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사각지대' 갇힌 상인들…"우릴 가해자로 바꾸려 해요"

[현장] '광주 붕괴참사 1년' 현장상인들 절규 "정몽규, 사과 한 번 없어"

"잃었던 일상을 찾고 싶습니다. 제발, 예전처럼 평범하게 장사만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10일 오후, 광주 서구 화정동 금호하이빌 도매상가 앞에 수십 명 상인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상인들이 든 피켓 속엔 비산먼지로 하얗게 뒤덮인 상가 주변 차량 사진들이 담겨있었다. 이날 상인들은 지난해 5월, HDC현대산업개발 측의 화정아이파크 2단지 철거 안정화 작업이 시작된 후 "콘크리트가 눈처럼 날리기 시작했다"고 호소했다. 지난해 1월 11일, 현산이 시공 중이던 39층 아파트 상층부가 갑작스레 붕괴한 지 꼭 1년 만이다.

앞서 지난해 1월 11일엔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하는 광주 '화정 아이파크' 신축 현장에서 201동 건물 23~38층, 총 16개 층 구간의 외벽이 무너지며 6명의 노동자가 매몰돼 사망했다. 똑같이 현산의 책임 하에 일어난 2020년 학동 철거현장 참사 반년 만이었다. 연이은 중대재해에 정치권과 노동계,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목소리를 냈지만 이 과정에서 소외된 이들이 있었다. 붕괴 현장에서 불과 몇 백 미터 떨어진 도매상가 속 상인들이다.

▲10일 오후 광주 서구 화정동 금호하이빌 상가 입구 앞에 모인 현장 상인들이 비산먼지가 쌓인 차량 사진 등을 들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프레시안(한예섭)

"목숨 걸고 탈출 했는데 … 정몽규 HDC 회장, 어떻게 사과 한 번 없나"

붕괴 당시, 금호하이빌 상가에 입주해 있던 현장상인들에게 참사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붕괴가 발생한 당일 오후 3시 34분께 상가 지하 1층 점포에서 근무 중이었던 상인 김남필(69) 씨는 지난해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상인들에게도 당시 현장은 지옥 같은 공포의 순간들이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30층 이상 높이에서 떨어진 건물 잔해 일부가 상가를 그대로 덮쳤기 때문이다. 당시 지하상가에 머물고 있던 상인들은 전력이 차단돼 어두컴컴해진 지하 공간에서 떨어지는 파편들을 맞으며 "목숨을 걸고 탈출"해야 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 이날, 김 씨는 화정아이파크 피해대책위원회의 일원으로 자리에 섰다. 이날 그는 "전쟁을 방불케 했던 그날, 우리는 대피해 살아남았지만 붕괴 피해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붕괴 이후 100일 동안 상가가 '완전 폐쇄'되는 바람에 생계는 막막해졌고, 일을 다시 시작할 때가 되자 "안정화 작업이란 이름으로 폐콘크리트 가루가 상가 주변으로 눈처럼 내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화정아이파크 피해대책위원회 소속 상인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프레시안(한예섭)

이날 모인 상인들은 입을 모아 "(우리는) 공사 과정에서 다량의 비산먼지를 유발하는 DWS(다이아몬드 와이어 쏘우) 방식 대신 코어드릴 방식의 작업을 요구했지만, 현대산업개발과 서구청 측이 이를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온 안정화 작업이 완료된 지금, 광주 서구청은 DWS 방식으로 본격적인 철거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 10일 밝히며 상인들과 마찰을 빚었다.

구청은 여과집중기를 활용해 먼지를 흡입해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상인들은 "지금도 온 동네에 가루가 날리는데 대체 뭘 어떻게 최소화하겠다는 것인가" 되묻는다. 

특히 김 씨는 "지금까지 현산 측은 상인들에게 어떤 사과의 말도 하지 않았다"라며 "붕괴 1년이 다 되도록 (붕괴 수습 등으로 인한)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몽규 회장은 죄 없는 상인들에게 직접 사과하라"고 현산의 책임을 강조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김이강 서구청장, 강기정 광주광역시장 등 지역 정치인들에게도 "지금껏 한 번도 우리를 찾아온 적이 없다"라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울분을 토로했다.

▲안정화 작업 이후 가려져 있는 화정아이파크 201동 붕괴 현장 ⓒ프레시안(한예섭)
▲지난해 1월 붕괴 참사 당시 같은 각도에서 촬영한 화정아이파크 201동 붕괴현장 ⓒ프레시안(한예섭)

상인들이 갇힌 참사 '사각지대'? … "피해자 대 피해자 구도로 상인들 내팽개쳐져"

상인들은 "참사 희생자의 유족들은 유족대로,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은 그들대로 큰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면서도 "그런데 또 다른 피해자인 상인들은 일상회복을 위한 협의 과정에서 배제됐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오전, 붕괴 1주기를 앞둔 기자회견에서 "입주 예정자와 주변 상가 보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고 말한 김이강 서구청장의 입장과는 반대되는 말이다.

피해대책위 홍석선 위원장은 "(보상을 위한) 돈 문제가 아니다. 돈을 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고 공사를 방해하려는 것도 아니다"라며 "다만 상가에 피해를 주지 말고 안전하게 준법공사를 하시라 부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가장 큰 쟁점은 DWS 방식의 철거공사 승인 문제인 셈이다. 홍 위원장은 "콘크리트 가루 안 날리는 곳에서 장사하던 일상을 되찾고 싶다"라며 "제발 살아있는 사람의 아픔과 생존권도 이제는 보듬어 달라"고 호소했다.

상인들은 특히 참사 초기 "피해자들끼리 서로 미안해하는 상황이 됐다"며 '붕괴 피해자들 간의 연대'를 강조했던 상인들이, 이제는 다른 피해자들인 유가족 및 입주예정자들과 대립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11일 예정된 붕괴 참사 1주기에 따라 유가족과 구청 측이 '현장 정리'를 부탁하면서다.

현장에서 <프레시안>과 인터뷰를 진행한 한 상인 관계자는 "현산 측이 이른바 '현장정리'를 위한 작업을 시작하면서 비산먼지가 더욱 증가"했고 "상인들이 붙여놓은 현수막에도 철거 시도가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10일 오후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공사 현장 인근에 걸린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참사 1주기' 현수막 ⓒ프레시안(한예섭)
▲10일 오후 금호하이빌 상가 입구 벽면에 붙어있는 대책위 측 현수막 ⓒ프레시안(한예섭)

홍 위원장은 "유가족들은 추모제를 준비한다고 현장정리를 부탁하고 있다. 또 예비입주자들은 하루빨리 공사를 진행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각자의 입장은 이해한다"라면서도 "(그런데) 이런 상황이 참사 현장에 남아서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피해 상인들을 '가해자'로 바꾸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상인들이 보상을 더 받기 위해 떼를 쓰면서, 유가족 추모제나 빠른 공사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현산 측이 공사 현장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던 상인들을 영업방해죄로 경찰에 신고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그러면서 그는 "정작 전 국민이 다 아는 가해자 현산과 정몽규 회장은 사과 한 번 안 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붕괴 이후 현산 측은 지난 5월 4일 화정아이파크 2단지를 전면 철거 후 재시공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시공 완료 기한이 오는 2027년 12월로 예정되면서, 공사 방식에 따라 주변 환경이 영향 받을 수 있는 현장 상인들의 불만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홍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이어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결국 (재시공 과정에서) 철저한 안전이 수반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시간이나 돈이 아니라, 주변 피해를 고려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완벽한 대책을 마련한 후 공사가 시작되길 원한다"라고 상인 측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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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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