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나라 한국, 강원도와 핵 쓰레기의 공통점

[초록發光] 특별법에 숨어있는 악마의 디테일

강원특별자치도의 출범을 놓고 대통령의 축하와 환경단체의 규탄이 교차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미래 산업을 주도하는 글로벌 도시 비전의 강원 자치 시대가 개막하게 되었다고 반기는 반면에, 다른 진영에서는 생태 파괴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며 우려하는 실정이다. 환경단체들은 어째서 2022년 5월 강원도 특별법이 통과될 당시에는 아무런 반대 성명도 내지 않다가, 특별자치가 시작하는 지금에서야 뒤늦게 한탄하는 것일까? 해답은 강원도와 핵 쓰레기의 공통점에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사실 강원도는 원자력과 관련이 거의 없다. 한국의 원전은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에 자리 잡았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전남 영광, 부산 고리, 경주 월성과 경북 울진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수도권에서 심리적 거리가 가장 먼 강원도는 단 한 기의 원전도 보유하지 않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가 청정 강원도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역대 지사와 도민들의 인식 덕분에 원전 갈등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나마 깊숙이 관련되었던 삼척도 문재인 정부에서 예정 구역 지정이 철회되면서 상황이 종료되었다. 이런 원전 해방지역 강원도와 핵 쓰레기의 교집합이 바로 "특별법"이다.

사실 특별법은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 수립돼야 한다. 특정 지역의 특별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시적 법률 기반이 필요한 때에만 제정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태풍이나 지진 같은 재난 지역 지원을 명시하는 법률이나, 10년 한시적인 효력으로 인해 현재 폐지된 전력산업 민영화를 위한 특별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강원도와 사용 후 핵연료는 모두 특별법이라는 공통의 문제를 지니고 있다. 즉, 둘 다 한시적인 상황이거나 특별히 예외적인 사안일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특별법으로 법률 기반을 마련했을 때 발생하는 일반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통상적으로 특별법은 기존 일반법 체계와의 충돌로 인해 법체계의 불안정을 가져온다. 예컨대 환경영향평가법에 대한 예외 조항이 특별법에 포함되면, 환경피해 관련 규제 체계가 붕괴할 수 있다. 한편으로 특별법의 경우에는 주무 부처의 입장이 과도하게 강조되기 때문에, 유관 기관의 견제가 불가능하다는 문제도 지니고 있다. 게다가 한국에서 특별법은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만들어지는 과도한 정치적 입법이라는 지적도 받는다. 이처럼 태생적으로 많은 문제를 가지기 때문에 2011년 국회 법사위는 상임 위원장들에게 특별법 제정을 자제하라는 공문까지 발송했을 정도였다.

강원도 특별법에서도 이런 고질병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작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이광재 의원은 도지사 출마의 조건으로 특별법 통과를 제시했다. 마침 양당 모두의 정치적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지면서, 결국 선거 직전에 법안은 통과되었다. 당시 환경단체들은 이러한 특별법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아무런 반대 성명을 내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강원특별자치도가 출범하기 직전인 5월에 국회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도지사에게 환경 규제를 회피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새로운 법률의 제정은 어렵지만, 기존의 법률을 조금 바꾸는 개정은 손쉬운 편이다. 이후 환경단체들은 강원도난개발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이미 제정된 특별법을 다시 되돌리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사용 후 핵연료 혹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라고 불리는 핵 쓰레기 특별법 논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현재 관련 특별법 3개가 상정된 상태다. 이들의 입법 과정도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2021년 문재인 정부 집권기에 국회의 다수를 점유하고 있던 민주당에서 먼저 특별법을 제출했다.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 여당 의원들마저 합세하며 경합을 벌이는 상황이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뿐만 아니라, 원자력계의 촉구 결의에 이어 원전 소재 광역 지자체의 단체장까지 가세하면서 정치적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는 공청회가 진행 중이다. 환경단체는 법안의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면, 방폐물관리위원회의 위상, 고준위 폐기물의 원전 내 저장시설 존치 기한, 중간저장 및 최종처분 시설의 확보 시점, 지역주민의 수용성 확보 방안 등의 세부 사항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사용 후 핵연료를 일반법이 아닌 특별법으로 제정해야 하는 필요성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다. 수명 60년의 원전에서 배출되는 핵 쓰레기는 수만 년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기간 동안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전혀 한시적인 관리 대상이 아니다. 물론 20여 기의 원전이 전국에 흩어져 있으니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게다가 한국은 원자력 관련 일반법에 기반한 규제 체계를 이미 구축해놓고 있다. 이 와중에 추가되는 특별법은 기존의 안전 규제 시스템을 무너뜨릴 위험을 키우는 데다 주무부처의 입김이 지나치게 규제에 개입할 공산을 키우고, 과도한 정치적 입법이라는 취약점마저 지닌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 관련 논의도 예측가능한 걱정스러운 경로로 접어들고 있다. 옛말에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고 했듯이, 강원도 특별법에서 환경 규제가 무력화되었던 사례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작년 특별법이 통과될 당시에는 문제를 몰랐지만, 이후에 개정안이 쉽사리 처리되면서 지금은 백두대간 보호마저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서양에서도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고 하는데, 사용 후 핵연료 특별법은 독소 조항이 숨어있기 좋은 최적의 은신처다.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부회장인 윤종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가 21일 오전 국회에서 국민의힘 이인선, 김영식 의원 등이 참석한 고준위방사선폐기물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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