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베트남 하청업체에서 37명 메탄올 중독, 1명 사망

시력 잃은 베트남 공장 노동자 중 10대 노동자도 포함

삼성전자 핸드폰의 부품을 만드는 베트남 하청업체에서 37명의 노동자가 메탄올 중독 판정으로 시력을 잃는 등 중증 증세를 보이고 있고, 여성 노동자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6년 한국의 삼성·LG전자 협력업체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청년 7명이 같은 이유로 실명한 사건과 닮았다.

반올림과 유해물질추방국제네트워크(IPEN) 등 국내·외 시민단체는 29일 서울 강남 삼성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은 휴대폰 생산기지를 베트남으로 옮기면서 위험도 함께 옮겼다"며 "협력사가 한국이 아니라 베트남에 있었다는 점을 빼면 국내 발생 사례와 너무나 똑같은 사고"라고 밝혔다.

앞서 베트남 현지 언론 <Tuoi tre news>는 베트남 법인 2차 협력업체 'HS테크' 노동자 37명이 메탄올 중독 판정을 받았고 이 가운데 42세 여성 노동자 응우옌 씨가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관련기사 : 1 killed, dozens hospitalized due to methanol poisoning in northern Vietnam)

반도체 공정에서 세척·탈지·냉각 용도로 사용되는 메탄올은 인체에 장기간 노출 시 중추신경계와 시신경 손상을 유발하는 독성 물질이다. 베트남 공장 노동자들은 메탄올을 '에탄올'로 알고 사용했다. 병원 측은 노동자들이 메탄올로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 피부를 통해 직접 접촉하는 과정에서 메탄올에 중독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6년 한국에서도 삼성전자와 LG전자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청년 7명이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했다. 이후 삼성은 2019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모든 사업장과 협력업체에서의 메탄올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사용규제물질목록에도 '메탄올'을 명시한 바 있다.

▲2019년 삼성지속경영가능보고서에 명시된 사용규제물질목록에 '메탄올'이 포함되어 있다. ⓒ삼성지속경영가능보고서 갈무리

시력 잃은 베트남 공장 노동자 중 10대 노동자들도 포함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는 베트남 공장에서 일하다 중독 증세를 보인 노동자들의 현 상태를 일일이 언급했다. 그는 "17세 남성 노동자의 상태가 매우 위중하다"며 "돌아가신 응우옌님보다 일주일 먼저 호흡곤란, 피로감, 시야 흐림, 혼수상태 등의 증상을 보였다. 투석 해독 치료를 받고 의식은 회복했지만, 여전히 뇌와 눈이 손상된 상태"라고 했다.

이 상임활동가는 또 "양쪽 뇌 손상이 심각한 세 분이 있다"며 그 중 "18세 남성 노동자와 16세 남성 노동자가 거의 시력을 상실했다"고 전했다. 

이 상임활동가는 메탄올 사용을 금지한 삼성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언급하며 "삼성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삼성 협력회사의 안전보건관리가 얼마나 철저히 이루어지는지 자화자찬으로 가득"하지만 이는 현실과 달랐다고 비판했다. 이어 "삼성은 10년이 넘게 직업병 문제를 바로 이런 식으로 대응해왔다"고도 덧붙였다.

베트남 공장 노동자들을 직접 인터뷰한 해외 시민 단체 활동가도 이날 참석해 발언을 했다. 조 디간지 IPEN 과학기술 고문은 "우리는 삼성 베트남 공장 여성 노동자 마흔 다섯 명을 인터뷰했다"며 "이들 모두 어지러움이나 실신을 경험했고 젊은 여성들은 유산이 흔한 일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IPEN은 이러한 노동자들의 경험을 모아 보고서를 작성했으나 삼성은 소송을 걸겠다고 협박했다고 디간지 고문은 말했다. 디간지 고문은 "삼성은 외부인에게 공장 환경을 이야기하면 소송을 당하거나 해고될 거라고 직원들을 협박했다"며 하지만 "삼성은 자기 노동자들이 베트남 공장에 대해 했던 말들을 부인했다"고 했다.

단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위험의 외주화는 위험을 떠넘기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위험의 외주화는 낮은 임금만이 아니라 느슨한 안전 보건 규제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삼성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공급망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는 공허한 소리만 늘어놓지 말고,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Bach Mai 병원의 독극물 통제 센터 책임자인 Nguyen Trung Nguyen 박사는 메탄올에 중독된 환자의 뇌 손상을 평가하고 있다. ⓒBach Mai 병원

삼성전자 "위험의 외주화 아니다... 에탄올 납품 사기"

삼성전자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우리가 위험을 외주화한 것이 아니"라며 "에탄올을 썼는데 이런 사고가 나서 성분분석을 해보니 에탄올이 섞인 메탄올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가 납품사기를 했는데 협력업체도 모르고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왜 가짜 에탄올이 유통 되어 2차 협력 회사에 납품 되었는지 베트남 현지에서도 수사를 하고 있다"며 "범죄사실은 현지에서 수사할 테고, 삼성은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협력사 관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민단체가 이에 대한 책임을 삼성에 묻고 있는 데 대해 이 관계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되물으며 "범죄자들을 수사할 수 있는 수사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대신 협력업체에 납품되는 물질의 성분분석을 하는 추가 절차를 도입했다고 그는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협력업체가 에탄올 사용 전 직접 성분분석을 하도록 하는 추가 절차를 최근 도입했다"며 "평소 같으면 필요 없는 절차인데 성분 분석 라벨, 서류도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직접 분석해보자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는 이에 대해 "이런 상황에서도 삼성은 문제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노력보다는 문제를 감추고 호도하는데 애를 쓰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활동가는 "삼성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협력회사 운영과 관리에서 '글로벌 구매 행동규범을 기반으로 구매통합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위험 관리'가 포함되어 있다"며 "이런 삼성의 선전과 달리, 협력업체는 냉각용 알코올을 새롭게 사용하면서 아무런 검증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삼성전자 공장과 협력사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 절반 가까이가 발암성, 생식독성, 변이원성 물질로 가장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이지만 "시설에 화학물질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설비차폐, 환기장치, 국소배기장치, 보호구 등은 아예 없거나 적절한 수준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벌어졌던 메탄올 중독사고의 재발은 막지 못했지만, 삼성직업병 사태가 불거지기 전에 삼성이 문제해결에 나서기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말했다.

▲반올림 등 국내외 시민단체가 29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원청인 삼성의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을 열었다.ⓒ프레시안(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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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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