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법원 출석해 "무죄"주장…'중범죄' 입증 가능할까

맨해튼지검, 선거법 위반 등 시사했지만 명확한 근거 제시 못해

혼외 성관계에 대한 입막음 돈 지급을 위해 사업 장부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역대 미국 전·현직 대통령 중 처음으로 형사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4일(현지시각) 뉴욕 형사법원에 출석해 무죄를 주장했다.

이날 뉴욕 맨해튼지검이 공개한 공소장엔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06년 포르노 배우와 가진 혼외 성관계 전력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헨을 통해 해당 포르노 배우에게 13만달러(약 1억7000만원)를 지불하고 이를 은폐하려 사업 기록을 조작한 것과 관련한 34건의 중범죄 혐의가 담겼다.

공소를 맡은 크리스 콘로이 검사는 이날 오후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열린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기소된 혐의를 인정하는지 여부를 묻는 '기소인부절차'에서 "피고인 도널드 트럼프는 2016년 대선의 진실성을 훼손하는 불법적 음모와 다른 선거법 위반을 감추기 위해 뉴욕 사업 기록을 위조했다"고 밝혔다.

기소를 주도한 앨빈 브래그 맨해튼 지방검사장은 이날 기소인부절차 뒤 연 기자회견과 보도자료를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전후 "주 및 연방 선거법 위반 시도를 포함한 범죄 활동을 감추기 위해" 사업 기록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뉴욕에서 장부 조작 자체는 중범죄에 해당하지 않지만 다른 범죄를 저지르거나 은폐하기 위해 그러한 행위를 했다면 중범죄로 인정된다.

브래그 지검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 기간 동안 "자신에 대한 부정적 정보를 감추고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언론사를 통해 제보를 독점적으로 구입한 뒤 보도하지 않는 "캐치 앤 킬(catch and kill)" 수법을 사용했다고 봤다. 

그는 공소장에 적시된 혐의 외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5년 8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혼외 성관계 등 관련 적어도 2건의 입막음 돈을 지불하고 이를 감추기 위해 사업 기록을 허위로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 태블로이드 언론사를 통해 트럼프에게 혼외 자녀가 있다고 주장한 뉴욕 트럼프 타워 문지기에게 입막음 용도로 3만달러(약 40000만원)를 지불했고 같은 언론사를 통해 트럼프와 혼외 성관계를 주장한 플레이보이 모델 경력이 있는 한 여성에게 15만달러(약 2억원)를 지불한 사례를 들었다. 이 두 사례는 공소장엔 적히지 않았지만 지검 쪽이 법원에 추가로 제출한 사실진술서에 담겼다.

브래그 지검장은 이날 회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관련 범죄를 덮기 위해 그러한 (사업 기록 위조) 행위를 했다는 증거가 드러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만 공소장엔 사업 기록 조작 혐의만 명시돼 있고 선거법 위반 등 다른 혐의는 적시돼 있지 않다.

'머그샷'은 생략…판사, 트럼프에 "폭력 선동 언사 삼가라" 주문

이날 법원에서 약 1시간 가량 진행된 기소인부절차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체로 침묵을 유지한 채 공소 사실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담당 판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폭력을 선동하거나 시민 불안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언사를 삼가라"고 따로 주문하기도 했다. 또 "법치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수사나 재판 중 "분란을 일으키는" 행위를 자제할 것도 당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자신이 기소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지지자들의 "시위"를 촉구했고 같은 달 24일엔 기소될 경우 "죽음과 파괴"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법원에 모습을 드러낸 이날 대선 불복 폭동인 2021년 1·6 의사당 난입과 같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뉴욕 경찰은 잔뜩 긴장했지만 큰 혼란이 일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법원 근처에 수백 명 규모의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 및 반대자들이 모였지만 취재진이 더 많아 누구든 트럼프 쪽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 글귀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으면 취재 카메라에 둘러싸였다고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수갑을 차지 않았고 범인 식별용 얼굴 사진인 '머그샷'도 찍지 않았다. 머그샷 생략 이유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쪽은 머그샷이 피고인 식별을 위한 것이므로 용모가 널리 알려진 트럼프의 경우 촬영이 필요 없다고 주장해 왔다. 다만 이날 지문 채취 절차는 진행됐다.

머그샷 촬영이 없었음에도 이날 소셜미디어에는 조작된 머그샷이 널리 유포됐고 트럼프 쪽 모금단체는 가짜 이미지가 새겨진 티셔츠를 증정한다며 기부를 유도하고 있다고 미 정치전문지 <더힐>이 보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쪽은 지난달 30일 기소 사실이 알려진 뒤 며칠 동안 700만달러(약 92억원)에 이르는 기부금이 들어 왔다고 3일 밝히기도 했다.

기소인부절차 뒤 곧장 플로리다주 마러라고로 돌아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거짓 사건은 오직 2024년 대선 개입을 위해 제기된 것"이라며 "즉시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법으로 연방선거 관련 처벌 가능할까…공화당 내 트럼프 지지율은 기소 뒤 상승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실제로 중범죄로 처벌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의견이 나온다. 이날 회견에서 브래그 지검장은 중범죄의 근거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등을 시사했지만 관련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진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브래그 지검장이 이날 불법적 수단으로 입후보를 홍보하는 것을 공모할 경우 범죄가 되는 뉴욕주법을 언급했지만 이 법이 왜 연방선거인 대선에 적용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다만 지검 쪽이 사업 기록 허위 기재가 세금 문제와도 연관됐다고 시사한 것은 중범죄 인정 가능성을 좀 더 높일 수 있다고 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음에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오는 12월이 될 전망이다. 

초유의 형사 기소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내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율은 오히려 상승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기소 소식이 알려진 뒤인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3일까지 18살 이상 미국인 2005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로이터와 입소스 공동 여론조사에서 설문에 응한 공화당원들은 공화당 대선 후보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가장 선호(48%)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14~20일(44%)보다 오히려 상승한 것이다. 

유력한 경쟁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지지율은 같은 기간 30%에서 19%로 급락했다. 민주당원을 포함한 전체 응답자의 51%가 이번 맨해튼지검의 기소가 정치적 동기로 이뤄졌다고 봤다.

맨해튼지검이 제기한 공소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 중 가벼운 쪽에 속한다. 미 법무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밀 문서 유출 및 2021년 1월6일 미 의사당 폭동 선동 혐의를 조사 중이다.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 지방검사는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조지아 선거 결과에 개입하려 한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 뉴욕주 법무장관은 트럼프 일가의 세금 사기 혐의를 조사 중에 있다.

▲혼외 성관계 입막음을 위한 사업 기록 조작 혐의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각)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열린 기소인부절차에 참석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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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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