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충돌로 57명 사망한 그리스 열차, 대체 무슨 일이?

[기고] 시장의 자유는 무고한 사람들의 피로 유지된다.  

“너희들의 수익, 우리의 죽음이다!”

그리스 국가 애도 기간 마지막 날인 지난 3일 아테네 거리를 메운 수천 명의 시위대가 분노로 외친 구호다. 지난 28일, 그리스 전통 축제를 즐겼던 젊은이들은 아테네역에서 테살로니키행 밤 기차에 올랐다. 열차 안은 젊음이 발산하는 에너지와 기차여행이 주는 설렘이 충만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350여명의 승객을 태운 열차는 북쪽을 향해 달렸다. 밤 기차는 신화 속 전사 아킬레우스가 탄생한 곳이라는 라리사를 출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 오던 화물 열차와 충돌 후 화염에 휩싸였다.

그리스 철도는 3개의 주요 노선을 중심으로 네트워크가 이어져있다. 아테네 – 텔레폰네소스를 잇는 남부노선, 테살로니키 – 이도메니(북마케도니아)를 잇는 북부노선, 그리고 중심 뼈대를 이루는 아테네 – 테살로니키를 잇는 520km의 그리스 철도 본선이다. 한국의 경부선과 같은 구실을 하는 노선으로 아테네 – 테베 - 라리사 – 테살로니키의 주요 도시를 잇고 있으며 이들 도시에서 지선을 통해 칼키스, 라미아, 볼로스, 트리칼라 같은 도시들로 연결된다. 아테네에서 테살로니키까지는 4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고속열차 속도는 아니지만 최고속도 160k/h 이상의 준고속 열차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그리스 열차 충돌 사고가 충격적인 것은 그리스에서 가장 주요한 노선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국 경부선에서 열차의 정면충돌은 상상할 수 없다. 일부러 발생시키려 해도 쉽지 않을 뿐더러 설사 충돌이 일어날지라도 여러 단계의 보호 체계에 의해 저속 상태로 충돌하기에 수 십 명이 사망하는 참사로 이어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산간벽지 또는 단선 철도이거나 신호체계가 제대로 갖춰줘 있지 않은 낙후된 지역이 아닌 그 나라의 주 간선 철도에서의 정면충돌은 현대 철도 시스템에서는 좀처럼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나라마다 시기는 다르지만 1950년대부터 1980년대를 지나면서 국가의 주력 교통수단이었던 철도는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도로 교통에 밀려났다. 수송분담률이 떨어지고 수익도 줄어들었다. 반면 거대 인프라 산업이라는 특성상 철도를 유지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국유철도시스템은 국가의 부담이었다. 이때 묘약으로 등장한 것이 신자유주의였다. 신자유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시장으로 양도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윤율 저하로 고통받던 기업들은 정부가 맡고 있는 사업에 눈을 돌렸다. 필수기간 산업이기에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필요도 없고 영구적 수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1일(현지시간) 열차 충돌 사고가 발생한 그리스 중부 테살리아주 라리사 인근 템피에서 구조대원들이 작업하고 있다. 이날 밤 자정에 근접한 시각에 여객 열차와 화물 열차가 충돌해 일부 차량이 탈선하거나 불이 붙었다. ⓒ연합뉴스

신자유주의의 3대 교리는 '작은 정부', '민영화', '무한경쟁'이었다. 작은 정부를 위해서도 민영화는 필수적이었고 경쟁체제는 민영화를 촉진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다. 한국의 국토부가 20년 넘게 신봉하고 있는 '철도 경쟁체제를 통한 효율화'는 바로 신자유주의 도그마를 기초로 한 철학이다.

IMF 구제금융은 한국 공기업들의 민영화를 전제로 이뤄졌듯이 민영화 회오리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전환점을 맞는다. 2008년 세계를 휩쓴 금융위기에 그리스는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했다. IMF는 그리스에 단호한 긴축 재정과 민영화를 통한 구조조정을 요구한다. 이제 그리스 철도도 유럽 연합이 천명한 경쟁체제를 기반으로 한 자유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작동하게 된다.

1971년 국영철도에서 정부가 100% 출자한 공기업으로 출범한 그리스 철도(TrainOSE SA)는 유럽연합 지침에 따라 1996년 철도 시설 담당 자회사(ERG OSE)를 만들었다. 2001년에는 보다 독립적인 시설회사(GAIAOSE)로 거듭났다. 2005년에는 그리스 철도공사(OSE) 자회사로 여객운송을 책임지는 TrainOSE를 출범시켰다. 이렇게 사업과 서비스별 자회사로 분리된 그리스 철도는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 쉽게 자생력을 잃는 구조가 되었다. 인위적인 분리 정책으로 네트워크의 효율성을 상실하는 것은 통합과 조화를 근간으로 하는 철도가 맞이하는 숙명이다.

이처럼 그리스 철도의 변화를 언급하는 것은 현재 국토부가 밝힌 미래 철도 정책이 그리스와 닮아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와 닮았다기보다는 경쟁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EU의 철도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이다. 국토부는 한국 철도를 책임지고 있는 한국철도공사의 기능과 역할을 축소시키는데 힘을 쏟아 왔다. 2013년 철도공사 자회사로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를 출범시키면서 밝혔던 과제는 그리스처럼 수많은 자회사들을 양산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철도공사가 맡고 있는 관제, 유지보수, 차량 정비 기능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거나 민영화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스는 3차에 이르는 경제 위기 속에서 2013년 철도 민영화 프로세스가 진행된다. 경제 위기와 무관한 한국에서도 같은 해 철도 경쟁체제 드라이브가 걸렸다. 4월에 그리스 공공자산개발펀드(Hellenic Republic Asset Development Fund)가 그리스 철도 운영사(TrainOSE)의 주주가 된다. 개발펀드는 국제입찰프로세스를 통해 이탈리아 철도(Ferrovie dello Stato Italiane;FS)에 지분을 넘겼다. TrainOSE는 2017년 9월 14일 이탈리아 기업 FS에 완전히 양도 되었다. 2022년에 TrainOSE는 Hellenic Train으로 사명을 바꾸고 명실 상부한 민영기업으로 거듭났다. 그리스 철도 민영화가 완결된 후인 2018년부터 3년간 민영화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유럽에서 열차 운행 킬로미터당 사망률 1위를 기록했다.

민영 기업 헬레닉트레인의 목표는 무엇일까? 그리스 철도의 발전 또는 그리스 시민을 위한 철도 서비스 제공일까? 충돌사고 직후 그리스 기관사 협의회 대표 카토스(Kostas Genidounias)는 열차 안전을 위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테네 – 테살로니키 노선의 모든 것이 수동 조작이며 표시기, 신호등, 전자 제어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스 철도노조 대표 니코스(Nikos Tsikalakis)는 선로 시설 관리를 위해 2,000명 이상의 직원이 있어야 하지만 750명의 인력만이 있을 뿐이라고 한탄했다.

열차 안전 시스템 구축에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 철도 회사의 재무재표를 껴안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고 수익을 챙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길 것이다. 문제는 그리스 철도가 직면한 현실을 타개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민간기업의 일에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팔아버린 국가의 기간산업은 시민의 편익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2013년 수서고속철도를 출범시키면서 국토부는 독일식 철도개혁이라 이름 붙였다. 허울뿐인 경쟁체제 속에 존재하는 SR은 주식회사이자 코레일의 자회사이다. 지금 모회사와 자회사는 서로를 비난하며 제로섬 경쟁을 하고 있다. SR주식이 이사회 의결을 걸쳐 매각되면 매우 손쉽게 민영화가 된다. 가만히 보니 국토부 정책은 독일식이 아니라 그리스식이 아닌가?

조만간 한국은 민영철도의 천국이 될 것 같다. 한창 공사 중인 수도권 광역철도 GTX를 비롯한 많은 신설 노선이 민자사업이다. 유지보수, 차량정비도 민간 진출을 허용하고 SR에는 더 많은 노선과 영업권을 할당할 계획이다. SR은 철도공사 자회사란 굴레를 벗어나고 싶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철도를 장기적으로 보장되는 수익 모델로 보는 관료들과 기업들의 카르텔이 굳건한 대한민국에서 공공성은 서서히 소멸하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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