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평화의 섬 제주라고 왜 말을 못 하는가

[기고] 인류세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평화를 묻다

문명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기후 변화에 기민했었다. 날씨와 관련한 수많은 전설과 신화를 살펴보면 인류는 단 한 번도 태평하지 않았다. 요즘은 기후 변화가 더 유난해졌다. 위기를 쓰고 말하는 사람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요즘 풍경은 비 내리기 직전 새의 지저귐을 듣는 것처럼 요란하다. 이 요란함은 인류가 지구에 출현한 지 단 1만여 년 만에 새로운 지질학적 명칭을 스스로 부여할 만큼 달라진 시대를, 즉 대멸종의 시대를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간빙기/홀로세에 이어 인류가 맞이한 대가속의 시대를 우리는 '인류세'라 부른다.

처음 저 용어를 들었을 때는 인류가 지구 환경 오염에 지급해야 하는 세금 같은 것을 말하는가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인류가 만들어낸 지질학적 시대는 인류 스스로가 치러야 할 가장 큰 결과, 즉 인류를 포함한 다양한 생명들의 영원한 죽음 값이다. 인류는 자신이 생성한 새로운 지질시대에서 자신이 원인이 된 재앙으로 인해 멸종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다. 앞선 그 어떤 지질 시대에도 그 시대를 대표하는 지배 종 때문에 그 시대가 열리고 닫힌 적은 없다. 그걸 인류가 해내고 있으니 정~말로 대단하다고 박수라도 쳐야 할 판이다.

인류세라는 말을 회자하고 널리 알린 파울 크루첸에 따르면 이 시대에 "지구 환경에 새겨진 인간의 흔적이 매우 크고 인간의 활동이 대단히 왕성해져 지구 시스템 기능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력이 자연의 거대한 힘들과 겨룰 정도가 되었다."(https://naver.me/F9nZA9ij 에서 부분 인용) 가히 놀라운 인류의 세력화 결과다. 이런 변화는 더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기후 위기는 이미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범위를 지나쳐 가며 가속화 진행 중이다. 특히 우려되는 건 휴대전화의 발전 속도에 맞춰 성장한 전쟁 무기들의 발전이다. 우리는 이제 지구 전체도 망가뜨릴 수 있는, '놀라운' 기술을 손에 넣었다.

▲제주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로 강정마을 강정천에 대형 교각이 설치되었다. 그 과정에서 인근 주상절리대가 붕괴했다. 주민들이 공사중단을 요구했으나 모두 무시되었다. ⓒ엄문희

이처럼 다채롭게 대재앙을 이끌어오는 시대를 이끄는 인류 활동의 샛별은 무엇일까. 개인? 다국적 기업? 바로 군사 활동이다. 2020년 영국 기후학자인 스튜어트 파킨슨이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 산업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항공 1.9%, 해운 1.7%, 철도 0.4% 등에 불과하지만 군사 활동에 따른 배출량은 전체의 5~6%로 추정된다. 문제는 1997년 교토의정서 체제에서 군사 활동의 배출량이 자동 면제 대상이었고 2015년 파리협정에서도 군사 부문 배출량을 감축할 의무가 명시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에 따라 각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에서 군사 활동 분야의 배출량을 정밀하게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 이는 군사 활동의 끝판왕인, 전쟁에 따른 탄소 배출과 그에 따른 기후 위기의 가속화가 상상의 경계를 넘을 가능성이 큼을 의미한다. 특히나 전쟁은 시작과 달리 그 끝이 불분명하다. 국가 간 다툼이 끝났다 하더라도 파묻힌 전쟁 잔해로 인해 지속되는 사상자의 출현, 파괴된 환경으로 인한 셀 수 없는 위험과 재건이라는 이름으로 발생하는 새로운 폭력이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

내친 김에 인류가 이동으로 인해 지불하는 탄소 배출량의 샛별까지 알아보자. 살아 움직이는 동물인 우리 인류가 이동의 자유를 가진 만큼 책임도 져야 다른 종 앞에 당당하게 직립보행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유럽환경청이 2014년 혁신적 도시 이동 계획(TUMI) 자료를 인용해 발표한 내용을 보면 88인승 비행기에서 승객 1인당 1킬로미터(㎞) 이동 시 탄소를 285g 배출한다. 자동차는 1.5 명이 탔을 경우 같은 거리를 이동할 때 158g을, 156명이 탄 기차는 14g을 각각 배출한다. 비행기에서 발생하는 탄소발자국이 제일 길다. 비행기를 덜 타고 적게 타는 것이 바로 기후 위기에 대비한 양심적인 예의다. 그러니 수많은 전투기 이동만 생각해도, 군사 훈련은 상상 그 이상의 결과를 내어놓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제주도민 입장에서는 '감사'하게도 <평화의 섬, 제주>에 굳이 세계 자연유산 구럼비를 폭파하고 해군기지가 들어섰다. 이제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앞장선 프로젝트가 환경부를 통과해 제2공항 건설 추진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환경파괴 이동 수단이 참으로 위험한 지역에, 표면적으로는 평화를 유지하면서 실제로는 강압적으로 안착할 예정이다. 평화를 저해하는 원인이 전쟁이고 그 주력 기반이 비행과 관련됨을 고려하면, 이제 제주에는 전쟁과 관련된 근거이자 기후 위기의 원인이요 가속화 페달인 공항이 들어서는 꼴이다. 무덤이 언제부터 평화의 상징이었나. 죽음을 부르는 제주에서, 무덤과 닮아가는 제주에서 평화의 섬이라는 호칭이 가당키나 한가. '죽은' 평화의 섬, 제주라고 왜 말을 못 하는가. 이 아늑한 무덤 안에서 맞이할 평화로운 벚꽃놀이는 과연, 평화와 얼마나 닮아있는가.


이 기고는 <제주투데이>에도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한정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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