 외고가 우수한 학생을 독점해 고교 입시를 위한 사교육이 더 왕성해지리라는 우려도 당시부터 나왔다.

이런 우려를 반영하듯 교육부는 전국단위로 학생을 모집하는 자사고 등에 해당 지역(시군구) 학생을 일정 비율 이상 선발하도록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조치가 실제 얼마나 효과를 볼지, 자사고와 일반고 간 격차를 줄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의 이번 발표에 고교 서열화 우려가 곧바로 나왔다.

서부원 광주 살레시오고 교사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교육부가 자사고하고 외고 등을 존치하겠다고 하는데 자사고, 외고는 수능으로 비교하면 '킬러문항'"이라며 "그런 것들(자사고, 외고 등 특목고)을 두고 애꿎은 문제 유형(이른바 킬러문항) 하나 가지고 끌어와서 한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사교육을 유발하는 최대 요인인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존치하겠다고 공언"했다며 "정부·여당이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킬러 문항을 없애도록 주문한 반면 (사교육을 부추기는) 자사고, 특목고는 유지하겠다고 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주문"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특목고와 자사고가 공교육을 강화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 부총리는 '자사고로 인해 일반고가 황폐해진다는 비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디지털 교과서, 대대적인 교원 연수, 스포츠와 예술교육 강화는 일반고에 해당하는 사안"이라며 "개별 맞춤 교육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번 정책 핵심 방향"이라고 언급했다.

일반고에 지원을 강화해 자사고로 인한 황폐화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설명이다. 바꿔 말하면 결국 이 부총리 스스로 일반고가 황폐해졌음을 인정한 셈이다.

교육부도 직접 보도자료에서 일반고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간 고교 서열화로 인해 황폐해진 일반고 지원이 필요함을 교육부도 인정한 것이다.

교육부는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방안으로 "일반고에서도 학생들이 진로와 적성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일반고 교육과정 필수 이수단위를 자율학교 수준으로 축소"하고 "일반고 학생을 위한 진로직업교육을 확대"하며 "모든 일반고에 학교당 5000만 원의 교육과정 운영 개선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기초학력에 미달하는 학생이 증가하는 원인 역시 서열화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는 이번 자료에서 "최근 6년간('17~'22)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과거에 비해 크게 증가하는 등 학생들의 학력저하 현상이 심화"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사고 존치 등의 대책을 냈다고 전했다.

교육부 자료를 보면 지난 2012년 3.0%이던 고2 기초학력 미달 비율(국영수)은 차츰 상승해 지난해에는 10.8%가 됐다. 

ⓒ교육부

그러나 실제로는 고교 서열화로 인해 자사고 등이 우수한 학생을 다 빨아들여 일반고에서 학력 저하가 더 두드러지는 양극화가 나타났다는 지적이 예전부터 나온 바 있다.

실제 지난 2014년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일반고 학생 9218명, 교사 2389명, 학부모 783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 교사의 76.5%가 일반고 위기 원인을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증가기 때문이라는 데 동의했고 71.3%는 성적이 높은 학생이 (자사고 등에 집중돼) 감소했기 때문이라는 데 동의했다.

일반고와 자사고의 학업성취도가 양극화하고 있다는 건 정부 공시서비스인 학교알리미(www.schoolinfo.go.kr)를 통해서도 나타났다. 지난 2013년 <연합뉴스>가 학교알리미에 공개된 서울 시내 고교 2년생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를 비교한 결과 192개 일반고의 과목별 향상도 평균치는 국어 0.02%, 수학 수학 -0.65%, 영어 -1.27%로 집계됐다. 학생이 일반고에 진학한 후 수학과 영어 성취도가 더 떨어졌다.

반면 27개 자사고의 과목별 향상도 평균치는 국어 1.95%, 수학 2.40%, 영어 0.84%로 일반고보다 높았다.

<동아일보>도 2014년 수능 성적을 분석한 결과 국영수 과목에서 1, 2등급(상위 11%)을 받은 상위권 학생은 특목고와 자사고에 집중됐고 "평균 2등급 이상 비율을 기준으로 상위 50개 고교를 뽑아보니 일반고는 8곳에 불과했다"며 "일반고의 침체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다른 누구보다 이 부총리 스스로가 자사고가 고교 서열화를 자극했다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작년 10월 28일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소위 말하는 고교 다양화 정책이 서열화로 이어진 부작용이 분명히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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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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