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방, 성매매, AV … 성산업은 성착취를 양산한다

[해설] 벗방, '기망'이 아니면 괜찮을까? "핵심은 성차별 구조"

돈이 필요한 순간에 고수익의 방송 일을 제안 받는다. 사전에 안내된 내용과 달리 성적인 착취를 당한다. 피해 영상이 기록으로 남는다. 그 영상을 빌미로 다시 본격적인 방송 출연을 강요당한다. 계약서가 만들어지면서 이른바 '합법적인' 성착취가 시작된다. 지난 3월 피해자 A 씨의 인터넷 폭로로 드러난 '벗방'(벗는 방송) 성착취 피해의 전말이다.

지난달 25일, MBC <PD수첩>이 A 씨의 사례와 유사한 또 다른 벗방 피해자들의 사례를 함께 보도하면서 이 벗방 문제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됐다. 방송에 출연한 대부분의 피해자는 A 씨와 유사한 기망에 의한 피해를 경험했다.

가해 BJ들은 피해자에게 '단순한 소통 방송, 술 방송'이라며 방송을 제안하지만 라이브 방송 중 스킨십의 수위는 점점 강해진다. 피해 여성은 현장에서 성적 행위에 대한 강요와 압박에 시달리며 아예 주량 이상의 술에 취해 항거불능 상태가 되기도 한다.

피해자가 고소를 진행한 일부 사건에서는 사전 작성한 출연동의서로 인해 가해자가 무혐의 처분을 받기도 했다. 다만 피해자들은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 '동의서를 작성할 당시 가해자들은 성적인 행위가 없거나, 있더라도 수위가 낮을 것처럼 설명했다'고 입을 모았다.

속여서 유인하고 현장에서 압박한다. 명백한 기망 피해다. <PD수첩>의 해당 회차에 출연한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기망을 통해 개인 정보를 확보한 뒤 그걸 빌미로 점점 더 심각한 영상들을 만들며, 영상의 핵심적인 내용은 음란성"이라며 "N번방이나 지금 이 벗방이나 다를 게 무엇이냐"고 말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로 지난 20년간의 '벗방' 키워드 언론보도 사례를 살펴봤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벗방 출연 기망·강요 사례가 지난 2018년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지난 2020년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기망 피해 사례를 다뤘고, 이후 팝콘TV 등 벗방이 성행하는 개인방송 플랫폼에서 엔터테인먼트 업체 주도의 벗방 기망 계약이 성행하고 있다는 보도가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 벗방 문제는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국내 최초의 벗방 키워드 보도는 2013년 4월로, 2011년부터 화상채팅 벗방 사이트를 운영한 30대 남성 최모 씨가 당시 검거됐다. 2015년부터 인터넷 방송 플랫폼을 활용한 벗방에 대한 보도 사례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기망 계약 문제가 본격화되기 이전이었지만, 높은 기대수익을 빌미로 출연을 제의하고 실제 수익을 높이기 위해 점점 수위를 높여가는 이른바 '문간에 발들이기' 수법이 당시에도 확인됐다.

▲성착취물 유포 피해를 겪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 여성들은 유포된 영상물의 삭제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한 번 유포되면 끝없이 재생산되는' 온라인 공간의 특성에 많은 피해자들은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다. 국제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지난해 12월 세계 최대 포털 '구글'이 이러한 피해확산을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기망'이 아니면 괜찮은 걸까? … "벗방 성착취는 구조의 문제"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벗방 문제는 국내 성매매 산업 문제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개인방송 환경이 급변한 지난 10여년의 기간 동안 여성을 '상품'으로 삼는 산업의 토대가 빠르게 구축됐다. 그 과정에서 '상품'인 여성을 적극적으로 유인 혹은 약취하는 공급구조가 정착됐다. 성매매가 합법적으로 관리되는 국가에서도 강제 성매매 피해가 끊이지 않듯, 최근 보도된 벗방 성착취 피해들은 그 '구조' 속에서 필연적으로 생성된 극단적 사례들에 가깝다.

당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기존 방송프로그램과 달리 정보통신 콘텐츠로 분류되는 벗방 콘텐츠는 현재 방송규제의 사각지대에 자리한다. 자연스럽게 벗방 대응 논의는 '사각에서 버젓이 유통되는 음란물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수렴하는 양상을 보인다. 지난 <PD수첩>의 보도 또한 벗방 콘텐츠가 '규제방법이 없는 음란물'임에 문제의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벗방 문제를 '음란물 문제'로 설정하는 접근 방식이 효과 측면으로나 당위적 측면으로나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국내 피해자 지원 단체가 모여 지난달 20일 구성한 '벗방 피해자 공동 지원단'(지원단)은 18일 성명을 내고 "벗방에 대한 우리의 시선과 질문을 보다 깊이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들은 "흔히 '벗방'에 대한 반응은 성적 행위를 송출하는 여성 BJ들을 향한 혐오가 일반적"이라며 벗방을 음란물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이 결국 "일부 '진짜 피해자'만을 구분하고 그 외의 여성 BJ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는 여전할 가능성"을 남겨놓는다고 강조했다.

벗방이 '음란하기 때문에 문제'라면, 음란한 행위를 한 여성 피해자들도 자신들의 피해를 주장하기에 위축될 수밖에 없다. 예로 2020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당시 조주빈 등 범인들은 SNS에 음란성 게시물을 업로드 한 이력이 있는 여성들을 일부 범행 대상으로 선정했고, 일부 피해자들은 이를 빌미로 대중에 의한 2차 피해에 노출됐다.

벗방 BJ들의 경우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지원단 소속 혜진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활동가는 2020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벗방 피해자 보도 당시를 두고 "당시 피해자들에 대한 온라인 여론이 N번방 때와는 사뭇 달랐다"라며 "문제의 초점이 '음란'으로 맞춰질 경우, 어떤 사람들은 일부 '명백한 피해자'의 모습을 설정하고 그 외의 BJ들을 향해서는 비난과 혐오를 거리낌 없이 퍼 붓는다"고 지적했다.

지원단 측은 "벗방은 '음란'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성적 대상화와 통제가 남성들의 놀이가 되는 성차별적 사회 구조의 반영과 재현의 문제이며, 이를 활용하여 수익을 착복하는 성산업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기망에 의한 벗방 피해자'와 '자발적 벗방 BJ'를 구분하는 방식을 넘어, 여성들을 벗방 산업으로 적극 유입시키고 피해를 확산하는 '성산업 구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상담 현장에서 활동해온 혜진 활동가는 "경제적 동기로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에 대해서도 경력단절이나 여성빈곤 문제 등 그 '선택'을 유발하는 사회적 조건들을 조망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며 "명백한 속임수나 협박이 있었어야만 피해자라는 시각을 벗어나, 벗방 산업 내의 다양한 유인동기와 여성을 그 산업에 '묶어두는' (약취)요인을 폭넓게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성매매 현장의 경우엔 업주들이 돈이 필요해 일을 시작한 여성들에게 급한 목돈 등을 고리로 빌려주면서 이를 빌미로 성매매를 강제하는 '선불금' 관행이 존재했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의 제정으로 법적으로 선불금 무효화가 가능해졌지만, 이후 업주들은 주거 및 경제 불안정 여성이나 연예계 관련 지망생 등을 노린 '성형대출' 상품을 통해 선불금과 같은 방식의 성매매 유인·약취 수법을 활용하고 있다.(2016,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지난 2020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당시, '텔르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 모습. 당시 이들은 일부 극단적 성착취 사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성착취를 낳는 성차별 구조'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일본 AV 피해 닮은 벗방 피해 … '제도'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지원단은 현재 △원치 않는 노출, 성적행위, 음주 강요 등 '기망에 의한 벗방 출연·계약' 피해를 포함해 △벗방 진행 후 수익금을 정산받지 못한 경우 △계약 자체가 부당하거나 불공정한 경우 △벗방 진행 이후 영상 유포 협박을 받는 경우 △실제 영상이 유포되는 경우 등 벗방 계약, 출연부터 방송과정까지 발생하는 다양한 피해양상을 수집하고 있다.

혜진 활동가는 "피해지원을 공표한 이후 상담을 통해서 굉장히 다양한 벗방 폭력 양상이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무엇이 '피해'인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국한을 두지 않고, 어떤 양상으로든 지원 요청이 있을 땐 그 피해를 분석하고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프레시안>에 밝혔다.

다만 지원단은 일각에서 제기 되고 있는 벗방 방지 제도 보완과 관련해서는 다소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혜진 활동가는 "성매매 여성과 성구매 남성 모두를 처벌하고 있는 현행 성매매처벌법만 해도 한계가 많은 상황에, 벗방을 성매매로 치환하여 '음란한 행위를 처벌하자'는 식의 논의는 결국 개인 BJ를 향한 혐오 확산으로만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라며 "지원단 내에서도 제도적 대책에 대해서는 합의된 무언가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벗방 관련 논의는 '웹하드 카르텔' 문제가 처음 이슈화됐을 당시와 비슷하다. 제작자(기망 가해자)에 대한 비판은 있지만 구매자와 유통업체에 대한 비판적 의식은 크게 형성되지 않았다"라며 "핵심적인 문제는 여성을 향한 '통제'가 일부 남성 구매자(시청자)들의 놀이문화로 작용하고 있는 권력관계라는 것을 우선적으로 공론화해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더했다.

비슷한 성산업에 대한 각국의 대처에서 힌트를 얻을 순 없을까. AV 제작 및 유통이 합법화된 일본에서는 지난 2013년부터 벗방 성착취 피해와 유사한 AV 출연 피해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면서 지난해 'AV출연 피해 방지·구제법'이 제정됐다. (관련기사 ☞ 성행위 촬영물이 '엔터'로? 신동엽 뒤로 감춰진 '성착취')

일본 여성피해자 지원단체 PAPS(포르노 피해와 성폭력을 생각하는 모임)가 공개한 일본 내 포르노 피해 사례에 따르면, AV 출연 피해자들은 대부분 △AV가 아닌 다른 촬영 아르바이트라고 일거리를 소개 받아 계약을 진행한 상태에서 △사전에 고지되지 않거나 고지된 것 이상의 성적 행위를 강요받았으며 △계약에 따른 위약금 협박으로 계약유지를 강요당했고 △이후 피해 영상이 유통되면서 더 본격적인 촬영을 강요당했다.

이에 2022년 6월 제정된 AV출연 피해 방지·구제법은 AV 출연자의 나이·성별에 관계없이 영상이 공개된 뒤 1년 동안은 무조건 계약 해지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작업체에게는 출연자의 계약 해지 요구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권이 주어지지 않고, 영상회수와 삭제 등 원상회복 조치 의무가 부여된다.

다만 일본 여성계는 AV 합법 구조를 유지한 상황에서의 이 같은 조치가 '사각 속의 사각'을 계속해서 만들어낼 뿐 근본적인 조치가 될 순 없다고 지적한다. 결국 '자발적이고 합법적인 음란물'과 '피해'를 나누기만 하는 방식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PAPS는 5월 <프레시안>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AV 산업이 그 자체로서 "많은 희생자를 내며", "성착취와 강간문화를 정당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포르노 제작·유통이 합법인 일본에서도, 불법인 한국에서도 피해 정도와 플랫폼이 다를 뿐 비슷한 양상의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성산업 내 성착취 문제는 합법화와 불법화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독일의 경우 성산업의 합법적 관리를 통해 '안전한' 시장을 만들겠다는 명분으로 성매매 자체를 합법화했지만, 이후 독일 내 인신매매 피해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등 오히려 부작용을 겪고 있다.

포르노 제작과 유통, 성매매 등 다양한 성산업의 불법과 합법 여부에 관계없이 성산업 내 성착취 문제는 전 세계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이는 곧 이 거대한 산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이 여성을 상품화하는 성별 권력관계의 해소에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지난 2020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당시, '텔르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 등 여성들은 '26만 명의 N번방 시청자들'을 '성착취 공범'으로 호명하며 문제를 공론화했다. 디지털 성착취 문제는 일부 제작자의 문제가 아닌 성착취에 동조하고 그 결과물을 소비하는 이들이 만든 구조의 문제라는 것이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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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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