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보다 못한 한국, 입양인 85% "해외입양 중단" 요청했다

[해외입양인 인권 실태 조사] ③ 해외입양 관련 법·제도적 개선 방안

칠레는 지난 2017년과 그 다음해에 걸쳐 해외입양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를 실시했다.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낸 송출국 중에서는 칠레와 아일랜드(2020년)가 해외입양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를 했다.

아동을 받은 수용국 중에 국가 차원의 조사를 실시했거나 진행 중인 나라는 스위스(2019), 덴마크(2020-21), 벨기에(2021), 네덜랜드(2021), 스웨덴(진행 중), 프랑스(진행 중), 노르웨이(2023년 예정) 등이다.

한국은 해외입양을 시작한지 70년 가까이 된 지난해 12월 6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해외입양인 34명에 대한 조사 개시를 결정했다. 국가 차원의 첫 조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신청한 해외입양인 372명 가운데 10%도 안되는 숫자다.

또 한국에서 해외입양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문제다. 최근 5년(2016-2021)간 1439명이 해외로 입양 보내졌다.

소라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해외입양의 인권침해 문제 해결을 위한 법제도 개선 방안' 중 하나로 "해외입양의 중단 선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로보기 : 쌍둥이로 둔갑한 자매, 죽었다던 아이가 해외입양? [해외입양인 인권 실태 조사] ②

3명 중 1명 입양인 "아동 학대 경험", 8명 중 1명 "성적 학대" [해외입양인 인권 실태 조사] ①)

소 교수는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해외입양인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통한 인권보장 방안 연구>(연구책임자 : 노혜련, 공동연구원 : 김재민 소라미 신필식 이태인 한분영, 보조연구원 : 박혜진 전세희)에 참여했다.

이 연구에서 드러난 내용을 바탕으로 지난 22일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소 교수는 "양적조사에 참가한 해외입양인 95%는 해외입양 이전에 원가족 보호를 우선해야 한다고 답변했으며, 85%는 해외입양을 지속해야할 정당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으며 해외입양을 중단해야 한다고 답변했다"며 "2019년 네덜란드 조사위원회는 해외입양 절차상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인권 침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해외입양 중단 선언을 권고했다"고 말했다.

해외입양 국가 차원의 전수조사 진행…확인된 인권침해에 대해 사과해야

소 교수는 또 진실화해위의 조사가 극히 일부에 그치는 점에서 한계가 존재한다면서 "국가 차원의 전수조사를 진행하거나, 최소한 조사를 원하는 해외입양인의 신청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공적 조사 절차와 기구를 마련해 공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 확인된 인권침해 사실에 대해 해외입양인과 그 가족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입양이 '현재'도 계속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법·제도의 정비도 우선적 과제다. 한국이 1995년 발표된 헤이그 국제입양아동협약에 아직까지 가입하지 못한 이유도 국내 이행법안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입양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고 유괴, 인신매매 등을 방지하기 위한 절차와 요건을 규정한 헤이그 협약에 한국은 2013년 서명만 하고 아직까지 국회 비준을 마치지 못했다.

소 교수는 "해외입양인 양적 조사 참가자 중 30% 이상, 심층 면접 참가자 중 60% 이상이 아동 학대를 경험했다"며 현재 거의 대부분의 절차가 민간 입양기관에 일임되어 있는 입양 절차를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등 공적 기관이 관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모든 아동에 대한 입양절차가 통일적으로 아동 이익을 최우선해 이뤄질 수 있도록 민법과 입양특례법의 개정이 필요하고, 연령과 상관 없이 입양 아동의 의견이 청취되도록 의무화하는 등 아동의 의견이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만 13세 이상의 아동만 입양에 앞서 의사를 청취하도록 하고 있다. 

가족 상봉 사례는 5.2%에 불과…정체성을 알 권리 보장되도록 대책 마련해야

소 교수는 현재 성인이 된 입양인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인 친생가족 찾기의 문제와 관련된 법제도적 보장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행 입양특례법상 입양정보공개청구권 조항이 존재하나 이를 통한 해외입양인의 친생부모 찾기와 상봉 사례는 5.8%에 불과하며, 양적 연구 참가자 중 80.7%가 가족찾기 과정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했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친생부모가 사망한 경우에는 친생부모의 동의 없이 입양정보를 공개하도록 법 개정 △입양인 뿐 아니라 친생부모와 그 가족도 입양인을 찾을 수 있도록 입양정보공개청구권의 주체를 확대 △입양기록 훼손, 조작 등이 확인될 경우 국가가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입양인이 정체성을 알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대책 마련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 그룹(Danish Korean Rights Group, DKRG)과 국내입양인연대 등 입양 관련 단체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방문해 해외입양인 인권 침해 진실규명 신청서를 제출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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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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