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 막걸리라고?" 전통주 바깥세상으로 달려나가는 '너드'들의 도전

[서형원의 우리술 탐방기] ⑤경북 상주 <너드브루어리>

<너드브루어리> 단독 부스 앞에 50미터 넘게 늘어선 인파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대감에 눈을 반짝이는 젊은이들. 지난 5월 열린 <대한민국막걸리엑스포>에서 올해의 히트 막걸리 ‘너디호프’의 인기를 실감했다. 새로운 막걸리 ‘너디블랑’이 이날 첫선을 보인다는 소식도 이들의 발걸음을 재촉했으리라.

‘너드’(nerd)란 세상 물정 모르고 사교성 없는 멍청이, 특히 컴퓨터밖에 모르는 괴짜들을 부르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든 말든 나의 관심사에 자신을 쏟아 붓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32세의 서울 토박이 청년 이승철 대표는 몇 년 전 연고 없는 경북 상주로 이주하여 너드브루어리를 차리고 세상에 없던 너드들의 막걸리를 내놓고 있다. 그중 너디호프는 올해의 히트 막걸리 중 하나로 꼽힐 만하다.

"바질 막걸리 한번 드셔보실래요?"

▲지난 5월 열린 제2회 대한민국막걸리엑스포에 참여한 이승철 너드브루어리 대표. 유독 길게 늘어선 줄이 ‘너디 시리즈’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서형원

주막에서 막걸리를 권하는 일은 아주 조심스럽다. 너디호프처럼 낯선 막걸리라면 더욱. “바질 막걸리 한번 드셔보시겠어요?” 호기심 많아 보이는 분들에게 주로 권한다. “바질 막걸리가 있어요?” “상주에서 젊은이가 만드는 막걸린데 생바질 향이 아무 매력적이어서 올해 아주 인기예요. 바질과 막걸리가 궁합이 잘 맞더라고요.”

결과는 예상 밖이다. 젊은 층과 여성들은 물론 입맛이 보수적일 거라는 나의 편견이 무색하게 중년 남성들에게도 너디호프는 상당히 호응이 좋다. 그만큼 우리 입맛의 경계가 넓어졌다는 말일 테다. 우리 술의 경계도 그만큼 넓어져야 할 터. 경북 상주의 너드브루어리는 그런 역할을 하는 젊은 양조장 중의 하나다.

▲픽셀 그래픽과 네온 컬러. 너드브루어리의 막걸리는 재료, 맛, 디자인, 마케팅에서 모두 전통의 바깥을 겨냥하고 있다. ⓒ홍지숙

너드브루어리는 막걸리 같지 않은 막걸리를 만든다. 스스로를 전통주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승철 대표는 말은 이렇다. “우리 것을 사용해 우리의 ‘떼루아(terroir, 토양)’를 담고 있는 우리 술을 빚지만 전통주라는 틀에 머물고 싶지는 않다. 전통주와 다음 세대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고 싶다.”

법에 의한 전통주는 식품명인이나 무형문화재가 만드는 ‘민속주’와, 농업인이 지역농산물로 만드는 ‘지역특산주’ 두 가지를 말한다. 너드브루어리의 막걸리는 농업법인이 상주의 쌀과 허브 등의 농산물로 빚는 지역특산주다. 그래서 전통주에 부여하는 세제 혜택과 온라인 판매 등 유통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전통주가 아닌 술, 막걸리스럽지 않은 막걸리를 빚겠다고 말한다. 이 대표의 눈은 전통주 시장이 아니라 와인 시장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걸리들과 경쟁하고 싶지 않아요. 와인을 즐기는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막걸리라는 탈을 쓰고 와인 시장을 빼앗아 오려고요.

이 대표의 의지는 바질 막걸리 너디호프를 통해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너디호프는 와인 보틀숍에서 와인 애호가들에게 팔려나가고 있다. 고객은 대부분 30대 여성들이다.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역특산주 막걸리는 세금 혜택이 있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돼요.”

그런 의미에서 너드브루어리는 막걸리 시장을 질적으로 키우는 일을 하고 있다. 좋은 막걸리로 막걸리 시장을 점진적으로 키우는 방향도 있지만 전혀 새로운 막걸리로 다른 술을 즐기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는 노력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주류 시장은 출고가 기준으로 약 9조원이며, 전통주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출고액 1천억 원으로 지난 해 겨우 시장점유율 1%를 넘어섰다. 반면 2022년 와인 수입액은 7천7백억 원에 이르고 와인의 소비시장 규모는 2조 원대로 추정된다. 대중적인 주류인 희석식 소주와 맥주가 각각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 쌀로 빚은 전통주는 이들과 가격 경쟁을 하기 어렵다. 전체 술 소비가 늘지 않는 추세이므로, 와인 같은 고급주류와 경쟁하지 않으면 우리 술의 성장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와인, 위스키, 바이주 등을 대체할 수 있는 우리 술을 생산하는 양조장들이 최근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그러나 자본이 부족한 1인 청년 양조장의 시도가 성공한다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나답게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너드브루어리의 막걸리들

▲너드들의 ‘나다움’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담은 막걸리들. ⓒ홍지숙

제품 종류 : 위 사진 왼쪽부터 ‘너디펀치’, ‘너디킥’, ‘너디호프 사워’ ‘너디호프 드라이’, ‘너디블랑’. 규격은 모두 5%, 700ml.

원재료 : 상주산 찹쌀, 물, 개량누룩, 효모, 효소. 너디호프는 생바질, 너디블랑은 타임과 로즈마리 추가.

제조법 : 이양주, 밑술 24시간 후 덧술, 7~8일 발효

너디 시리즈의 첫 번째 프로젝트 ‘너디펀치’는 상큼발랄한 파티 막걸리다. 큰 사발에 담아 파티에서 즐기는 펀치 음료처럼, 너디펀치는 친구들과 즐기는 파티에 제격인 새콤달콤한 막걸리다. 찹쌀의 부드러운 단맛과 상큼한 산미로 식후 입가심에도 잘 어울린다.

두 번째 프로젝트 ‘너디킥’은 정신이 번쩍 드는 산미가 매력적인 각성주다. 신선한 자극이 필요한 이 시대의 너드들에게 바치는 막걸리란다. 신선한 산미로 입맛을 돋우는 너디킥은 음식에 곁들이기 좋은데 특히 매운 음식과 잘 어울린다.

세 번째 프로젝트 ‘너디호프’는 풍부한 바질의 향취로 코끝부터 마음까지 설렘을 일으키는 술이다. 아이피에이 맥주의 싱그러움과 ‘보태니컬’한 느낌이 팡팡 터지는 막걸리를 만들고 싶었던 이 대표는 막걸리 칵테일을 실험하면서 바질이 잘 어울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바질의 꽃말이 희망이라서 너디 ‘호프(hope)’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데 은근한 설렘이 일어나는 바질향의 느낌과 희망이라는 말은 뭔가 잘 어울린다.

너디호프는 담백한 ‘드라이’와 산미를 보강한 ‘사워’ 두 가지로 생산된다. 산미가 강한 너디킥의 원주를 씨앗술로 더해 너디호프 사워를 빚는다. 너디호프는 어떤 음식이나 특정한 자리에 어울린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무엇을 곁들이든 술 자체로 두근거림과 평안함을 즐기게 된다.

지난 5월, 너디 시리즈의 네 번째 프로젝트 ‘너디블랑’이 펀딩 플랫폼을 통해 출시되었다. ‘하얀 너디’라는 뜻처럼, 화이트와인을 대체하여 생선에 어울리는 막걸리로 기획되었다. 향신료로 널리 쓰이는 타임과 로즈마리를 써서 생선을 더 산뜻하게 즐길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인터뷰 후 너드브루어리 2층 바에서 생선회와 너디블랑을 즐겼는데, 회 한 점 먹고 너디블랑으로 산뜻함을 돋우고 수다를 나누다 다시 회 한 점 먹고 너디블랑 즐기기를 반복하며 무척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우리 주막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해봐야겠다. 생선구이에도 무척 잘 어울린다.

너드브루어리는 알코올 도수 5도로 저도주를 즐기는 최근 트렌드에 맞는 막걸리들을 낸다. 그런데 알코올 도수를 낮추려면 물을 많이 타야하고 그러면 술이 밍밍해지므로 값싼 술들은 감미료를 타는 식으로 간단한 해결책을 찾는다. 너디 시리즈는 다르다. 감미료 없이 쌀과 발효제만으로 술을 빚되, 원주 도수를 10도 이하로 낮춰 쌀 술 고유의 풍미를 높이고 가수량(물 타는 양)을 줄였다. 15도 원주와 비교하면 가수량이 절반으로 줄기 때문에 원주의 단맛, 신맛이 더 잘 살아 있는 술을 만들 수 있다.

같은 재료로 도수 낮은 원주를 만든다는 건 영리라는 면에서는 손해지만, 그렇게 하여 술맛을 살린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우리가 술값을 좀 더 내야 한다.

너디 시리즈는 상주산 찹쌀과 개량누룩, 효소, 효모로 빚는다. 스스로 재료에 대한 집착과 강박이 있다고 말하는 이승철 대표는 감미료나 산도조절제 등은 전혀 쓰지 않고 허브는 상주의 귀촌 농민들에게 직접 요청해 재배하여 쓴다.

너드브루어리의 막걸리는 전통누룩을 쓰지 않는다. 전통누룩을 쓰지 않으면 전통주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나도 전통누룩을 쓴 술을 더 아끼고, 누룩을 잘 쓴 술은 맛과 향이 복합적이고 더 고급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승철 대표는 전통누룩 막걸리의 맛과 향을 벗어나 더 넓은 술의 세계로 달려가고 싶어 한다.

전통의 바깥으로 달려가는 막걸리가 우리 술의 경계를 넓힐 것인지 우리 술의 정체성을 흐리게 할 것인지 지금은 지켜볼 일이다. 판단은 장사꾼의 몫도 전문가의 몫도 아니고 우리 술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의 몫이다. 지금은 경계를 부수고 넓히는 너드들의 분투를 힘껏 응원할 뿐이다.

너드브루어리는 일관되게 우리가 즐겨온 서구의 술 문화를 대체하는 우리 술을 만들어왔다. 올해 중에는 스파클링 막걸리를 출시할 계획이다. 탄산감 있는 막걸리에 대한 수요는 분명히 있다. 합리적인 가격의 스파클링 막걸리가 나온다면 성공가능성이 매우 높고, 막걸리 수요층을 넓히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 대표는 이 기획에 다음 승부를 걸고 있다. 이 또한 우리 술의 경계를 넓히는 일이 될 것이다.

시골로 파견된 도시 청년, 세계 최고의 눈높이를 겨냥하다

▲너드브루어리 앞에 선 이승철 대표. 유리문에 쓰인 “NERDS CHANGE THE WORLD”라는 말대로 이 대표 같은 너드 ‘술덕후’들이 막걸리 세상을 확실히 바꿀 것 같다. ⓒ홍지숙

자신을 ‘너드’, 혹은 ‘술덕후’라 말하는 이승철 대표는 영등포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다. 펜 대신 마우스를 잡았다는 이 대표는 열일곱 살부터 게임하는 형들 따라다니며 술을 마셨다는데, 형들이 게임대회에 입상을 했는지 어느 날 5만 원쯤 하는 과일맛 술을 맛보게 되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술을 값싸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대학은 화학과를 가기로 했다니 흔치 않은 양조 꿈나무였던 셈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양조를 가르치지 않았고 이 대표는 학생 신분으로 수제맥주 양조장에 취업하여 양조에 입문하게 된다. 그 후 우리나라 위스키의 대가로서 현재 최고 수준의 과일 증류주를 만드시는 이종기 교수의 ‘양조증류아카데미’에서 양조와 증류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2018년 양조 업계 취업의 문을 두드렸다.

큰 자신감과 꿈과 가지고 세계적인 양조기업에 응모했으나 낙방하고, 그 후 여러 국내 양조 대기업, 전통주 대기업의 문을 두드렸으나 모두 낙방했단다. 그때의 이 대표는 내가 가서 무언가 바로잡아주겠다, 당신들은 나를 당연히 뽑아야 한다는 생각할 만큼 자신감이 넘쳤고, 아마 그래서 떨어졌을 거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문턱까지 갔던 스코틀랜드 위스키 증류 석사과정도 사소한 영어점수를 맞추지 못해 가지 못했단다.

이 모든 일이 2018년에 일어났다. 사실 이 대표는 양조업계의 문을 두드리면서도 직접 양조를 하지는 않으려 했다. 맥주를 배우면서 양조가 너무 힘든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잠시 다른 사업으로 외도를 했다가 거기서도 실패를 맛본 이 대표는 2021년 농촌 살아보기 프로그램으로 상주에 와서 결국 최후의 카드를 꺼냈다. 상주에 왔으니 상주 곶감을 쓰든 무슨 수를 쓰든 통하는 방법을 찾겠다고 작심하고 직접 양조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 ‘도시청년 시골파견제’ 사업에 선정되어 자금을 지원받게 된 이 대표는 2022년 ‘농업회사법인 주식회사 상주주조’를 설립하고, 8월에 첫 제품 너디펀치를 출시한다. 다음 달에 너디킥, 그 다음 달에 너디호프를 출시하여 막걸리 시장의 인정을 받게 되고, 올해는 너디호프로 대한민국주류대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양조 꿈나무가 자기 운명을 피하려다 상주에 뿌리내리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중이다. 그토록 피하려던 양조는 즐거울까?

돕는 이들이 있지만 너드브루어리는 아직 1인 양조장에 가깝다. 매우 힘들지만 직접 기획, 개발하고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재미있고, 시장의 반응을 확인하니 보람도 있다고 한다. 물론 여전히 양조는 고되고, 온전히 쉬는 날은 하루도 없고, 또래 양조인이 없는 지역에서 외로움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승철 대표는 전통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전통을 잇는 일에 관심이 많다. 그는 조선시대 상주의 조리서(요리책)인 ‘시의전서’를 참고해서 옛 술을 복원하고 현대화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법인 명칭인 ‘상주주조’는 일제강점기부터 1985년까지 있었던 상주의 대표 양조장을 잇겠다는 생각으로 지었다.

지금은 굴뚝이 있는 상주주조 건물이 근대산업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대표는 옛 상주주조 공간을 창의적인 공유 양조공간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지역의 다양한 농산물을 이용하고 지역의 작가, 디자이너 등 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하여 창의적인 이야기와 디자인을 가진 술들을 내놓는 공간을 양조인 이 대표는 꿈꾸고 있다.

이승철 대표는 우리 술이 부흥기를 맞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이 품질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힘든 우리 술, 특히 막걸리에는 절실한 조언이다. 동네에서 만들어 이웃끼리 먹던 막걸리와는 달라져야 한다. 세금과 유통의 혜택을 누려 잠시 성장한다고 해도 품질 관리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잠깐의 유행에 그치고 말 것이다.

업계에도 막걸리에 대해서는 ‘생막걸리가 좀 왔다갔다 하지 뭐.’하는 관용 같은 게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장의 1퍼센트 남짓을 차지하는 술이 아니라, 바이주, 사케, 와인이 자국에서 그렇듯 우리 술이 시장의 큰 부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 술을 찾는 고객들이 늘어나는 지금이 바로 품질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때다.

너드브루어리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시장을 냉정하게 보는 눈, 잠재 고객들에게 통하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획력과 기술 역량이었다. 수많은 청년들이 우리 술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새로운 시도로 우리 술의 외연을 넓히고 있는 젊은 양조인들을 응원한다.

▲거울 속 왼쪽부터 홍지숙 술별닷컴 대표, 서형원 별주막 대표, 이승철 너드브루어리 대표. ⓒ홍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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