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은 21세기 한국사회 '사회공존 프로젝트'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냉소와 비관이 넘쳐 나고 있는 세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얼마 전 국민연금 5차 재정추계가 발표되었다. 국민연금이 현 구조로 지속될 시 2055년에 기금이 고갈되는 것으로 추정되어, 고갈 시점이 지난 재정추계 발표 때 보다 2년 앞당겨 졌음이 확인 되었다. 또한 지난해 합계출생율이 0.78명을 기록했다는 소식이 새해 들어서부터 현재까지 연일 화제다. OECD국가 평균 합계출생율 1.6명에 한참 미달하는 수치로 한국은 압도적 꼴찌다. 이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하다. 국민연금을 이대로 방치하면 기금고갈 이후 후세대의 막대한 부담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진정한 위기는 통계상의 숫자를 넘어선다. 국가의 지속가능성이 위태롭다는 객관적 통계 속에서, 연금개혁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결론을 우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그러나 말에서만 그친다. 연금개혁을 책임 있게 논의하고 집행해야 할 정부와 국회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손에 피를 묻히기가 싫다. 유권자들의 표가 떨어져 나간다는 두려움을 대놓고 말할 순 없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연금개혁을 외면하고 싶은 것이 한국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의 속내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진도가 나갈 수 있을까 싶어 기대를 해보지만, 작년 10월에 꾸려진 국회 연금특위 내 의원들 중 용기 있게 나서서 연금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치인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정당 간 협의와 조정이 사라져 가는 것이 한국정치의 문제라고 하는데, 연금개혁 앞에선 도리어 정당들끼리 다 함께 침묵하자는 협의와 조정이 이뤄진 모양새이다. 연금개혁을 둘러싼 진정한 위기는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정치에 있다.

그렇다고 질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끝내 연금개혁이 방치된다면 향후 상당한 수의 노년층을 부양할 수밖에 없는 미래세대들과, 불평등한 노동시장 하에 힘겹게 살아가는 일 하는 시민들의 삶이 더욱 위태로워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가의 지속가능성이 사라져 냉소와 비관이 넘쳐 나고 있는 세태를 바로잡기 위해서도 연금개혁은 필수적 과제이다.

이와 같은 절박함으로 지난 3일, '미래세대·일하는시민의 연금유니온>'(이하 '연금유니온')출범식 및 기자간담회를 개최하였다. 연금유니온은 '노인, 프리랜서, 청년, 여성' 등 복지와 연금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이들의 사회적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준)프리랜서협회' '청년유니온'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유니온센터·일하는시민연구소'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노후희망유니온'(가나다 역순으로 기재)이 함께하는 당사자 조직들의 연합체이다.

이 조직들은 작년 연말에 청년유니온의 제안으로 첫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기성 노동계-시민사회의 주요 주장인 소득대체율 인상 중심으로 연금개혁 논의가 이뤄지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미래세대와 불안정 취업자의 시각으로 연금개혁을 대응하자는 취지로 모이게 된 것이다. 각 단체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스터디를 가졌고, 2월 16일엔 국회 연금특위 의원들과 함께 토론회를 공동주최하며 연금개혁의 새로운 목소리를 환기시키기도 하였다. 이후 연금유니온 공식 출범을 위한 준비과정을 거치며 출범선언문 및 정책요구안을 마련했고, 연금유니온에 함께하는 단체들과 함께 출범식 및 기자간담회를 가지게 되었다.

연금유니온의 출범선언문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오래된 미래,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외면하는 현실인 국민연금 건강검진 진단서를 우리 사회가 무시해 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둘째, 과도한 불안을 강조하며 보장성을 강화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 미래재정은 결코 추산할 수 없기에 기금고갈의 문제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 모두 연금개혁을 위한 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셋째, 연금개혁이 지체되는 사이 합계출생율은 0.78명까지 떨어졌고,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이 중위소득 50% 이하에 놓인 빈곤한 인구가 43.2%에 달하고 있으며, 프리랜서 규모가 788만 명까지 늘어나 국민연금의 사각지대가 늘어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넷째, 은퇴자에게 적정 수준의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문제와 미래 연금재정의 안정을 도모하는 지속가능성의 문제 모두 방치되어 왔음을 지적하며, 미래세대와 불안정 취업자 시민의 눈으로 연금을 개혁해 나가자는 주장이다. 다섯째, 국민연금 지속가능성을 위해 보험료율을 인상하여 현세대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을 주장한다. 여섯째, 국민연금의 보장성은 실질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향을 지향해야 하며, 이를 위해 연금크레딧 확대,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 의무가입기간 확대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일곱째, 국민연금-기초연금-퇴직연금 이 세 가지 의무연금을 중심으로 계층별 적정 급여를 확보하는 다층적 노후소득보장 설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출범선언문의 마지막 단락 중 "연금개혁은 21세기 한국사회 '사회공존 프로젝트'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연금개혁을 말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사회공존'이다. 현 세대의 노후보장만 주장한다면 미래세대가 짊어지어야 할 부담을 고려하는 세대 간 공존의 논의가 사라지고, 정규직-고임금 노동자의 시각에서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 인상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지면 국민연금의 혜택이 미약한 불안정 노동자를 고려하는 계층 간 공존의 논의가 사라진다. 기업의 사회보험료 부담만 강조가 된다면 자본과 노동 간 공존의 노력도 이뤄지기 어렵다. 연금개혁을 중심으로 현재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질적 존재들이 어떻게 공존해 나갈 수 있을지 치열하게 토론해야 하고, 공존하는 노력 없이 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며 연금개혁에 나서야 한다.

연금유니온이 추구하는 연금개혁의 가치는 세대와 계층 간의 공존을 통해 21세기의 지속가능한 사회를 펼쳐나가자는 측면에 있지, 오로지 재정안정화 조치를 통해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을 늦추는데 초점을 두고 있지 않다. 이는 연금유니온의 출범선언문 및 정책요구안에 구체적으로 해설되어 있으며, 연금유니온을 재정안정화론 세력으로만 규정짓는 일각의 시도야말로 어떠한 의도일지 도리어 되묻고 싶다. 연금유니온 역시 국가의 책임 속에서 적정 수준의 노후소득보장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기에,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대안을 각계각층과 적극적으로 토론해 나가고자 한다.

연금유니온은 5월 중 '미래세대, 일하는시민을 위한 연금학교'를 '정치학교 반전'에서 4주차에 걸쳐 진행한다. 이를 통해 연금개혁의 주요 쟁점 및 필요성을 더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고, 나아가 연금유니온과 함께하는 단체 및 활동가들을 늘려나갈 것이다. 또한 정부 및 국회를 상대로 연금개혁을 촉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갈 예정이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응원, 그리고 후원도 필요함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글을 마친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출범식을 가진 '미래세대·일하는시민의 연금유니온'. ⓒ프레시안(한예섭)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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