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비 폭탄? 화석연료의 진짜 가격을 묻는다

[함께 사는 길]화석연료가 보낸 경고장 ①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의 폭탄이 우리에게도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난방비 폭탄'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한파가 한풀 꺾이자 가가호호 날아든 것은 폭등한 가스요금 고지서였다. 정치권은 연일 공방을 벌이며, 난방 에너지라는 필수재 가격 상승의 책임이 상대 정당에 있다며 악다구니를 쓰고 저마다 시민들의 부담완화를 위해 지원책을 공약하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평가하면 난방비 급등의 책임은 거대 양당 모두에게 있고, 단기적 지원책으로 이를 해소할 수도 없다. 무의미한 정쟁이다. 실상 올해의 난방비 고지서는, 화석연료 에너지의 저렴한 공급을 무리하게 고수하던 우리 사회에 언젠가는 날아들 '진짜' 청구서였다. 말하자면 펑펑 쓴 채무가 만기된 것이고, 이제 이자까지 쳐서 갚아야 한다는 상환 통지서가 날아든 것이다.

난방비 상승의 원인

좁게 보면 작금의 난방비 상승의 직접적 원인은 러-우 전쟁으로 촉발된 국제 가스 가격의 상승이다. 22년 상반기, 러시아로부터 가스 공급이 44%가량 감소한 유럽이 역외 수입을 늘리면서 유럽 내 수급 문제는 일시적으로 안정화되었지만, 가격 불안정은 지속되었다. 21년 1월 1일 $6.8 MMBtu(Million Metric British thermal unit. 천연가스 거래 시 주로 사용하는 열량 단위)였던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22년 8월 26일 기준 $99 MMBtu까지 뛴다. 아시아 지역 역시 이러한 동향에 영향을 받아, 21년 1월 1일 $14.3 MMBtu였던 천연가스 가격이 22년 8월 29일에는 $70 MMBtu 수준으로 올랐다.

우리도 이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국가에너지통계종합정보시스템의 가격정보에 따르면, 2021년 8월 액화 천연가스 수입단가는 톤당 535달러였던 데 반해 2022년 수입단가는 톤당 1470달러였다. 이러한 국제 가스 가격의 급등은 가스공사의 재정 건전성을 먼저 위협했다. 2021년 1조7656억이던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22년 6월 5조4011억까지 치솟았다. 22년 12월 기준으로 약 9조 원의 미수금이 누적된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전력의 적자가 30조 원 수준이니 국내 에너지 공기업들은 사실상 파산 수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가스공사의 미수금 누적이나 한국전력의 적자 심화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구조적으로는 국제 에너지 가격을 원가에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는 우리의 시스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선, 도시가스의 경우 전기 원료비 연동제에 따라 가스공사가 국제 에너지 가격과 환율 등을 고려해 요금 조정안을 정부에 제출한다. 정부는 이를 심의하는데,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이를 유보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 즉, 물가 안정 등을 이유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상승해도 가스요금은 인상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생활 필수재인 에너지에 매겨지는 공공요금의 가격 조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특수한 경우, 공기업이 필수재를 원가 이하로 제공하는 것도 불가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원가 이하로 가스를 공급하는 것을 가스공사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데 있다. 상술했듯 미수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가스공사의 사채 발행도 법적 한도에 이르러 더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정치권의 논의는 자연스레 가스공사의 사채 발행 한도를 늘려주는 법률 개정을 하거나, 전력산업기반기금 등의 예산을 털어 가스공사의 부채를 탕감해주자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러나 가스공사에 대한 단기적 구제책으로 본질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그것은 가스공사보다 먼저 재무적 한계에 봉착해 있던 한국전력(누적적자 30조 원)의 사례를 보도한 기사를 참고하면 더 명약관화해진다.(☞ 관련 기사 : <동아일보> 2022년 11월 12일 자 '한전, 9월까지 21조8000억 적자… 올해 누적 30조 될 듯')

외형상 한국전력은 전기를 판매하는 회사고, 전력 생산은 발전공기업이 맡고 있다. 하지만 실상 발전공기업이 모두 한전의 자회사인데다 전력 시장 구조상, 한전이 발전소로부터 전기를 구매할 때는 발전사들의 이윤을 보장해주게 되어있는 반면 한전이 소비자들에게 전기를 팔 때는 이윤 보장이 되지 않는다. 전기요금 역시 한전이 초안을 산정하여 산업부로부터 요금 조정 인가를 받게 된다. 그런데 전기요금의 경우 연료비 연동제 도입이 가스요금보다 늦었던 데다가 역대 정부가 번번이 요금 인상을 반대하면서 영업 적자와 부채가 불어왔다. 난방용 천연가스나 전기나 공공요금 인상을 저어하는 역대 정부의 정치적 입장 탓에 원가 반영이 난망한 것이다.

그럼 한전도, 가스공사도 사채 한도를 늘려줌으로써 공기업 부채비율을 늘리는 것으로 문제가 해소될까? 그 늘어난 부채는 향후에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투여해서? 전력산업기반기금 자체가 전기요금에서 3.7%의 비율만큼을 걷은 세금이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이다.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는 현재도 매년 200억 원 이상 석탄공사 같은 부실공기업의 재무 상태 악화를 완화하기 위해 출자금을 사용하고 있다. 국민들이 직접 요금으로 내지 않을 뿐이지 결국 세금이 공기업 부담을 완화에 사용된다는 점에서 건전한 재정구조가 아니다.

▲난방비 폭탄을 맞은 각 가정들이 실내 난방온도를 낮추고 겨울을 보내고 있다. ⓒ함께사는길

화석연료에 목매는 한국의 에너지 소비

그러나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에너지요금 산정 구조나 공기업 운영 방식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바로 화석연료 의존성이 과도하게 높은 에너지 소비 현황이다. 우선 에너지요금 산정에 있어서 원가를 반영하는 일보다 더뎠던 것이 환경 비용을 책정하는 일이었다. 2022년에서야 전기요금에 기후환경요금이 책정되긴 했지만 'RPS비용 단가, ETS비용 단가, 석탄발전 감축비용 단가'가 그 산정 기준이었다. 환경 정책에 수반되는 비용이 전기요금 고지서에 '기후환경요금'으로 표시되기 시작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환경 비용이란 화석연료 및 핵에너지 의존성이 높은 에너지 시스템으로 인해 기후·생태계에 발생하는 악영향이 계산된, 말 그대로의 환경적 '비용'에 상응하는 값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에너지비용은 지나치게 싸게 책정되어왔다.

2020년 '에너지총조사보고서'의 통계로 볼 때, 한국의 최종에너지 소비는 석유(51.5%), 전력(20.6%), 석탄(13.2%), 천연가스(11.4%) 순으로 화석연료 비중이 압도적이다. 최종에너지 소비의 20%를 차지하는 전력마저도 석탄과 천연가스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비중이 60%가 넘는다.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에 직격탄을 맞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난방비나 전기요금만이 아니다. 러-우 전쟁 개전 직후 유류비도 경유와 휘발유 모두 리터당 2000원대로 치솟았다. 산업·수송·건물까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이 화석연료에 저당 잡혀 있는 것이다.

더욱이 화석연료의 국제 가격은 향후에도 안정화되기 어렵다. 생산국에서 발생하는 전쟁 등의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도 기후위기 시대에 화석연료 가격은 끊임없이 인상될 일만 남았다. 유럽에서는 22년 12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도입되었고, 주요국에서 모두 탄소세 도입이 진행되었거나 준비되고 있다. 탄소 배출량에 대한 이러한 정책적 제재는 화석연료 가격의 필연적 인상을 부른다.

지난 5년간의 동향을 보면, 석탄의 선물 시세는 20년 4월 28일 $40 Short ton으로 최저였다가 22년 3월 8일 $458까지 치솟았다. 원유 역시 브렌트유 기준으로 20년 4월 21일 $19 bbl이었던 것이 22년 3월 8일 $127를 기록(에너지경제연구원 '세계에너지 시장 인사이트' 참조)했다. 물론 전쟁의 여파가 가격 변동의 가장 결정적 요인이었고 단기적으로 다시 하락 추세에 있지만 전망은 어둡다. 이미 발전단가를 기준으로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 국가에서 화석연료보다 재생에너지가 값싸지는 '그리드 패러티Grid parity'가 현실화했다. 국제적 투자운용사 등 금융계도 석탄 산업 투자 제한을 시작으로 화석연료 산업으로부터 단계적으로 철수할 모양새다. 요컨대 화석연료로부터 얻은 에너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지금의 체제를 유지한다면, 에너지 요금은 불가항력으로 계속 상승하게 될 것이고 올겨울과 같은 '에너지 요금 폭탄' 논란이 반복될 것이다. 그때마다 시민들에게 수조 원 규모의 지원금을 푸는 방식이 지속가능할 수 없다.

해답은 하나뿐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원료 가격의 변동으로부터도 자유롭고, 환경적 리스크도 적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것이다. 물론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전환을 하더라도 중단기적으로 에너지요금의 합리화를 통한 에너지 공공성 강화는 필수불가결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부수적인 제도 시정에 가깝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시설과 시민이 늘어나는 만큼 화석연료가 발생시키는 백해무익한 비용 리스크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또 하나는 에너지 효율화와 수요관리다. 가정용 에너지의 약 40%가 냉난방에 사용되는데, 경제적 하위 계층이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비용의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는다. 그 이유는 하위 계층이 높은 에너지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적은 탓인 것에 더해, 그들 주거 시설의 열효율이 낮기 때문이다. 단열이 안 돼 '밑 빠진 독 물 붓기'식의 냉난방 에너지 사용을 할 수밖에 없고 실제 누린 온기보다 비싼 비용을 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에너지 복지 차원의 지원책 마련과 별개로, 건물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한 예산을 추가 편성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기후정의 관점에서 주거 질 개선과 같은 복지 정책과 연계해 건물 에너지 효율화 제도를 '리디자인'해야 한다.

우리는 아주 뒤늦게 화석연료의 진짜 가격을 확인했다. 이제 이 난방비 고지서를 손에 쥐고 날림 대책이 아닌 본질적 시스템 정비를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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