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8시간 노동제가 기준이다

[인권의 바람] 시간은 인간존엄성의 바탕, 체제전환의 틈

"근로자의 정신건강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추세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유행하고 있지만, 최소한 한 국가는 이 추세를 놓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CNN)

1858년 호주 건설업에 8시간 노동제가 도입됐다. 지금은 많은 나라가 주 8시간제를 지키고 있고, 법정근로시간이 프랑스(주35시간)처럼 더 적은 나라도 여럿 있다. 그런데 한국은 거꾸로만 간다.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노동시간을 60시간까지 연장하겠다는 뜻이니 비판받아 마땅하다. 오죽하면 미국 CNN마저 비판의 목소리를 담아 전하겠는가. 60시간 노동시간 연장안은 전면적인 후퇴다.

민주당이 주 40시간을 흩트린 후과

그런데 주 60시간이라는 황당한 말이 나오게 된 데에는 더불어민주당 정권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주 40시간 법정근로시간의 틀을 흔들어놓은 것은 2018년의 일이다. 2018년 3월 국회는 5명 이상 사업장에 단계적으로 주 52시간제를 도입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의결했고 그 후에도 탄력근로시간제 확대를 도모했다. 2018년 11월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정부와 민주당이 여당인 국회는 2019년 2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최대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이에 탄력근로제를 적용하는 사업주는 특정 주에 노동자에게 최대 64시간(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추가 연장근로 12시간)동안 일을 시키는 것이 가능해 졌다. 심지어 코로나를 핑계로 2020년 1월 노동부는 근기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하게 했다.

현재도 법정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이다. 민주당이 사람들의 감각을 주 40시간이 아닌 주 52시간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연장근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했다. 이렇게 하루 8시간 노동의 틀을 깨버리니, 윤석열 정부가 '주 69시간, 60시간'같은 근로시간 개편안을 내놓는 것이다. 사람의 시간은 유한하고 사람의 생명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지워버린 채, 기계처럼 기업주가 원하면 아무 때나 일을 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탐욕스런 발상인가.

당시 민주당은 주 40시간이 지켜지지 않아서 근로시간을 제한하려 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연장근로를 허용하는 현실(40+12=52시간)에서 연장근로시간을 제한하는 취지라고 변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휴식 있는 삶과 일·생활의 균형을 실현’이라는 수사를 동원했다. 그러나 주 5일 근무제를 정착시키는 방향으로 단속과 관리를 강화하는 안을 내놓아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주말 근무(52+16=68, 토요일과 일요일 포함 시간)를 전제하고 그것과 비교해 개편안이 개선안인 양 홍보했다. 조삼모사다. 게다가 당시에도 탄력적 근로시간까지 추진했다. 기업주의 입장에 선 정책임이 분명했다. '적정한 휴식을 주지 않고 집중해서 일을 시킨다'는 반인권적인 발상은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이제 와서 민주당이 주 60시간제를 비판한다. 그 태도에 진정성을 보이려면 먼저 주 52시간제를 제도화하고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추진한 데 대한 반성적 평가가 있어야 한다.

▲지난 16일 한국노총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주69시간 노동시간 개편안 폐기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김동명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일노동시간 삭제한 주 단위 노동시간의 함정에 벗어나야

1일 8시간 노동 요구는 이미 18세기 후반 때 나왔다. 당시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 12시간 노동을 하던 잔인한 현실을 바꾸고자 했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을 공동 기치로 건 것은 1866년 8월 제1인터내셔널(국제노동협회)에서다. 노동절(May Day)의 유래도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한 노동자투쟁이 기원이다. 최초의 국제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의 1호 협약도 노동시간이다. 이처럼 노동자권리투쟁에서 노동시간은 매우 중요한 의제다.

한국은 1991년 ILO에 가입하며 8시간 노동제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 됐다. 주말인 토요일에도 반일 근무를 해야 했던 때에는 '1일 8시간, 주 44시간제'였다. 그러다 2003년 8월 29일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법정 노동시간이 단축되었다. 주 40시간제는 2004년 7월부터 6단계에 걸쳐 2011년 7월 현재 5인 이상 20명 미만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까지 확대 적용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5인 미만 사업장이나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많은 특수고용노동자들,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있다.

'1일 노동시간'을 삭제한 '주 단위 노동시간' 논의는 주 52시간, 주 69시간 같은 개악을 가능케 한다. 주 40시간과 1일 8시간 노동제의 기본 틀은 함께 가야 실효성이 있다. 둘 중 하나가 빠지면 뒤틀린다. 사람에게는 24시간 중에 자고 먹고 쉬는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주 단위를 넘어서서 연장근로를 관리하는 다수의 국가가 일일 최대 노동시간을 규제하거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48시간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아닌가. 독일의 경우 1일 8시간을 기준근로시간으로 하고, 1일 최장 근로시간은 1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벨기에는 법정 근로시간은 주 38시간으로 유지하면서 하루 근무 시간을 8시간에서 9시간 30분으로 늘리도록 해 주 4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시간은 인간존엄성의 바탕

하루 노동시간의 상한선을 없애버린 주 단위 논의는 비인간적이다. 인권침해다. 사람의 목숨과 건강은 유한하다. 사람은 시간 속에서 존재한다. 소설 <모모>의 문구처럼 "시간은 삶"이다. 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다. 돈을 벌려고 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해도, 쉬려고 해도,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려고 해도 시간 없이는 불가능하다. 교육 권리든, 문화적 권리든, 건강 권리든 간에 다른 권리를 향유하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하다. 노동하는데 시간을 빼앗기면 쉬거나 다른 사람과 교류할 시간은 자연스레 줄어든다. 인간적인 삶을 살 수가 없다. '소득 빈곤' 만이 아니라 '시간 빈곤' 논의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설 <모모>에서 모모가 시간 도둑들로부터 시간을 지키려 한 이유는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였다.

장시간 노동은 사람의 생명을 갉아먹는다. 과로사는 장시간 노동과 떼려야 뗄 수 없다. <한겨레> 보도로 알려졌듯이, 지난 3월 13일 나흘 동안 퇴근하지 못하고 62시간 연속으로 일한 경비노동자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지병도 없던 40대의 노동자였다. 장시간 노동이 어떻게 사람을 죽게 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아니 기계도 과열되지 않도록 쉬게 한다.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15시간으로 38개국 중 5위다. 과로로 한 해 500여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한국에서 장시간 노동을 제도화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근로복지공단 근로복지연구원이 낸 <과로사 요양결정 사례 분석(2020)>을 보면, 2019년 기준 52시간 이상 60시간미만 산재 승인율은 30.8%, 60시간 이상은 46.1%이다. 즉 노동시간 60시간이 넘으면 산재발생율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지금도 매일 5.69명이 산재로 숨지는 사회다. 2021년 산업재해현황분석 자료에 따르면 그 해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2080명이다. 일터를 무덤으로 만들려는가!

노동시간 개악안은 성차별적 가사·돌봄 강화

장시간 노동이 돌봄의 공백, 돌봄의 젠더편향성을 강화하는 것도 문제다. 즉, 장시간 노동은 여성의 가사노동 및 돌봄시간 증가로 이어지기 쉽다. 젠더불평등은 성별에 따른 시간 배분에서도 차별적으로 나타난다. 가사·돌봄시간 책임은 여성에게 주어진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가사노동시간 성별 격차가 심한 현실에서 장시간 노동은 남성이 돌봄 책임을 안 져도 되는 기제로 작동한다. 젠더불평등한 사회에서 여성노동자도 장시간 노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여성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가사·돌봄노동도 도맡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여성노동자에게 회사에서의 퇴근은 또 다른 (가사)노동의 시작이란 말은 농담이 아니라 현실이다.

아직도 한국에 여전한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여성을 가족 돌봄 노동자로 만든다. 이는 기업주의 남성 노동자 채용 선호로 이어진다. 결국 장시간노동은 여성의 가사 돌봄 노동 증가와 여성의 일자리 축소를 낳는다. ILO의 <미래를 위한 존엄한 노동시간 보장>(2018) 보고서에 나온 다섯 가지 기준에 '가족친화적'이고 '성평등을 지향'하는 노동시간이 포함된 이유다. 보고서는 장시간 노동문화는 일과 돌봄의 양립을 불가능하게 하여 여성들에게 제약을 가하고 유리천장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서 성평등을 가로막는다고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시간은 계급투쟁

ILO가 제시한 존엄한 노동시간의 다섯 번째 기준은 노동자의 노동시간 선택권이다. 존엄한 노동시간 체제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시간의 길이와 근무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갖게끔 해야 진전될 수 있다고 ILO는 지적했다. 기업주가 아닌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라는 뜻이다.

그러나 기업주들은 이윤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노동자들의 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노동자들의 시간이 자본가의 것이 될수록 노동자들의 삶의 종속성은 커진다. 반대로 노동자들의 자율성, 자유로운 삶은 줄어들고 노동자의 사회적 삶은 생산과정으로만 제한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시간은 존엄한 삶의 투쟁이자 첨예한 계급투쟁의 사안이다.

노동시간에 틈을 낼수록 탐욕스런 자본주의 체제에 균열이 발생한다. 노동시간의 문제는 단지 노동자의 재생산시간, 여유시간의 확보와만 관련된 것이 아니다.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노동자의 사회체제의 모순을, 위기를 사유하고 동료들과 모이고 논의하고 외칠 시간은 줄어든다. 사유 없이, 사회적 교류 없이 개별 노동자들은 고립된다. 계급적 단결을 위한 시간조차 만들기 어려워진다. 녹초가 되어 집에서 잠만 자기 급급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지배 권력이 원하는 바 아닌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우리는 근로시간 개편안을 막아내고 나아가 노동시간 단축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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