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인 목베기', '생체실험' 알린 작가 죽음, 일본 극우의 타살이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3] 너무나 잔인하고 엽기적인 난징 대학살  

이즈음 일제의 징용과 노동 착취에 희생됐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배상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란이 새삼 뜨겁다. 일본 쪽에선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이미 그 문제는 끝났다는 오랜 궤변을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지난날 저질렀던 전쟁범죄는 '과거사'란 이름으로 21세기 오늘에까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이다. 전쟁범죄에 대해 사죄는커녕 부정하는 일본 쪽의 고집스런 태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

일본이 부인하는 전쟁범죄 현장 가운데 하나가 중국 난징(南京)이다. 1937년 12월13일부터 6주 동안 난징에서 벌어졌던 대학살은 워낙 끔찍했기에 20세기 전쟁범죄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인구 100만 명이 살던 도시에서 무려 30만 명이란 희생자 규모도 규모려니와, 살해 방식도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칼로 잇달아 목을 베 죽이고, 생매장해 죽이고, 불태워 죽이고, 강간한 뒤 죽였다.

야만과 엽기라는 잣대로 보면, 일본군이 난징에서 저질렀던 잔혹행위는 인류 전쟁사에서 그 어느 전쟁보다도 뒤지지 않는다. 문제는 정치권을 비롯해 일본 각계에 뿌리내린 극우파들이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 완전 허구의 소설이다"라며 부인한다는 점이다(그래서 일각에선 이들을 '허구파' 또는 '부정파'라 부른다). 그들은 전쟁범죄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겐 협박이나 과격행동도 서슴지 않아왔다. 2004년 11월 9일 미 캘리포니아주의 외딴 고속도로 갓길에서 권총 자살한 아이리스 장(Iris Chang)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일본 극우파들의 협박에서 비롯됐다.

누가 아이리스 장을 죽였나

1997년 갓 서른 살의 중국계 미국인 아이리스 장(중국명은 장춘루)은 <난징의 강간>(The Rape of Nanking: The Forgotten Holocaust of World War II)으로 단박에 화제의 인물이 됐었다. 그때껏 영어로 된 난징 대학살과 관련된 대중적인 책은 드물었기에, 특히 전쟁과 같은 어두운 과거사에 딱히 관심이 없던 서구 사회의 젊은이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에서도 논란이 일자, 극우파들이 은밀하게 나섰다. 전화, 편지, 이메일 등 여러 수단으로 협박을 했다. 그녀의 차 앞 유리창에 쪽지를 두고 가기도 했다. '지켜보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였다. 그런 일들이 되풀이되면서, 남편과 두 살 난 아들을 둔 그녀는 가족의 안전을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누군가에게 미행당하거나 전화 도청을 당한다는 생각 때문에 지인들에게조차 그녀가 어디로 오고가는지 말하지 않았다.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던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약물로 우울증 치료를 받는 상황에 내몰렸다. 끝내는 새벽에 혼자 차를 몰고 집을 나와 고속도로 갓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형식은 자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자살이 아닌 타살에 가깝다.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극우파들이 그녀를 죽였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 the rape of nanking. 

주미 일본대사에게 '유감' 말고 '사과' 요구

<난징의 강간>이 입소문을 타면서 베스트셀러에 오르자, 미국의 언론들도 관심을 쏟게 됐다. PBS도 그 가운데 하나다. 상업광고나 오락성 프로를 하지 않는 공영방송의 성격을 지닌 PBS는 미국과 유럽에서 특히 지식층이 즐겨보는 채널이다. 책이 나온 1년 뒤인 1998년 12월 난징 학살 61주년을 맞이할 즈음 PBS는 저녁 뉴스 시간대에 아이리스 장과 사이토 쿠니히코 주미 일본대사 사이에 짧은 화상 토론 자리를 마련했다.

사이토는 일본의 직업외교관이 아닌 정치인 출신으로, 1995년부터 1999년까지 4년 동안 워싱턴에서 주미 대사를 지냈다. 그 무렵 뉴욕에서 늦깎이 공부를 하고 있던 필자는 집에서 PBS 뉴스를 듣다가 그 토론을 지켜보게 됐다. 지금도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기억 하나. 사이토는 난징에서의 일본군 만행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진지하게 사과를 하지 않는 교활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아이리스 장이 사이토를 향해 돌직구를 날렸다.

: 무엇보다 먼저 일본은 기본적인 사실들을 부인하지 말고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과(apology)와 함께 희생자들에게 배상(reparation)을 해야 하죠. 아울러 (난징 대학살에 관련한 서술을 왜곡 또는 축소하도록 만드는) 일본 교과서 검정을 멈춰야 합니다.

사이토 : 난징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폭력으로 말미암아 불행한 일(unfortunate incidents)이 벌어졌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 그런 말은 전적으로 정확하지 않아요. ‘사과’라는 단어를 들어보질 못했어요. (PBS 방송 진행자를 향해) 당신은 그런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요. (일본 대사가) ‘일본군이 한 짓에 대해 개인적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진심으로 말했다면, ‘사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하지만 ‘유감’(regret)이니 ‘회한’(remorse)이니 ‘불행하게 일어난’(unfortunately happen) 따위의 용어는 사과가 아니지요.

일어 번역본은 없는데 비판서가 베스트셀러

<난징의 강간>은 출간 뒤 단시일 안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동아시아 3국에서 가장 일찍 번역본을 낸 곳은 중국으로, 1998년 번역본이 나왔다. 한국에는 이 책의 초판 번역본이 1999년과 2006년에 나왔고, 2014년 제목이 조금 바뀌어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난징 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으로 나왔다. 지금은 미국 출판사와의 계약이 끝나 절판 상태로 일반 서점엔 책이 없다.

문제의 일본에선 번역본 출간을 둘러싸고 엄청 시끄러웠다. 극우파들은 반일위서(反日僞書)라며 출간을 막으려 들었다. 협박을 견디다 못한 출판사가 책의 일부 내용을 고치자고 옥신각신하다 계약이 파기됐다. 2007년에야 일어 번역본이 나왔다. 그 10년 사이에 <난징의 강간>을 비판하고 전쟁범죄의 진실을 왜곡하는 책들이 엉뚱하게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괴이한 현상이라고 봐야할까.

▲ 아이리스 장이 죽은 뒤 중국 난징대학살기념관에 세워진 조각상. ⓒx li

100인 목베기, 성폭행, 생체실험...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하고 45일 동안 난징 시민들은 그야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일본군은 포로로 잡은 중국군(당시 장제스 휘하의 국민당군)을 양쯔강변에 일렬로 세워놓고 기관총으로 집단 학살했다. 일본군 장교들은 군도로 누가 빨리 더 많은 포로의 목을 베느냐며 ‘100인 목 베기’ 시합을 벌이기도 했다. 길 가던 민간인들도 붙잡혀 생매장 당했다. 한마디로 온갖 잔혹한 전쟁범죄들이 한꺼번에 난징에서 저질러졌다.

아이리스 장이 고발한 일본군의 전쟁범죄상은 너무 끔찍해 글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하거나, △배를 가르고 사지를 절단하거나 △여러 명씩 묶은 채 구덩이에 넣은 다음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 죽이거나 △수백 명을 연못으로 끌고 가 알몸 상태로 살얼음이 언 연못에 빠뜨려 죽이거나 △허리까지 땅에 파묻고 사나운 개를 풀어 물려 죽도록 했다. 이렇듯 일본군의 만행은 잔인함의 극치를 이루었다. 성폭행도 심각했다.

재미로 목 베기 살인 시합을 벌였던 것처럼 일본군은 재미로 강간과 고문을 일삼았다. 난징의 거리 곳곳에서 다리를 벌린 채 죽어있는 여자들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일본군은 강간 후 여성의 성기에 병이나 나무막대를 꽂아놓기 일쑤였다. 남자들 역시 일본군의 비웃음 앞에서 온갖 치욕을 겪어야 했다. 죽은 여자의 시체를 범하라는 일본군의 명령을 거부한 남자는 그 자리에서 죽음을 당했다. 한 여성을 윤간한 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중국인 승려를 잡고 그 여성과 성관계를 가지라고 협박했다. 승려가 거절하자 일본군은 그의 성기를 자른 뒤 살해했다. (아이리스 장,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미다스북스, 153-154쪽)

위에 옮긴 글처럼, 장의 책에서 평정심을 유지한 채로 읽기가 힘든 곳은 갖가지 성범죄 실태를 고발하는 대목이다. 저자 자신도 "난징의 강간은 역사상 가장 엄청난 집단 강간으로 기록될 것"이라 말한다. 적어도 2만 명에서 많게는 8만 명의 난징 여성들이 성범죄에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1990년대 전반기 보스니아 내전 당시에도 심각한 성범죄가 벌어졌고, 2만 명쯤의 여성들이 피해를 입었다. 보스니아보다 60년 앞서 난징 여성들은 죽음보다 더한 시련을 겪은 셈이다.

강간당한 여성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양쯔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들은 아기들이 태어나자 바로 죽였다. 이들 두고 장은 책에서 “수치심과 자괴감에 시달린 중국 여성들은 사랑할 수 없는 자식을 기르느니 차라리 영아 살해를 선택했다”라고 풀이했다. 중국은 12월 13일을 ‘난징 대학살 국가 추모일’로 정하고 해마다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한 지도층이 참석하는 대규모 추모 행사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일본군의 또 다른 잔혹상은 난징에서 중국인들을 생체실험의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양쯔강 가까운 곳에 있는 병원을 실험실로 바꿔 유행성 질환을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1644부대를 운용했다. 이 부대원들은 중국인 죄수나 포로에게 독극물, 세균, 독가스를 주입하면서 신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살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중국인들이 살해됐고, 시신들은 부대 소각장에서 처리됐다. 1644부대는 생체실험을 통해 세균전을 준비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731부대(하얼빈 소재)와 판박이다.

▲ 일본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매장 당하는 난징 시민들. 

난징재판과 도쿄재판

일본이 패한 뒤 난징 학살에 대한 전범재판이 벌어졌다. 범죄 현장인 난징과 일본 심장부인 도쿄에서였다. 난징 재판은 1946년 8월부터 1947년 12월까지 이어졌다. 피고는 몇 명 안됐지만, 1000명이 넘는 중국인 피해자들이 증인으로 나와 460여건의 살인, 강간, 방화, 약탈에 대해 증언했다. 칼로 목베기 시합을 벌였던 일본군 장교 2명이 피고석에 섰고 총살형을 선고받았다. 두 피고는 구차한 변명과 거짓말을 늘어놓아, 법정을 메운 방청객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난징에서의 전쟁범죄로 처벌 받은 일본군 고위장성은 둘뿐이다. 하나는 일본군 6사단장 타니 히사오 중장으로, 일본에서 강제 송환돼 난징 법정으로 불려나와 총살형을 받았다. 그의 처형 모습을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난징 남쪽의 형장으로 몰려갔다. 다른 하나는 일본 중지나방면군 사령관 겸 상해파견군 사령관을 지냈던 마쓰이 이와네 대장이다. 그는 도쿄에서 열렸던 극동국제군사재판 뒤 교수형으로 죽었다.

난징 전쟁범죄로 처벌 받은 고위 책임자가 일본군 장성 2명뿐이라고? 유감스럽지만 사실이다. <난징의 강간>의 저자 아이리스 장도 “난징 강간의 주요 범죄자들과 그 살육을 막기 위해 권한을 행사했어야 할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법정에 서지 않았다”고 탄식한다.(253쪽)

히로히토는 학살 책임 없다?

법정에 불려가야 마땅할 전범자 가운데 하나가 일본 국왕 히로히토의 삼촌뻘인 아사카 야스히토다. 그는 마쓰이 이와네가 폐결핵으로 몸져눕자, '사령관 대리' 직함으로 지휘권을 물려받고 난징 점령을 지휘했다. 그렇기에 당연히 전쟁범죄의 책임이 크다. 하지만 도쿄재판에 불려가지 않았다. 패전국 일본 통치의 전권을 휘둘렀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일본 지배층에게 선물해준 '히로히토를 비롯한 황족에 대한 면책권' 덕분이었다.

일본 국왕 히로히토는 난징 학살에 책임이 없을까. 아이리스 장도 <난징의 강간> 끝부분에 그런 의혹을 던진다. 난징 대학살뿐만 아니라, 일본이 한반도와 만주, 중국 본토, 진주만과 동남아에서 저질렀던 침략 전쟁에 책임을 지고 도쿄 전범재판의 피고석에 섰어야 마땅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히로히토(1901년 생)는 1989년 사망 때까지 '천황'으로서 부귀영화를 누렸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다음 주 글에서 좀 더 살펴본다).

오히려 히로히토에게 전쟁의 책임이 있다고 거론했던 소수의 일본인들은 극우파들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아이리스 장이 협박을 받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를테면, 나가사키 시장 모토시마 히토시는 히로히토 사망 2주 뒤 바로 등 뒤에서 쏜 총알로 폐를 관통 당하는 중상을 입었다. 그 총격 사건은 "난징 학살 따윈 없었다"는 일본 극우파의 폭력성을 잘 보여준다.

▲ 난징 법정에서 총살형이 선고된 타니 히사오 일본 육군중장. 

“나는 전범자였다” 참회의 목소리들

난징 학살 자체가 없었다고 우기는 극우파들과는 달리, 자신의 전쟁범죄를 고백하고 사죄의 뜻을 밝힌 일본인들이 없지는 않다. 1954년 랴오닝 푸순 전범관리소에 수용됐던 전 일본군 소령 오타 하사오는 난징에서 중국인 포로와 민간인들을 학살한 뒤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밝히는 44쪽 짜리 고백서를 써냈다.

이에 따르면, 1937년 12월15일부터 사흘 동안 양쯔강에 내다버린 시신은 오타의 부대가 1만9000구, 다른 부대가 8만 1000구, 또 다른 부대가 5만 구 등 모두 15만 구였다고 한다. (아이리스 장, 161쪽. 오타가 수용됐던 푸순전범관리소는 점진적인 사상 개조를 통해 일본인 전범 가운데 다수를 반전 평화주의자로 바꾸었다. 푸순에 대해선 김효순,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서해문집 참조하기 바람.)

난징 학살 당시 일본군 16사단 20연대 소속 상등병으로 있었던 아즈마 시로는 1987년 <아즈마 시로 일기: 소집병이 체험한 난징 대학살>이란 체험기를 통해 그날의 끔찍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이어 그는 중국 난징에서 열린 대학살 50주년 추도식에 가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중국인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그의 체험기 내용을 둘러싸고 옛 전우로부터 명예 훼손으로 고소를 당했고, 일본 극우파의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난징과는 직접 관련은 없지만, 만주 731부대 소속 소년대원(미성년 군속으로 업무 보조역)이었던 시즈오카 요시오도 양심 고백을 한 인물이다. 731부대에서 죽은 쥐와 벼룩을 이용해 세균무기로 쓰일 세균 배양 작업을 거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전쟁이 끝나고 푸순전범관리소에 갇혔다가 1956년 풀려나 귀국했다. 그 뒤로 중국귀환자연락회(중귀련) 모임 등을 통해 “일본이 중국에서 저질렀던 죄행은 피해자의 심정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깊고 무겁다”며 사죄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김효순, 410-412쪽 참조)

앞서 살펴본 아즈마, 시즈오카 두 사람은 1998년 일본 평화운동가들과 손을 잡고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지난날 일본의 전쟁범죄를 증언하려 했다. 하지만 ‘전쟁범죄자’란 이유로 시카고 공항에서 미국 입국이 거부당했다. 미 법무부 특별수사국의 입국 금지 명단에 오른 이유는 그들 자신이 전쟁범죄를 고백해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그 뒤 열린 뉴욕 행사장에는 아이리스 장이 나와 인사말을 했다.)

이를 두고 당시 <뉴욕 타임스>는 “이들의 전쟁범죄 고백이 일본에서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는데도, 미국에서 입국 감시자 명단에 오른 것은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일본에서 극우파들로부터 살해위협을 받은 사람들이 입국을 거부당하다니...누구를 위한 입국 금지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일본 극우파들의 영향력은 지금도 미국이나 한국에서 알게 모르게 작동하고 있다.

끝으로 다시 짚어보는 물음 두 가지. 첫째, 일본 국왕 히로히토는 어떻게 난징 대학살을 비롯한 일본의 전쟁범죄 책임을 지지 않고 ‘천황’ 자리를 지킬 수 있었는가. 둘째, 그가 전쟁범죄의 책임을 지지 않았기에 전후 일본에 생겨난 심각한 문제점은 무엇인가. 다음 주 글에서 이런 물음에 대한 나름의 답을 독자들과 함께 찾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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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명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는 지난 20여 년간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 세계 20여 개국의 분쟁 현장을 취재해 왔습니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민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22년까지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저서로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오늘의 세계 분쟁> <군대 없는 나라, 전쟁 없는 세상> <시리아전쟁>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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