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일본 무릎' 발언엔 "주어가 없다"고?…전국민 영어번역 평가 하나?

[박세열 칼럼]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대통령의 인식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무릎' 발언에 대해 일부 언론이 번역을 잘못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번역을 잘못한 언론이 어떤 언론이고, 어떤 기사인지 특정하지는 않았다. '전국민 영어 번역 평가'가 시작됐다. 

24일 윤 대통령의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내용이 전해지자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다음과 같은 논평을 냈다. 

"오늘 일부 언론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일본 용서 구해야 한다는 인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공개한 한국어 인터뷰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유럽의 미래지향적 협력을 강조하며, 주어를 생략한 채 해당 문장을 사용했다. 그리고 해당 문장은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것은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다'로 해석해야 한다. 바로 뒤에 '이는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이것이 상식적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어느 나라 대통령이냐'며 또다시 핏대를 세웠다. 심지어는 '일본을 대변하냐', '무슨 권한으로 일본의 침탈과 식민지배에 면죄부를 주냐'는 등 황당한 비약을 통해 질 나쁜 선동까지 이어갔다. 소속 의원들이 가짜뉴스를 만들어 검찰에 송치된 지 채 반나절도 되지 않아 또다시 대통령 발언의 진상을 확인하지 않고 선전선동에 앞장섰다."

그런데 <프레시안>을 비롯해 <연합뉴스> 등 거의 모든 언론은 윤 대통령의 해당 인터뷰 발언에 대해 정확한 번역을 제공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로 향하는 공군 1호기에서 수단 교민 철수 관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 수석대변인이 인용한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일본 용서 구해야 한다는 인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문장은 '일본' 뒤에 한국어 '이' 조사가 빠져 마치 일본의 용서를 구한다는 것처럼 해석된다. 그러나 이렇게 번역한 언론이 어떤 언론인지 유 수석대변인은 말하지 않았다. 이런 식의 번역을 한 언론사가 있는지, 검색창에 저 문장을 집어 넣어도 나오지 않았다. 어떤 커뮤니티에서 누군가 왜곡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유 수석대변인은 분명 '일부 언론'이라고 했다. 

자, 각설하고, 유 수석대변인이 '주어가 없다'는 고 말한 것은 대통령실이 공개한 한국어 원문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유럽에서는 참혹한 전쟁을 겪고도 미래를 위해 전쟁 당사국들이 협력하고 있습니다.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는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설득에 있어서는 저는 충분히 했다고 봅니다"(대통령실이 밝힌 윤 대통령 발언)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는 문장에 '일본이' 주어로 생략돼 있어 '일본이 무엇인가를 받아들일 수 없다'로 해석하는 게 맞다는 것이 유 수석대변인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워싱턴포스트> 영문 기사에서 인용된 발언과 다르다. <워싱턴포스트>가 인용한 윤 대통령의 인터뷰 발언에는 'I' 즉 주어가 있고 그 주어는 윤 대통령이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체는 윤 대통령이다.

<워싱턴포스트>가 윤 대통령 '단독 인터뷰'를 통해 전한 영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Europe has experienced several wars for the past 100 years and despite that, warring countries have found ways to cooperate for the future," he said. "I can’t accept the notion that because of what happened 100 years ago, something is absolutely impossible [to do] and that they [Japanese] must kneel [for forgiveness] because of our history 100 years ago. And this is an issue that requires decision. … In terms of persuasion, I believe I did my best."

성문종합영어를 참고하면 윤 대통령은 "I can’t accept the notion", 즉 "나는 그러한 관념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한 관념이 어떠한 관념인지는 동격접속사 'that' 이하 절이 말해 준다. 'that' 이하 절은 접속사 'and'를 사이에 두고 두 가지가 동시에 나열됐다. '어떤 관념'이냐? 첫째는 "100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무엇인가(를 하기에)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100년 전 우리의 역사 때문에 그들(일본인들)이 (용서를 구하기 위해) 반드시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개의 'notion', 즉 관념을 '나', 즉 윤석열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유 수석대변인의 논평으로 돌아가보자. 

"해당 문장은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것은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다'로 해석해야 한다"

뭔가 이상하다. 일본이 무릎꿇어야 한다는 것을 윤석열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없다로 해석하는 게 정확하다.

만약 유 수석대변인의 말대로 '대통령실이 공개한 한국어 인터뷰'가 정확하다면, <워싱턴포스트>가 오보를 낸 것이다. 그런데 유 수석대변인과 대통령실은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 나온 윤 대통령의 '주어가 생략되지 않은 발언'은 지적하지 않는다. 

한국 언론 탓을 한다? 한국 대통령이 '미국 언론'과 '단독 인터뷰'를 했으니 한국 언론은 그 발언을 들을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니 한국 언론은 <워싱턴포스트>에 소개된 윤 대통령의 '영어로 번역된 발언'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는 '2중 번역'의 한계에 갇히게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유 수석대변인의 말이나, 대통령실이 공개한 한국어 발언 내용이나, <워싱턴포스트>가 전한 윤 대통령의 '영문 워딩'이나 뜻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100년 전 일어난 일을 두고 '일본에 용서를 구하기 위해 무릎 꿇으라고 하는 것'(that 절 이하)을 본인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는 건 변함 없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대통령의 인식'이다.

전 국민이 성문종합영어를 다시 꺼내 읽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바이든-날리면' 사태에서 '듣기 평가'가 유행하더니,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시사'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는 발끈한 러시아에 "정확히 읽어보라"고 '읽기 평가' 문제를 냈다. 그리고 이번엔 중고등학교 영어 해석 교실이다.

유 수석대변인은 왜 어디인지도 모를 '일부 언론'을 언급하며 "소속 의원들이 가짜뉴스를 만들어 검찰에 송치된 지 채 반나절도 되지 않아 또다시 대통령 발언의 진상을 확인하지 않고 선전선동에 앞장섰다"고 주장하고 야당을 비판하는 것일까?

유 수석대변인 말대로 일부 언론이 '가짜뉴스'를 만들었다고 하면 대다수의 언론이 '진짜뉴스'를 보도해도 '어딘가에 가짜뉴스가 섞여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진짜뉴스를 오염시키는 방법은 '우물에 독(가짜뉴스)을 탔다'는 유언비어처럼 좋은 게 없다. 이런 의도가 아니길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방미 일정 중에 미국 하버드대에서 연설을 한다. "윤 대통령은 국정 철학 중 하나인 '자유'를 키워드로 가짜 뉴스와 거짓 선동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고, 국제사회의 연대와 법치의 실현을 통해 맞설 것을 역설할 것으로 알려졌다."(뉴스1 4월 21일자) 

'가짜 뉴스와 거짓 선동'에 '가짜 영어 번역'도 넣어주길 바란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숙소인 블레어 하우스에 도착, 교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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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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