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다시 '줄 서는 나라' 될 건가? 질서 설계하는 중견국 될 건가?

[기고] 일극의 붕괴, 다극의 도래 : 위기가 아닌 기회 되려면…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은 한 기이한 정치인의 귀환을 넘어선 사건이다. 그것은 지난 70여 년간 국제정치를 규율해온 미국 중심의 '규칙 기반 자유주의 질서'가 구조적 전환점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논의는 이 변화를 "미국이 언제 다시 정상으로 복귀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환원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일시적 이탈이 아니라, 일극 패권 질서 자체의 약화와 다극 질서로의 이행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다.

이 전환을 단순한 혼란이나 위기로만 인식한다면 한국은 다시 선택을 강요받는 주변국의 위치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으로 읽는다면, 한국의 전략적 위상은 달라질 여지가 있다. 관건은 '어떤 질서를 지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선택이 한국의 국가이익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미국의 부재'가 아니라 '제국의 귀환'

트럼프식 외교의 본질을 단순히 먼로식 고립주의로 이해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서울대 박종희 교수가 지적했듯(인터뷰 바로 보기), 그것은 상업적 제국주의와 세력권 정치의 노골적 복원에 가깝다. 서반구는 절대적 영향권으로 관리하고, 그 밖의 세계는 거래와 압박의 대상으로 다루겠다는 발상이다. 동맹과 규범은 가치가 아니라 비용의 문제로 환원된다.

다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질문이 있다. 과연 '규칙에 입각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옹호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한국의 국가이익을 보장하는가 하는 점이다. 규칙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규칙이 누구의 이익을 어떻게 배분하는가가 핵심이다. 규범이 언제나 정의롭고, 규범을 지키는 것이 언제나 중견국의 이익으로 귀결된다는 전제는 현실 정치에서 성립하기 어렵다.

더구나 오늘의 세계는 19세기 제국 질서와는 전혀 다른 조건 위에 놓여 있다. 핵무기, 깊이 얽힌 글로벌 공급망, 기후·보건·기술 규범과 같은 초국경 의제는 강대국이 세력권을 일방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구조적으로 어렵게 만든다. 강대국은 여전히 영향권을 원하지만, 그 질서를 유지할 능력과 정당성은 동시에 약화되고 있다. 이 간극은 위기이자, 중견국에게는 새로운 전략적 공간이다.

다극 질서는 '규범의 도덕화'가 아니라 '이익의 조직화'

다극 질서는 강대국 간 자동 균형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중견국들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이익과 비용, 규범과 시장을 결합하느냐에 따라 형성된다. 중견국 연대는 '미국 없는 질서'를 지향하는 선언이 아니라, 어떤 강대국도 규칙을 일방적으로 훼손할 경우 실질적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 장치다.

한국·일본·EU·캐나다·호주, 그리고 일부 아세안 국가는 개별적으로는 제한된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규범, 기술 표준, 공급망, 시장 접근을 결합할 경우 강대국조차 무시하기 어려운 구조적 영향력을 형성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유주의 질서를 도덕적 이상으로 '완전 복원'하려는 접근을 경계하는 일이다. 대신 무력 병합 불인정, 핵확산 억제, 글로벌 공공재 보호 등 한국의 국가이익과 직결되는 핵심 규칙을 선택적으로 방어하는 현실적 연대가 필요하다.

안보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중심의 집단안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는 안정이 아니라 취약성을 낳을 수 있다.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인도·태평양 중견국 간 협력, 그리고 경제·기술·에너지 안보로의 확장은 동맹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맹에 과도하게 종속되는 위험을 관리하는 전략이다.

한국의 선택: '충성의 증명'이 아니라 '연결의 설계'

이 지점에서 한국은 단순한 생존자가 아니라 질서를 중개하는 국가(order broker)가 될 수 있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깊은 경제 관계를 갖고 있고,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축이자 민주주의와 산업 역량을 동시에 갖춘 드문 중견국이다.

이는 특정 질서의 이념적 선봉에 서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안보와 경제, 규범과 거래, 가치와 이익을 연결하는 교량 국가(linker state)가 되라는 의미다. 중견국 외교의 핵심은 어느 편에 서느냐가 아니라, 선택의 비용을 어떻게 분산시키느냐에 있다.

대만 문제에서도 원칙은 분명해야 한다. 무력 병합과 현상 변경에는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군사적 개입이 자동화되는 구조, 즉 미국의 전략적 부담을 한국과 일본이 떠안는 방식은 경계해야 한다. 해법은 중견국 공조를 통해 군사적·경제적·외교적 비용을 국제적으로 분산시키고, 중국과 미국 모두에게 무책임한 선택의 대가를 분명히 인식시키는 데 있다.

자강의 재정의: 군비가 아니라 국가이익의 자율성

이 모든 전략의 출발점에는 자강에 대한 재정의가 있다. 진보적 관점에서 자강은 군비 증강이나 힘의 과시가 아니다. 그것은 외부 질서가 어떻게 변하든 한국이 스스로 국가이익을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축적하는 과정이다.

에너지 전환과 기후 대응은 더 이상 환경 담론이 아니라 안보 전략이다. 기술과 표준의 주도권은 외교 협상의 실질적 지렛대다. 불평등 완화와 사회적 회복력은 외교 정책의 내구성을 좌우한다. 여기에 장기적 관점에서 축적된 외교·정보·전략 기획 역량이 결합될 때, 자강은 구호가 아니라 능력이 된다.

자강이란 결국 국방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얼마나 자기 이익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질문

지금의 국제질서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요동치고 있다. 미국의 '정상적 복귀'를 기다리며 흔들릴 수도 있고, 세력권 질서에 순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중견국들이 힘의 야만성을 낮추고, 다극 질서의 규칙을 설계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한국이 던져야 할 질문은 더 이상 "어느 편에 설 것인가"가 아니다. 오히려 "이 변화 속에서 한국의 국가이익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확보할 것인가"다.

일극의 붕괴는 위기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이 국제질서의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이동할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도 하다. 문제는 가치의 순수성이 아니라, 전략의 성숙도다. 지금이 바로 그 가능성을 현실의 정책과 외교 언어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