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 살해된 아이, 고독사, 자살률…늘어난 복지재정, 체감은 글쎄?

[복지국가SOCIETY] 지역 복지가 살아야 복지 문제 해결된다

한국사회는 복지국가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사회보장시스템이 정비되었고, 사회복지 서비스도 자선과 시혜의 관점을 벗어나 권리중심에 따른 서비스로 변화하고 있다. 어떤 복지국가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국민 인식의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것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되었다. 이는 헌법 제10조와 34조에 명시되어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헌법에 정해진 국가의 의무를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 제34조 ①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②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은 이 조항에 근거해서 국민들의 복지를 책임질 의무를 지니고, 그것을 보장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 시행해야 한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노인요양포함),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의 사회보장과 기초생활수급자를 위한 공공부조, 복지 전달 체계를 통한 사회복지서비스를 통해서 복지국가로서의 책무를 다하고자 하는 체계를 구축해왔다.

국가예산 중 복지 재정의 비중이 가장 크며, 앞으로도 복지 재정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노인 인구 비중의 확대, 장애인 복지 수요의 증가, 저출산에 대한 복지 지출의 증가 등 재정을 급격하게 늘릴 수밖에 없는 요인들이 허다한 실정이다. 선진국이 되어 복지재정이 급속하게 늘어감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복지국가를 지향함에도 대한민국은 왜 행복한 나라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난 후, 정부와 국회는 많은 예산을 들여서 복지전달체계를 보완하였다. 그렇지만 잊을만하면, 우리에게 충격적인 사건은 계속해서 일어난다. 정인이와 같이 영아 살해 사건이 일어났다. 국가는 대책을 세웠지만 두 달 후 또 아이가 부모에게 살해되고, 계속해서 반복된다. 고독사가 늘고, 노인 자살률은 세계최고이며, 청소년 자살과 학교폭력 등 다양한 사회문제는 더 심각해져가고 있다. 2004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4.4%이던 복지재정 비중이 2020년 14.4%로 커졌다. 10년 이내 현재의 복지수준만으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근접하는 복지재정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체감하는 사회복지는 좋아지지 못하고 오히려 더 열악해지고 있다.

우리는 더 잘 살기 위해서, 그리고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정책과 제도를 고치고 만들어낸다. 복지정책과 제도는 다른 나라들(주로 일본, 미국, 유럽)이 발전해왔던 경로에 따라 우리가 부족한 것들 채우는 과정으로 발전하고, 문제가 생기면 예산을 투입함으로 해결해왔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발전 정도가 기존에 했던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더는 우리나라 앞에 있는 나라들이 없다. 우리가 배우고 따라가야 할 선진국의 복지시스템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제도와 시스템은 참고가 될 뿐 그것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아니다. 선진국이란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상황과 능력에 기초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청소년이 행복하고, 장애인과 노인 삶의 질이 높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직시하고 우리의 제도를 우리가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가야하는 복지국가의 길 중에서 지방분권, 지역 복지는 복지를 이루어 가는 핵심 축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제도를 우리가 만든다는 의미는 중앙정부와 국회만이 아니라 지방분권에 근거해서 기초자치단체도 스스로 자신들의 복지를 향상시켜 나가는 것을 말한다.

지방분권과 복지

국가는 중앙정부, 광역(특별)시, 지방자치단체의 3단계를 거쳐서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법과 제도는 국회와 행정부가 만들고, 그에 기초해서 국민의 삶은 광역(특별)시가 책임지고 시의 위임을 받은 지방자치단체가 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복지활동을 수행하게 된다.

사회보장은 소득이 있는 사람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보편적 복지를 달성하는 핵심기제이며, 사회복지서비스는 장애인이나 노인, 노숙인, 요보호아동, 학대아동, 학교 밖-가정 밖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일들을 주로 감당한다. 이를 관할 구청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민관협력이다. 지역복지는 민관협력으로 이루어진다. 사회복지서비스는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아래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른 복지전달체계, 즉 종합사회복지관, 종별(장애·노인)복지관, 아동양육시설, 지역아동센터, 청소년관련기관(쉼터 등), 주간보호센터, 직업재활시설 등이 지역 주민에게 차별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된 지역주민이 있으면, 동주민센터(지자체), 건강보험공단, 장애인복지관 등이 연계해 해당 주민이 사고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영위하는 게 가능하도록 협력하여 지원한다. 옆집에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는 이를 주민센터에 알린다. 주민센터는 지역복지관과 함께 사례관리회의를 열어 지원함을 통해서 주민들이 갖고 있는 복지적 어려움을 해결한다.

은평구에서 글쓴이의 경험

글쓴이는 20년 간 서울 은평구라는 지역에서 복지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2000년대 초에 사회복지사업을 수행하는 사회복지법인에서 모금사업 담당으로 지역복지협의체의 지역복지분과로의 참여 요청을 받았다. 지역복지분과활동을 통해 사회복지가 복지관이나 거주시설단위의 이용인, 거주인이 아닌 지역주민 전체의 복지서비스로 확장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후 실무협의체 위원장, 대표협의체 위원장이 되어 은평구의 복지계획 3기와 4기 계획수립에 참여하였고, 현재는 지역의 여러 복지전달체계(복지관, 거주시설 등)를 운영하면서 사회복지협의회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복지활동을 하면서 글쓴이는 사회복지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사회복지는 전쟁고아를 위한 시설에서 외국의 원조를 받으며 시작했다. 그 후 장애인 거주시설이 늘어나는 등 90년대 초까지는 자선과 시혜의 관점에서 불쌍한 사람을 돌보는 것이 사회복지였다. 부모를 잃은 고아나, 부모가 더는 키울 수 없어 유기된 장애인을 시설에서 돌보는 생활시설 위주의 서비스가 사회복지의 역할이었다. 90년대 이후에는 복지관 등의 이용시설이 장애인, 지역의 사회적 약자들을 클라이언트의 개념으로 보고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글쓴이가 협의체의 지역복지분과에 참여했을 때에는 이미 사회보장과 사회복지서비스가 국가의 책임이며, 행정과 민간이 함께 지역의 복지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제가 복지의 핵심과제로 부각된 시기였다. 민과 관이 협력하여 지역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계획을 세우는 과정을 4년마다 반복하게 되었다.

은평구의 경우 구의 1년 예산은 2022년 기준 1조800억 원 정도다. 그중 사회복지 관련예산이 6000억 원 정도를 차지한다. 구예산은 공공부조, 복지전달체계, 장애인, 노인, 아동관련 예산 등으로 구성된다. 지방자치단체 예산의 60%가 복지에 쓰이며, 타 지방자치단체도 비슷한 비중을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의 사회보장을 제외한 지출규모이며, 주로 공공부조와 사회복지서비스의 지출을 말한다.

4년에 한 번 씩 지역의 복지계획(현재는 지역사회보장계획이라고 한다)을 세우는 과정은 지역현황을 조사하고, 지역주민 중 일부의 욕구를 조사하여 그에 기반한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구성된다. 은평의 경우 장애인, 아동청소년, 노인, 주거, 기획분과 등 14개 분과로 나뉘어 민간(복지기관, 시민단체, 주민대표 포함)과 구청과 주민센터의 주무관들이 각 분과에 모여 논의과정을 거친다. 이를 통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할 계획도 마련한다. 각 자치단체는 짧게는 3개월, 길게는 8개월 정도를 거쳐서 사회보장계획을 세우고 법에 따라 사업을 수행한다. 아직, 대부분의 지역은 이를 형식적으로 수행한다. 글쓴이는 2기는 평가자로, 3기는 기획단으로, 4기는 협의체 위원장으로, 5기는 대표협의체의 전문위원으로 참여한 경험으로 협의체가 활성화되면 활성화될수록 지방분권에 의한 지역복지, 즉 복지국가로 제대로 된 길을 가게 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중앙의 정책과 평균의 함정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60%를 차지하는 복지예산은 대부분 용도가 정해진 경직성 예산(수급비 등)이다. 그리고 그 예산은 국가가 정한대로 쓰이게 된다. 국가는 국가복지 향상을 위해 조사한다. 수십 만 건의 표본조사를 하고, 전수조사를 하여 국민 삶을 파악한다. 그에 기초해서 국민의 인간다운 삶의 기초 선을 정하고 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설정한다. 국가는 평균에 기초해서 복지를 설계한다. 5000만 명의 평균에 기초해서 설계된 복지서비스는 기초자치단체를 통해서 제공된다.

복지를 옷에 비유해보자. 우리나라 남자의 평균 키가 174센티미터이고 여자는 163센티미터라고 해서 모든 국민이 그 키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평균에 기초해서 옷을 제공한다면 그 옷은 95%의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 될 것이다. 사회복지가 획일적으로 제공된다면 그것은 배급이 된다. 그러한 방식으로 제공되는 복지는 한 사이즈로 만들어진 옷이 모두에게 맞지 않는 것처럼, 각 사람의 존엄이나 인간다운 삶을 담아낼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기는 매우 어렵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서 국가는 앞서 언급한 지역사회보장계획을 지방자치단체별로 세우도록 유도한다. 같은 서울이라도 은평구와 강남구, 성북구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모두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인구구성이 다르고, 삶의 경험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며, 각기 다른 지역적 조건에서 살고 있다. 예를 들어 범죄가 일어나는 양태도 지역마다 다르다. 어느 지역은 성폭력이 많이 일어나고, 어느 지역은 강력범죄가 많이 일어나며, 또 어떤 지역은 절도와 편의점 범죄 등의 생계형 범죄가 많이 일어난다고 하자. 지역별로 범죄 양상이 꽤 큰 편차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획일적인 서비스만 제공된다면 그 지역 주민 삶의 질은 올라갈 수 있을까?

중앙의 정책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글쓴이는 은평구에서 태어나서 대학원 재학 중 3년간 자취한 경우를 제외하면 50년 이상을 은평구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은평구에 대한 이해나 애정이 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은평의 문제는 은평구 구성원이 주체가 되어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또 그것이 올바르고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중앙정부와 국회의 정책은 국민전체를 대상으로 평등하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도록 설계된다. 기본적으로 제도와 정책은 그렇게 설계되는 것이 맞다. 경쟁의 영역에 있는 많은 영역은 국가가 공정과 공평에 기초해서 서비스를 설계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복지의 영역은 좀 다르다. 공공부조, 사회복지서비스가 단순히 조건에 의해서만 적용되는 방식으로 작동되는 것이 좋은 복지라고 할 수 없다.

세 모녀 같은 사건이 반복되면, 문제의 원인을 신청주의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발굴주의에 기초해서 서비스를 설계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찾아가는 서비스를 거부하는 어르신의 경우,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신청주의에서 발굴주의로 바꾸어 담당공무원의 수를 10배로 늘리면 고독사나 그러한 사각지대의 문제가 해결될까? 당연히 기대한 대로 되지 않는다. 이미 관은 그러한 현장의 경험을 갖고 있다. 맥락과 소통이 있는 지역사회에서 복지는 민과 관이 함께 해결해야 한다. 송파 세 모녀의 문제, 노인 고독사의 문제는 획일적인 방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고립되는 과정, 그 안에 존재하는 사회적 관계의 맥락 등이 같이 고려되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지역사회가 아무런 소통 없이 고립된 한 가족, 어떤 어르신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획일적인 지원으로 해결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복지적이라고 할 수 없다.

다양한 은평의 아이들이 겪는 문제, 내 이웃이 겪는 문제, 옆집의 장애인 가족이 겪는 문제들을 자치단체와 민간 복지전달체계, 지역의 시민단체, 교회나 사찰, 그리고 그간 개인적으로 만들어온 사회적 관계가 함께 연결될 때 문제의 실마리는 풀린다. 즉, 소통이 있는 지역공동체가 대한민국 국민(지역주민)의 인간다운 삶, 복지국가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글쓴이가 사는 은평구는 어떤 고민을 하는지, 그것이 어떻게 지방분권과 연결되는지를 청소년과 장애인에 대한 복지실천사례를 들어 알아보도록 하겠다.

장애인 지역사회통합돌봄을 만들어가는 은평

은평구의 장애인은 2만2000명이며 그중 발달장애인 2200명이 살고 있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장애인 복지관이 2곳 있으며, 재활병원, 의료협동조합, 지원주택, 장애인주간보호센터, 거주시설, 자립생활센터 등 장애인과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가 존재한다. 현재 한국사회는 장애인복지가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 전달체계의 확대와 함께 활동보조서비스, 장애인 바우처, 장애인 연금 등 지원제도가 늘어나고 다양해지고 있다. 그래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가? 과거에 비해서 많이 좋아졌다고 할 수는 있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장애인부모단체와 장애인단체들은 발달장애인국가책임제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그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부분적으로 답하며 회피하고 있다. 복지를 돈의 문제로만 바라보아서는 더 좋은 복지를 만들어갈 수 없다. 은평의 경우 발달장애인국가책임제 은평 버전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최중증 장애인이 돌봄을 해결할 수 없을 때, 혹은 부모는 70살이 넘고 장애인은 40살이 넘어 가족이 돌봄을 해결할 수 없을 때도 그 책임은 가족에게 전가되는 것이 현재의 복지체계이다. 장애의 정도가 최중증일수록, 돌봄의 난도가 높을수록, 생계가 힘든 상황일수록 돌봄 책임은 가족에게 전가된다. 그러하기에 장애인 가족의 비극이 언론에 끊임없이 보도된다. 은평구는 그 문제를 지역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한다. 즉 장애인 가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를 부모의 노력만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복지전달체계가 돌봄을 일차적으로 책임지는 방식이 지역에서 정의한 발달장애인책임제 은평 버전이다. 생애주기에 따른 지원, 장애 정도에 따른 지원, 서비스 영역에 따른 지원을 개인별 맞춤(PCP)하여 지역사회의 민간과 지자체가 돌봄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장애인 가족이 서비스를 일일이 찾고 의뢰하고 읍소하여야 하고, 서비스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집에서 가족이 오롯이 돌봄을 부담하지 않게끔 복지전달체계를 바꿔야 한다. 즉 장애인 가족은 복지전달체계에 의뢰만하면 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최중증일수록 돌봄 책임을 구와 복지관이 갖도록 하면 된다. 은평은 긴급장애인돌봄센터를 시범사업으로 위탁하여 수행한다. 거주시설, 지원주택, 주간보호센터, 긴급돌봄센터, 장애아동전담 키움센터 등 이제 돌봄과 관련된 전달체계는 어느 정도 갖추었다고 본다. 여전히 장애인 돌봄 공급이 너무 부족한 문제,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문제가 은평의 공동체에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한다. 중앙정부나 서울시는 하지 못하는 선언을 장애인가족과 함께 은평은 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노력이 지방분권하의 지역복지이다. 같은 예산과 시스템이 주어지지만, 삶의 질을 올리는 것은 COMMUNITY, 즉 지역공동체의 역량, 관계, 소통의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

청소년이 행복한 은평을 만들어가는 것이 지역복지

우리나라 정부는 2023년 7차 청소년 5개년 기본계획(2023~2027)을 발표하였다. 핵심 목표를 활동, 복지, 보호, 참여권리로 나누어 설정하였고, 복지영역의 주요목표를 세 영역으로 나누어 5년 후의 변화 목표로 청소년안전망 지원서비스 건수를 410만 건에서 480만 건으로, 청소년쉼터 퇴소청소년의 자립률을 47.9%에서 48.9%로, 학교 밖 청소년 학업 복귀 및 사회진입비율을 43.8%에서 44.3%로 각각 설정했다. 정부는 서비스건수만 약 17% 정도 늘릴 것이고, 나머지는 1% 이내를 5년 동안 향상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글쓴이가 느끼기에 청소년 복지와 관련하여 중앙정부는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는 공식적인 선언으로 보인다. 건수를 늘리는 것은 매우 쉽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해야 할 일을 건수로 쪼개서 실적을 채우면 된다. 한 청소년을 1년 동안 만나면 1건이고, 3개월로 나누어 4명을 만나면 4건이 된다. 한 청소년을 1년 만나 사회로 복귀할 힘을 기르도록 하더라도 결과는 불확실한 반면, 건수를 늘리는 것은 어렵지 않기에 중앙정부가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서비스 건수의 확대만 주요 목표로 잡았다.

부모와의 갈등을 겪는 청소년이 학교와 집을 나왔는데 청소년 상담복지센터에 상담을 의뢰해왔다. 심각한 갈등인지 잠정적인 갈등인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청소년은 보호 받을 쉼터를 필요로 한다. 또한 학교나 정신건강센터와 연결해 어른의 보호망 안에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미혼모가 되어 집을 나온 청소년에게 집을 구해 주고, 학업이나 진로를 연결해주고 건강한 사회구성원이 되게끔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이 현재 우리나라의 청소년 복지체계에 시스템화 되어 있을까? 학교 밖 청소년의 학업 복귀 및 사회진입비율이 43% 수준에 머무르는데 5년간 1%포인트를 늘리겠다는 것은 중앙정부 차원의 대책은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은평의 경우 학교 밖 청소년의 사회복귀율을 최소 50% 이상으로 만들어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를 찾아가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공동체가 함께하면 그 수치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가는 과정은 당사자에게도 매우 고통스럽다. 당사자가 누군가의 도움과 관계를 간절히 원하기도 한다. 범죄청소년, 학대경험이 있는 청소년, 범죄자의 자녀들 등 온전한 가정에서 성장하지 못하는 청소년이 매우 많다. 그들에게 건강하게 성장할 기회는 없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학대나 착취를 당하거나 절망을 학습하면서 내면화하는 기회가 더 많다. 그 결과가 고립청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서울시의 고립청년이 13만 명이라고 한다. 그들의 청소년기는 어떠했을까? 그냥 13만 명의 고립청년이 있으니 그들을 지원하면 될까? 서울시나 중앙정부의 정책을 들여다보면 모든 솔루션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고립청년을 자립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의존적이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서울시나 정부의 지원체계를 따라가서 제대로 지원을 받는 청년은 오히려 역량과 능력이 있는 청년들이다. 그러한 기회를 찾지 못하고 고립되고 무기력을 체화한 청년을 획일적인 지원체계로는 도울 수 없다. 그 지점에서 지방분권에 기초한 민관의 지역공동체, 구체적으로는 관할구청(구청과 주민센터)과 복지전달체계, 시민사회와 교회와 사찰의 연계가 힘을 발휘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나와 관련된 사람의 일에 더 적극적이다. 가족의 일을, 친구의 일을, 같이 다니는 교회 권사님의 일을 더 적극적으로 자기 일처럼 돕는다.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관계망 속에서 내 친구의 아들이 처한 어려움을 도와주는 일, 은평의 아이는 내 아이라는 생각을 모두가 함께한다면 어떨까. 그래서 구청장, 구의원, 공무원, 전달체계내의 사회복지사, 청소년 지도원, 시민사회와 종교계 등이 다 함께 노력한다면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에게 기회를 주고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지역공동체가 복지국가를 만들어간다는 의미

지방분권하의 지역복지는 민관협력이 핵심이다. 중앙정부나 광역시도의 경우와 달리 기초자치단체는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과 같은 공공부조, 또는 긴급복지지원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국가의 복지서비스는 사회복지사업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민간과 같이 수행한다. 복지전달체계를 위탁받아 운영하는 민간 운영주체(주로는 사회복지법인)을 단순히 관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운영되게 하면, 지역에 맞는 서비스는 제대로 만들어 질 수 없다.

중앙이 기본 얼개를 만들어내고, 지역공동체가 그 지역에 맞는 형태로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것이 복지국가를 이루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와 정부는 커뮤니티 케어,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 지방분권의 시대에 맞는 법과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제도 시스템은 중앙정부, 광역(특별)-기초자치단체의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당연하지만, 아직 기초자치단체의 역량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상태이다. 기초자치단체에서 선거를 하여 구청장과 구의원을 선출하는 이유는 지역의 특수성과 맥락 등을 고려하여 정책이 시행되고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하는 데에 있다. 지방정부 재정에서 복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50%에서 60% 사이라면 지방정부의 역할 중 반 이상이 복지에 있다고 이야기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지방분권이란 나를 대표하여 나의 문제를 해결해줄 대리인을 통해 지역을 발전시키는 과정에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는 체제다. 앞서 언급한 지역공동체의 구성원은 그 안에서 소통이 있고, 지역민이 누군지를 알고, 그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해야할 절박성을 갖는 이들의 단위를 의미한다. 우리의 관계망 안에 있는 이웃을 위한 복지가 지역복지이고, 복지국가의 핵심 기제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복지국가란 공동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문제이다.

"옆집의 노인이 고독사했다."

"이웃집 아이가 학대로 살해당했다."

"내 아들의 친구가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다."

"조현병이 있는 교회집사님의 아들이 실종되었다."

언론 보도로 잠깐의 충격을 받고 한 달 후에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해당 이슈를 내 공동체 안의 문제로 인식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기 위한 지역공동체가 존재하고, 이 공동체를 통해 모두의 노력이 제대로 된 지역복지를 보장하는 것이 복지국가로 가는 길이다. 그 길은 다 달라야 한다. 226개의 기초자치단체가 지역구성원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은 중앙정부의 기본 포맷에 기초하여 각각 자신들에게 맞는 옷으로 맞추어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복지의 발전이고, 정치의 발전이고 민주주의의 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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