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국 감청 의혹' 문서 유출은 美 내부자 소행?

미 법무부 "고도 기밀 포함 문건 유효성 평가 중"…프랑스·이스라엘, 문건 내용 부인

미국 정보 기관이 한국·이스라엘 등 동맹국까지 감청한 정황을 담고 있는 유출 문건을 조사 중인 미 국방부가 문건에 "기밀" 정보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문건을 누가 유출한 것인지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미국 내부자 소행일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프랑스 쪽은 문건에 언급된 자국 관련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며 반박에 나섰다.

미 CNN 방송은 9일(현지시각) 사브리나 싱 미 국방부 부대변인이 성명을 내 국방부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공유 중인 "민감하고 고도의 기밀을 포함하고 있는 문건 촬영본"의 유효성을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관계 부처들이 유출 문건이 미국 안보와 동맹 및 파트너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평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싱 부대변인은 주말 동안 미국 관리들이 동맹 및 파트너들과 관련 대화를 나눴다고 덧붙였다.

지난주 미 국방부와 법무부는 문건 유출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지만 <워싱턴포스트>(WP)는 미 당국이 지난 2월 말~3월 초부터 소셜미디어에 유포된 문건의 존재를 지난 6일 <뉴욕타임스>의 첫 보도 무렵에야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익명을 요구한 이 문제에 정통한 인사를 인용해 보도했다.

문건의 진위 여부에 대한 미 정부 공식 발언은 없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방부 관리들이 "일부 문건은 진짜인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매체는 문건을 독립적으로 검증하진 못했지만 진본임을 신뢰할 만한 충분한 세부 정보를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문건 중 일부는 유출 뒤 온라인 상에서 수정돼 유포된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 고위 관리는 해당 문건이 미 국방부가 편집한 정보 및 작전 문서로 보이지만 유출본 중 적어도 1건은 원본에서 수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매체는 설사 유출 문건이 진본이라고 해도 담긴 내용 전부가 사실이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미국 내부인 소행일 가능성 제기

유출 범위가 광대해 미 당국이 유출 동기 및 유출 주체를 특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최초 유출은 미국 내부인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이 나온다. <로이터> 통신은 9일 미국 관리들이 유출 정보의 범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부터 중국·중동·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유출이 미국 내부인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 국방부 관리인 마이클 멀로이는 통신에 "문건 중 많은 부분이 미국이 독점적으로 취급하는 정보임을 감안할 때 미국 내 유출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CNN도 유출 문건에 미국 외부로 반출해선 안 되는 문서가 포함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미국 정보 시스템 접근 권한이 있는 이가 문건을 유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다만 문건이 유포되는 과정에서 러시아에 유리한 방향으로 수정됐다는 의혹이 나오며 러시아 개입 가능성도 제기된다. <로이터>는 문건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러시아 사망자 수를 축소 수정한 채 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두 명의 미국 관리가 문건이 미국의 안보에 해를 끼치기 위해 조작돼 유포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기밀 자료 유출 목적은 명백하다. 상호 의심을 불러 일으키고 불화의 씨를 뿌리는 것"이라며 "이는 러시아 비밀 기관의 통상적 게임"이라고 주장했다.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7일 익명을 요구한 미 행정부 고위 관리가 "러시아는 허위 정보 유포 목적으로 정보를 조작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며 이번 사건도 "러시아의 허위 정보 작전일 수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유출 문건 중 일부엔 미국 정보 기관 사이에서만 공유돼야 하고 외국에 공유해선 안 된다는 표시가 있었지만 CNN은 일부 문건의 경우 미국 주도 정보 동맹인 파이브 아이즈 회원국(Five Eyes, 미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영국)과 공유되었음을 가리키는 표시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민감 정보 유출에 美 동맹국 '술렁'…프랑스·이스라엘 "문건 내용 사실 무근"

한편 CNN은 정보 유출에 동맹국들이 술렁이고 있다고 전했다. 방송은 파이브 아이즈 회원국 관리들이 "미국이 며칠 내로 피해에 대한 평가를 공유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긴 하지만 이를 기다릴 수 없다"며 자체적으로 문건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과 프랑스는 유출 문건 속 자국 관련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9일 성명을 내 이스라엘 해외 정보기관 모사드 지도부가 기관 직원과 시민들에게 사법개혁 반대 시위에 참여하도록 장려했다는 유출 문건의 내용은 "어떤 근거도 없는 허위"라고 밝혔다. 총리실은 "모사드와 모사드 고위 간부는 시위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했다. 이스라엘에선 사법부 권한을 대폭 약화시키는 방향의 사법개편 반대 시위가 올초부터 이어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국방장관도 대변인을 통해 8일 "우크라이나에서 작전 중인 프랑스군은 없다"고 문건 내용을 부인했다고 전했다. 매체는 유출 문건 일부에 100명이 안 되는 프랑스·미국·영국·라트비아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의 특수작전 요원 소규모 파견대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르코르뉘 대변인은 "해당 문건은 프랑스군에서 유출된 것이 아니며 출처가 불분명한 문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의 경우 유출 문건 내용이 사실인지 직접적으로 확인하진 않았다. 한국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9일 한국이 폴란드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우회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유출 문건 내용에 대해 "보도됐지만 확정된 사항은 아니다"라며 살상무기 직접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유출 문건엔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이 미국이 한국에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압박할 수 있다는 우려 속 폴란드를 통한 우회 지원을 논의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 전 실장과 이 전 비서관은 지난달 전격 교체됐다. 

해당 내용은 미 정보기관의 신호정보(SIGINT·시긴트)를 통해 확보된 것으로 보도돼 미 정보 기관이 동맹국인 한국 정부 내부 논의를 도·감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2022년 3월 촬영된 미국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워치한 미 국방부 청사(펜타곤)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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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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