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부터 경찰까지…프랑스 연금개혁 반대 100만 총파업

정년 62→64살 올려 연금 수령 연령 늦추는 것 골자…마크롱 "개혁 반드시 해야" 의지 피력

프랑스 전역에서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 100만 명 이상이 거리로 뛰쳐 나왔고 교통·전기·교육·경찰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파업이 벌어졌다. 법정 정년을 높여 연금 수령 연령을 늦추는 것이 골자인 개혁안에 대해 노동조합은 입직 연령이 이른 저숙련·저소득 노동자 등에 차별적 영향을 미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개혁 의지를 다시금 피력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 <AP>·<로이터> 통신, 프랑스24 방송 등을 종합하면 19일(현지시각) 파리를 포함해 프랑스 전역 200곳 이상의 도시에서 정부의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 내무부 추산 112만 명, 노조 추산 200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파리에서만 내무부 추산 8만 명, 노조 추산 40만 명이 거리로 뛰쳐 나왔다. 당국은 리옹에서도 최소 4만 명, 툴루즈에서 3만 명, 마르세유에서 2만6000명, 몽펠리에에서 1만5000명 등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추산했다. 이는 마크롱 대통령 취임 1기 시절인 2019년 12월5일 연금 개혁 반대 시위 규모보다 더 큰 규모다. 당시 경찰은 시위 참가자 수를 80만6000명으로, 노조는 150만 명으로 추산했다.

주요 노조들이 대거 파업에 동참하며 이날 프랑스의 거의 전 부문이 일시 중단됐다. 파리 지하철 노선 중 1개는 완전히 운행을 중단했고 나머지 노선도 매우 혼란스럽게 운영됐다. 국영 프랑스 철도공사(SNCF) 파업 참여율은 46.3%에 달했다. 국영 프랑스 전력공사(EDF)도 파업에 참여해 이날 전력 공급이 7000메가와트(㎿) 줄었다.

교사들도 파업에 들어가 교육부는 초등교사 42%, 중등교사 35%가 파업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했다. 교사 노조는 파업 참여율이 65~70%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공영 라디오 방송들도 파업에 들어가 라디오에선 뉴스 대신 하루 종일 음악만 흘러 나왔고 파업에 동참한 일부 텔레비전 방송은 재방송을 계속해서 내보냈다. <AP> 통신은 경찰 노조까지 시위에 참여했다고 덧붙였다.

필립 마르티네즈 노동총연맹(CGT) 사무총장은 현지 언론에 다양한 분야 노동자들의 드문 연대는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연금개혁이 "모두의 불만을 하나로 묶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날 대규모 시위 참여에 힘입어 노조 쪽은 이달 31일 추가 총파업을 예고했다.

시위는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됐지만 파리 바스티유 지역 부근에서 일부 시위대가 경찰에 병·캔·연막탄을 던지며 경찰이 최루탄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다른 지역에선 큰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날 시위에서 30명 가량이 체포됐다.

대규모 시위에도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 개혁을 밀어 붙이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1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의 정상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 개혁을 반드시 해야 한다"라며 "대화를 통해 해 나가겠지만 결단력과 책임감도 갖고 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론조사서 68%가 개혁 반대…노조 "입직 연령 이른 저숙련 노동자 차별적 피해"

이번 파업은 마크롱 대통령이 2017년 1기 취임 당시부터 강조했던 연금개혁을 최근 다시 추진하면서 촉발됐다. 2019년 대규모 파업에 부딪히며 한 발 뒤로 물러섰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재집권에 성공한 뒤 다시금 개혁을 추진했고 지난 10일 엘리자베스 보른 프랑스 총리는 법정 정년을 현행 62살에서 올해 9월부터 점진적으로 올려 2030년엔 64살로 높이는 안을 내놨다. 정부는 "2030년까지 연금 시스템 균형을 되찾기 위해"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으며 현행 시스템이 유지될 경우 "10년 안에 적자 규모가 1500억유로(약 200조73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랑스 법정 정년은 독일(67살), 이탈리아(67살), 스페인(65살), 영국(66살) 등 이웃 유럽 국가들에 비해 낮은 편이다. 개혁안은 23일 각료 회의에 상정되고 2~3월에 의회에서 논의 뒤 통과되면 올해 9월1일 발효될 예정이다.

정부는 마크롱 대통령의 당초 공약인 65살보다 1살 낮은 64살 정년을 제안했지만 국민들의 마음을 사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6일 공개된 프랑스여론연구소(IFOP)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 68%가 연금 개혁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노조 쪽은 정년 연장이 이뤄질 경우 상대적으로 입직 연령이 이른 저숙련·저임금 노동자들이 차별적으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고 60살 이상 실업자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체적 강함을 요구 받거나 노동 과정에서 신체적 마모가 큰 직종의 경우 현실적으로 더 오래 일할 수 없다는 점도 들었다. 19일 파리 시위에 참여한 한 24살 교도관은 "교도관은 젊고 폭력적인 수감자들과 대치해야 하는 직업"이라며 "60살 이후에 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프랑스24에 말했다.

노조 쪽은 연금 적자 누적을 메우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비용을 지불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아니라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을 취소하고 최고 소득자 세금 인상, 고용주 및 부유한 연급 수급자들의 기여분을 늘리는 등 다른 방안을 통해 부족분을 충당할 것을 제안했다. 노조들은 공동 성명에서 "은퇴 연령을 올리는 것이 고용주와 부자들에게만 이익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며 개혁안을 비난했다.

정부는 18~20살 사이 이른 나이에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경우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면 62살 정년을 인정하고 16~18살 입직의 경우 58살, 16살 이전 일을 시작했을 경우 58살 정년을 인정하는 등 44년 이상 일하지 않도록 해 저숙련·저소득 노동자층이 피해를 입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최저 연금액 인상안도 밝히며 이번 개혁이 오히려 "정의"에 부합하고 "가장 취약한 계층"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의회 통과 위해 공화당 협조도 필요…<르몽드>, 여론 못 읽고 '자화자찬' 정부 꼬집기도

19일 <르몽드>는 정부가 이번 연금개혁 추진 과정에서 국민 정서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자화자찬' 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꼬집었다. 매체는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르네상스당 소식통이 "개혁안이 꽤 잘 만들어졌다. 이제 언론에서 널리 다루고 활동가들이 교육을 받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며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고 11일 정부 대변인이 19일 예고된 총파업에 "많은 이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 않다"고 언급한 것을 들었다. 매체는 연금 시스템을 살려야 한다는 메시지보다 정년 연장 그 자체가 화두가 되며 정부가 메시지 전달에 실패해 이미 정치적 싸움에서 진 것이나 다름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개혁안 통과를 위해 마크롱 대통령은 여론을 다독여야 할 뿐 아니라 의회에서 보수 정당의 협조도 이끌어 내야 한다. 현재 여당 르네상스당은 의회에서 과반을 점하지 못한 상태다. 연금 개혁을 주장해 온 보수 공화당(LR)의 협조가 기대되지만 반대 여론이 높게 지속된다면 공화당이 이를 고려할 수 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더구나 중도를 표방하는 마크롱 대통령의 등장으로 공화당은 전통적인 중도우파 지지층을 상당 부분 잃기도 했다. 18일 <르몽드>는 칼럼에서 기대했던 온건 성향의 프랑스 최대 노조 노동민주동맹(CFDT)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정치적 영향력이 큰 이들보다 전문가 그룹으로 정부를 구성한 상황에서 연금 개혁을 밀어 붙이는 것이 "마크롱 대통령이 무기 없이 전장에 나선 셈"이라고 비유했다.

다만 영국 BBC 방송은 1982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이 은퇴 연령을 60살로 낮춘 뒤 이를 되돌리려는 수 많은 시도가 수 많은 반대에 부딪혔지만 2010년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정년을 62살로 연장하는 데 성공한 것을 들며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개혁안이 관철돼 왔다고 지적했다.

▲19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법정 정년을 62살에서 64살로 높여 연금 수령을 늦추는 것을 골자로 한 정부의 연금개혁안에 반대하는 총파업이 벌어져 대규모 시위대가 운집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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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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