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는 뿔 갈고, 사람은 도박하고…"소싸움이 정말 전통인가"

"싸움소 육성은 학대 그 자체 … 일몰제로 업계 피해도 완화 가능"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중단됐던 소싸움 대회가 재개 움직임을 보이면서 전국 곳곳에서 소싸움 폐지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전통놀이 대 동물학대'의 구도로 뜨거웠던 소싸움 존폐 논란이 사회적으로 재점화되는 모양새다.

현재 전국 11개 지방자치단체에서 동물보호법 제10조 상의 동물학대 예외조항(민속경기 등)으로 합법 개최를 인정받고 있는 소싸움 대회는 지난 몇 년간의 팬데믹 중단 기간을 넘어 재개 국면에 들어섰다.

협회 측은 지난 2021년부터 동물학대 논란을 인식해 '소 힘겨루기 대회'로 대회 명칭을 바꿨지만, '뿔 갈기', '폐타이어 끌기' 등 싸움소 육성과정에서 드러나는 동물학대 및 대회 자체의 동물권 침해 양상은 바뀌지 않아 동물보호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대구 달성군에서 소 힘겨루기 대회가 개최됐고, 지난 5월에는 당초 소싸움 대회 대안 마련 의지를 밝힌 전라북도 정읍에서도 대회 재개 소식을 밝혔다가 구제역 유행을 이유로 재개를 잠정 중단했다. 경상북도 청도군에선 지난 3일 구제역 유행 국면에도 불구하고 청도 소 힘겨루기 대회를 재개했다.

이에 지역 녹색당, 정의당 등 진보정당과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해방물결 등 동물권 단체들이 즉각 반발에 나섰다.

▲지난 4일 경북 청도군 청도 소싸움 경기장 주차장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연 정당 및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폐 타이어를 끄는 싸움소 육성과정'의 동물학대를 지적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녹색당 제공

녹색당, 대구녹색당 및 대안의 숲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4월 달성군 소싸움 대회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회 주최 측이 부정적인 인상을 완화하고자 소싸움을 소 힘겨루기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나 내용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라며 "소는 대회장에서 싸우는 도중 뿔에 손상을 입거나 피를 흘리기도 하는 등 소싸움은 동물학대가 분명하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현행 동물보호법이 '민속경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를 동물학대의 예외사례로 인정하고 있는 것을 두고 "소는 오락·유흥의 목적에 더해 자본으로서의 도구로 전락했을 뿐, '전통'은 도대체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동물권 단체들은 지난 2월 국회에서도 소싸움을 동물학대에서 예외로 규정하고 있는 동물보호법 8조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지난 3월 "2024년도 예산 편성 전까지 소싸움 대회에 대한 대안을 찾겠다"(이학수 정읍시장)고 밝혔던 전북 정읍시는 오는 8일부터 코로나 기간 중단된 정읍민속소싸움대회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녹색당 및 공공성강화정읍시민단체연대회의.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자유연대, 동물해방물결 등 정당 및 시민단체들은 지난달 18일 정읍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뿔갈기, 시멘트로 채워진 폐타이어 끌기 같은 학대적 훈련과 동물성 보양식을 먹여대는 방식의 싸움소 육성은 절대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며 "더구나 싸우기 싫다는 소들을 억지로 싸우게 하고 거기에 돈을 배팅하는 도박장을 운영하며, 전통문화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각 마을을 대표하는 튼튼한 소들이 나와 서로 힘을 겨루며, 이웃 마을 주민간의 화합을 다지"던 '민속 소싸움'은 이미 관련 도박 및 상금을 위한 '동물학대 활용 상업'으로 변질했고, 때문에 동물보호법 상의 예외조항 적용 명분도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특히 이들은 "소싸움이 동물학대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현재 싸움소를 키우고 있는 농가와 업계 종사자들의 생계문제 등으로 인해 단번에 없앨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하여, 소싸움 예외조항에 대해 일몰제를 적용하고 그 기간 동안 찬, 반 양측이 함께 대안 마련을 위해 고민하자고 제안"하겠다며 소싸움 폐지의 대안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보상을 통해 싸움소 농가의 폐업을 유도하여 싸움소를 줄여나가는 것으로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며 "정읍시의 경우 2023년 1월 기준으로 4명의 주인이 15마리의 싸움소를 등록하였다고 한다. 소싸움 대회를 치를 예산 대신 폐업 보상예산을 편성하여 폐업을 유도한다면, 전국의 모범사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읍시는 현재 구제역 유행 국면을 이유로 소싸움 대회 재개를 잠정 중단한 상태다.

지난 3일부터 소싸움 대회가 재개된 경북 청도군에서도 지난 4일 녹색당, 정의당 등 진보정당 및 동물권 단체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4일 오전 청도 소싸움 경기장 주차장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3년, 소에게 싸움을 시키는 행위는 자랑할 일도 축제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특히 대회 관련 스포츠 도박인 '우권 판매'가 행해지고 있는 청도 소싸움 대회를 두고 "청도는 더욱 학대의 강도가 심하다. 우권을 팔아서 승부에 돈을 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소가 상해를 입든, 죽든 상관을 할까. 오직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승부를 원한다"라며 "이것이 어떻게 레저이고 스포츠이고 전통이 될 수 있나" 되물었다.

청도 소싸움 경기를 관장하고 있는 청도공영공사는 지난 11년간 77억 원 상당의 경영적자를 낸 끝에 "이런 적자를 줄이기 위해 경기수를 더 늘리는 방법을 추진"했는데 "이러한 양상으로 볼 때 청도의 소싸움은 절대 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수익창출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정당 및 단체들은 "청도는 이제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한다"라며 "소싸움 경기장을 즉각 폐쇄하고 청도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평화로운 축제를 요구한다. 그것이 진정 청도의 자랑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18일 전북 정읍시 정읍시청 앞에서 녹색당 및 전국 단위 동물보호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읍시의 6월 소싸움 재개를 비판하고 있다. ⓒ녹색당 제공

현행 동물보호법 제8조는 '도박·광고·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동물 학대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지만, 11개 지역 지자체장이 주관하는 소싸움 대회의 경우 농림축산식품부령을 근거로 보호법상 예외 사례로 인정되고 있다.

개나 닭 등을 이용한 싸움은 금지하고 있지만 소만은 예외로 두고 있는 셈이다. 이에 지역 진보정당 및 동물권 단체들은 지역 싸움소 농가에 대한 적절한 폐업보상 등을 포함한 "시대 흐름에 따른 적절한 전환"을 강조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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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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