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마스크가 입양인들이 한국 정부에 바라는 걸까요?"

[현장] 해외입양인들이 직접 쓴 입양 서사…"한국 정부, 합당한 사과해야"

"2020년도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했을 때 입양인들이 계시는 14개 국가 26개 공관을 통해 정부가 37만 장의 마스크를 보내드린 적이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그 마스크를 재외동포재단으로부터 받으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팬데믹 때 그런 지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해외입양 70년, 해외입양을 다시 생각한다'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외교부 담당자가 외교부 차원에서 해외입양인들에 대한 어떤 정책을 펴고 있는지 발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토론자들의 발언이 끝난 뒤 객석에 있던 네덜란드로 입양됐던 사라 세진 장 씨가 손을 들고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손에 일회용 마스크를 들고 있었다. 그는 이 마스크가 재외동포재단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소개하면서 이 마스크가 자신이 그간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유일한 지원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반문했다.

"입양인들이 한국 정부에 원하는 것이 이 마스크 일까요? 마스크 지원은 물론 고마운 일이지만 입양인들이 입양으로 인해 입은 트라우마에 반창고 하나를 붙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재외동포재단에서 나눠준 마스크가 한국 정부가 정작 입양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들어보려고 하지 않으면서 입양인을 시혜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ISS(International Social Service)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 팬데믹 당시 한국 아동을 입양하러 들어오는 해외 예비 양부모의 입국시 방역 절차를 간소화 시켜주면서 콜롬비아, 우크라이나에 이어 3번째로 많은 아동을 해외 입양 보낸 나라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날 국회 포럼은 '해외입양인들과 함께하는 문화예술협회(KADU, 대표 박찬호)'가 기획한 대동예술제 '어머니의 나라, 마더랜드(motherland)'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예술제에 참석한 입양인 예술가들은 이날 직접 자신들의 경험에 대해 사례 발표를 하기도 했다.

캐나다 입양문화기록보관소 설립자인 기무라 별 씨는 "부모 없는 아이들이 해외의 부유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의 사랑스런 가정으로 보내진다는 지배적인 서사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해외로 입양 보내지는 것은 한국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입양된 아이의 과거를 알고 싶어하지 않는 백인 가정으로 보내지는 것이며, 때로는 학대 가정, 종종 인종차별적인 '색맹' 사회에 보내지는 것을 의미한다. 입양인은 평생에 걸쳐 수많은 정신적 외상을 겪어야 하며, 때로는 세대에 거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스웨덴 입양권리운동가이자 화가인 리사 울림 쇼블롬 씨는 어린 시절 인종차별을 통해 정체성 혼란을 경험하면서 극도의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입양은 제 삶의 전부를 의미한다"며 "그것은 제게 충격을 주었고 불면증, 악몽, 우울증 등 너무 많은 육체적 고통을 받아서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고 말했다. 

"제 입양은 저에 관한 것이 아니었고 아이들을 원하는 어른들의 요구, 입양기관의 수익, 사회적으로 원하지 않는 아이들을 없애고 싶은 한국의 바람, 스웨덴을 세계의 은인처럼 보이게 만들겠다는 스웨덴의 생각에 대한 것이었다. 가장 나쁜 것은 제가 경험했던 많은 부분들이 제 아이들에게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노르웨이에서 융복합 예술가로 일하고 있는 우마 피드 씨는 "저는 사랑 가득한 가정과 좋은 부모님 밑에서 자란 운이 좋은 사람 중 한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게 위로할 수 없는 상실감이 사라지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저는 어렸을 때 자살 충동에 시달렸고, 실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국제입양에 대한 공적인 담론과 연구가 부족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긍정적인 이야기만 회자되고 있으며, 이는 입양인 개개인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저는 해외입양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매우 시급하다고 생각하며, 그 전환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모든 해외입양을 무기한 중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로 입양된 시모나 은미 씨는 "한국 국적법 상 외국 국적 취득 후 6개월 이내 문제제기가 없을 경우 국적을 박탈하고 있는데 입양아동은 이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가 없다"며 "입양인들은 그들의 동의 없이 입양을 통해 한국인이 될 권리를 박탈당했기 때문에 저는 한국 사회와 정부가 입양인이 원할 경우 한국인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입양인의 삶의 경험에서 배우고, 합당한 사과를 하고, 입양인들의 전문성을 인정해 한국의 아이들, 또 다른 나라 아이들이 미래를 위해 새로운 길을 내주기를 원한다. 한국계 입양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입양인 커뮤니티이므로 우리가 겪은 일은 전 세계의 다른 입양인들이 겪게 될 일이다. 한국 정부가 어둡고 부끄러운 입양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 입양인들과 함께 일하는 미래를 꿈꾸면 좋겠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해외입양인들. ⓒ프레시안(전홍기혜)

이날 국회 포럼은 더불어민주당 이수진(서울 동작을)·강민정(비례대표)·김성주(전북 전주을)·민형배(광주 광산을)·무소속 윤미향(비례) 등이 공동 주최했다. 다음 날인 22일에는 민속극장 풍류에서 전통예술공연 대동굿 '마더랜드'가 열리기도 했다. 한편, KADU는 전세계 15개국에서 30여명의 입양인 예술가들을 초청해 전시회를 개최했다. 해외입양인 예술작품 80점이 전시되는 이 전시회는 서울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5월 2일까지 진행된다. 

▲22일 대동굿 행사에서 입양인들이 전통예술인들의 연주에 맞춰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프레시안(전홍기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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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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