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폭탄과 박살

요즘 뉴스를 보면 지나치게 의미를 확대해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 불편하다. 오늘 아침 뉴스에도 ‘난방비 폭탄’, ‘전기요금 폭탄’ 등의 용어가 엄청나게 많이 실렸다. 아마도 유류세와 원유가격 등의 여파가 아닌가 하지만 ‘폭탄’이라는 말로 표현할 정도인가 싶기도 하다. 필자가 사는 곳이 세종시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건설교통부 앞을 지날 때면 항상 현수막이 걸려 있고, 거기에는 늘 “박살내자 000”과 같은 단어가 걸려 있다. 정말로 사람을 앞에 놓고 박살내자고 한다면 과연 몇 명이나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인의 화려한 말 잔치는 아닐지라도 지나치게 험악한 말로 세상을 유도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학교에서 현대시를 가르칠 때 ‘카프시인비평’이라는 시간이 있다. 프로레탈리아계급을 소재로 하여 삶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작품군인데, 처음에는 도시빈민이나 노동자 계급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작품이었다. 사회시적인 면에서 나름대로 문학성도 있고, 현실의 고단한 삶이나 궁핍한 생을 잘 담아냈다. 초기 카프 시인들은 좋은 작품을 많이 썼는데 날이 갈수록 표현이 험악해지고, 시를 혁명의 도구로 인식하여 각종 과격한 용어를 난사(?)하더니 결국 현대시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다산의 사회시에서 볼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카프시인들로 오면서 계급혁명의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초기에 순수했던 시인들의 세계인식이 후반으로 가면서 저급한 선전선동문구로 변질되었다.

언어는 사람의 마음의 거울이다.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어휘)를 통해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 욕만하는 사람과 진실한 대화를 이어가는 사람과는 질이 다르다. 어쩌다가 갈수록 언어가 거칠게 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난방비 폭탄이라는 말은 난방비가 지나치게 많이 나와서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쓴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폭탄이라는 용어를 자세히 안다면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을 것이다.

폭탄은 폭발탄의 준말이다. 폭발탄(爆發彈)은 군사용어로 “폭발성의 물질을 장치하여 던지거나 투하하거나 쏘도록 만들어진 병기. 다니어마이트나 티엔티(TNT) 따위를 이른다. 주로 사람을 살상하거나 시설물을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다.”(<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 인용)라고 정의한다. 다른 의미로 “일부 명사와 관형 구성을 이루어 많은 사람에게 갑자기 중대한 영향이나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폭탄성명’과 같이 관형형으로 쓰여 충격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언론에서는 후자의 경우로 사용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감이 없지 않다. ‘폭탄’을 관형형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세금’이 폭탄을 수식해 주는 것으로 알반적인 경우에서 벗어나서 쓰게 되었고, 일상화되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지만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는 폭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하리라 생각한다.

박살(撲殺)이라는 말도 무자비하기는 마찬가지다. 폭탄도 사람을 죽이는 것이지만 박살내는 것도 엄청나게 무서운 일이다. 한자로 撲殺이라고 쓰는데,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것을 말한다. 예전이 6·25전쟁 전후에나 나올 법한 용어다. 이 박살이라는 단어는 ‘박살나다’, ‘박살하다’, ‘박살되다’ 등으로 다양하게 쓰인다. 우선 ‘박살나다’는 “깨어져 산산이 부서지다”, ‘박살하다’는 “주먹이나 몽둥이 따위로 때려서 죽이다”, ‘박살되다’는 주먹이나 몽둥이 따위로 맞아서 죽다“의 뜻이다. 참고로 ‘박살(搏殺)’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것은 ”손으로 쳐서 죽이다“는 뜻이다. 어느 것을 쓰더라도 무자비하게 때려서 죽이는 것을 이른다. 예문을 보자.

태호가 메를 내리치자 돌이 박살났다.

SUV차량이 돌진하여 이발소 유리창이 박살나면서 한 사내가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와 같이 쓸 수 있다. 사물이 박살난 것이 별 것이 아니라 해도 사람이 박살났다고 하면 참으로 험악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을 박살내자고 하는 말이 어찌 그리 쉽게 나올 수 있는지 의문이다. 사람들의 심성이 갈수록 흉포(凶暴 : 언행이나 성질이 매우 거칠고 사나움)하게 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항상 변하는 것이 언어라고 하지만 가능하면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이나 고운 말을 썼으면 좋겠다. 언어는 마음의 거울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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