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겨냥한 '사이다 발언'으론 한반도 평화 지킬 수 없다

[현안진단] 자력갱생, 강경노선의 노동당 전원회의와 시계 제로의 한반도 평화

비전 없는 노동당 전원회의

2022년 12월 26일부터 31일까지 김정은 정권 역대 최장기간 개최된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결과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월 1일자 전원회의를 보도한 <로동신문>은 2022년 북한이 영웅적인 투쟁을 전개하여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룩했다고 평가했지만, "전대미문의 온갖 도전과 위협들이 가득", "국가존망을 판가리하는 위험천만하고 급박한 고비들" 등 당면했던 난관들을 가감 없이 표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전원회의 보고를 통해 국방력 강화로 미국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고 강조했지만, 경제부문의 경우 과거와 달리 부문별 평가도 눈에 띄지 않았으며 평양 화성지구 살림집, 연포지구 온실농장, 그리고 농촌 본보기 살림집 건설 정도를 나열하는데 그쳤다.

전원회의에는 2022년도 주요 당 및 국가정책들의 집행정형 총화와 2023년도 사업계획, 조직문제, 2022년도 국가예산 집행정형과 2023년도 국가예산안, 혁명학원들에 대한 당적 지도 강화, 새시대 당 건설의 5대 노선 등 5개 의정이 상정됐다.

김 위원장의 보고 내용을 토대로 할 경우 2023년 북한은 핵능력 고도화를 중심으로 하는 국방력 강화, 기존 자력갱생 노선에 기반을 둔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관철, 그리고 체제결속 등 크게 세 분야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노선이다. 한 마디로 이번 전원회의는 아무런 성과도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무특징의 특징을 기록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탄두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사진은 전원회의 보고하고 있는 김 위원장.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국방력 강화에만 매달리는 북한

북한의 국방력 강화 의도는 대남, 대미관계 강경노선과 직결되어 있다. 김 위원장은 국제관계를 신냉전과 다극화 구도로 보고 남한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였으며, '강대강, 정면승부'를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보고를 통해 남북관계의 현 상황과 외부적 도전들에 대한 분석에 기초해 국방력 강화를 위한 중대한 정책적 결단을 천명했다.

국방력 강화의 핵심은 핵능력 고도화이며, 이를 위해 김 위원장은 신속한 핵반격능력을 가진 또 다른 대륙간탄도미사일체계 개발, 전술핵무기 다량 생산, 핵탄두 보유량의 기하급수적 증대를 기본 중심방향으로 하는 2023년도 핵무력 및 국방발전 전략을 밝혔다. 또한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최단 기간 내 첫 군사위성 발사를 예고했다.

북한 핵능력 고도화의 주요 목표가 남한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북한은 2022년 9월 핵교리의 법제화와 9월 하순과 10월 상순 사이 실시된 인민군 전술핵 운용부대의 훈련을 통해 남한이 핵공격 대상이라는 점을 명백히 한 바 있다.

2022년 12월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에 증정된 600mm 초대형 방사포 30문에 대한 답례 연설에서 김 위원장은 남한 전역이 사정권이며, 전술핵 탑재까지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북한은 12월 31일 초대형 방사포 3발을 발사하고 이를 성능검열을 위한 3발의 검수사격이라고 보도해 실전배치를 암시했다. 북한은 1월 1일에도 초대형 방사포 1발을 동해로 발사했다.

그러나 북한의 초대형 방사포의 사거리는 400km 정도로 군사분계선 인접지역에서 발사해도 남한 전역을 사정권으로 하기 힘들다. 또한 북한의 초대형 방사포의 경우 미사일에 비해 구경이 작고 동체가 길다는 점에서 일반탄두에 비해 무거운 핵탄두의 탑재 여부는 불확실하다.

북한은 과거 4연장에 이어 이번에 6연장의 초대형 방사포를 공개했지만 연발 발사는 최대 3발이었으며, 발사 간격도 불규칙했다. 다연장로켓인 방사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신속한 연발사격임에도 북한의 초대형 방사포는 이를 완전히 입증한 바 없다.

핵투발 수단으로서의 능력이 미지수인 초대형 방사포에 대해 김 위원장은 "세상에 없는 주체무기"로 치켜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대남, 대미압박을 고조시키기 위한 북한의 초조함이 배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2022년의 마지막 날과 2023년의 첫날에 각각 초대형방사포 3발과 1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군수경제 총괄기관인 제2경제위원회는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당 중앙에 증정하는 초대형방사포의 성능검열을 위한 검수사격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자력갱생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허실

김 위원장은 보고에서 2023년을 국가경제 발전, 생산장성과 정비보강전략 수행, 인민생활 개선 달성을 경제사업의 중심과업으로 내세웠지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김 위원장은 보고를 통해 살림집 건설을 인민들이 제일 반기는 사업이라며, 화성지구 2단계 1만 세대 건설과 함께 새로운 3,700세대 거리를 하나 더 형성할 것과 농촌건설에 더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반면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구체적인 경제개혁과 발전을 위한 노선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대북제재와 코로나19 후유증 극복을 위한 대안의 제시 없이 주민 불만 무마용의 과시적인 건설사업에 주력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보고를 통해 자립의 사상에 반하는 '낡은 사상경향'이 고질병, 토착병처럼 잠복해있다고 질책했다. 또한 김 위원장은 다시 "1960년대, 70년대의 투쟁정신과 기치"를 높이 들 것을 호소했다.

집권 10년을 넘긴 김 위원장 체제는 세계 경제에서 고립되어 이미 실패한 자력갱생 노선을 반복하겠다는 것이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과거 '천리마 운동'과 '새벽별 보기 운동' 시기로 되돌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2022년 경제위기 속에서 북한은 경제와 무역, 그리고 식량유통에 대한 국가의 통제권을 강화하는 퇴행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기 북한 경제는 최소 -10% 이상 역성장 했으며,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북한의 2021년 경제성장률을 –2.9%로 추정했다.

식량생산도 김정은 집권기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2021년 4월 세포비서대회에서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결심했다고 선언했지만 장마당에서 각자도생해 온 북한의 인민들이 과거로의 회귀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당조직을 중심으로 한 체제결속 도모

예년과 달리 이번 전원회의 의정에는 혁명학원들에 대한 당적 지도 강화가 포함되었으며, 이는 지난해 김 위원장이 두 차례나 만경대 혁명학원을 방문하고, 노동당 중앙간부학교를 찾아 유일적 영도체계의 확립과 사상투쟁을 요구한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원회의는 '새시대 당건설의 5대 노선에 대하여'를 의정으로 채택하고,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독창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몇 달 안 되는 기간에 당일꾼과 당원들의 전적인 지지를 획득했다고 강조했다. 노동당에 대한 김정은식 새로운 노선이 제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 보고에서 노동당 조직들의 전투력을 강화하고 당사업과 간부사업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김 위원장은 도당위원회와 도당책임비서들의 사업에서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며, 지도 간부들이 헌신적으로 복무할 것을 주문했다. 혁명학원과 노동당 간부들에 대한 투쟁력 강조는 당면한 위기 앞에서 김정은 정권 유지의 핵심인 노동당을 다잡고 결속시키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사회주의 애국운동과 혁명적인 대중운동을 활발히 벌일 것과 사회주의 법률제도의 개선 및 준법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 개최 기간 중인 12월 27일 집권 이후 처음으로 헌법절 행사에 참석했다.

북한은 이미 2021년 12월 최고 사형까지 가능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해 강력한 외부사조 유입 방지책을 내놓은 바 있다. 경제난과 식량난 악화 속에서 주민들의 불만은 누적되고 있으며, 외부사조의 유입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법체계를 강화해 체제이반을 방지하고 내부결속을 도모하려는 북한 당국의 대응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 대응

2022년 12월 26일 북한의 무인기 침투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군에 확전 각오 태세로 무인기를 북한으로 침투시키라고 지시했으며, 12월 29일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준비를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2023년 1월 1일에는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찾아 일전을 불사한다는 결기로 북한의 도발에 대해 확실하게 응징할 것을 주문했다. 1월 1일 국방부도 북한이 핵사용을 기도한다면 김정은 정권은 종말에 처하게 될 것임을 엄중 경고한다고 밝혔다. 연말연시 연일 전시를 방불케 하는 대한민국 최고지도자와 국방부의 이례적인 강경 발언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 첫날인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합동참모본부과 육·해·공·해병대 등 군 수뇌부로부터 대비태세를 보고받고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9월 북한의 공격적 핵교리 법제화 이후 남북한의 강대강 대치국면은 심화되고 있다. 한·미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그동안 중단했던 연합훈련을 재개하고 있으며, 한·미·일 군사협력도 가속화하고 있다. 북한은 과거와 달리 한·미의 모든 군사동향에 대해 일일이 맞대응해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북한은 정전체제 수립 이후 최초로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북한 측 주장으로 500여 대의 군용기를 출격시키는 초유의 훈련도 실시한 바 있다. 북한은 울산 앞바다에 2발의 전략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고도 주장했다. 지난해 말 북한 무인기의 수도권 북부 상공 침투는 전 국민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북한의 도발은 강도를 더해가고 있으며,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을 강조하며, 강경일변도 대응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의 강대강 대치 전략을 전적으로 지지할지는 미지수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미국이 확전을 우려해 한국군의 보복 대응을 만류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전폭 지원하면서도 확전과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 방지를 위해 신중하게 행동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일이다.

북한 무인기에 대해 사격 한번 제대로 하기 힘들 만큼 수도권은 인구밀집지역이며, 군사분계선에서의 거리는 수십km에 불과하다. 남북한은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세계에서 가장 조밀하고 중무장한 병력을 밀집시켜놓고 있다. 이 같은 위험한 상황에서 대남 핵위협을 노골화하는 북한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전쟁과 확전불사의 결연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진정한 안보의 길

우크라이나 사태는 어떠한 경우에도 물리적 충돌과 전쟁은 막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오판은 국제적인 고립의 자초와 아울러 러시아의 미래에 길고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미국과 유럽을 필두로 세계 많은 국가들의 지원으로 우크라이나는 선전을 이어가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전 국토는 황폐화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희생은 늘어만 가고 있다. 같은 동슬라브 민족 간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이다.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사실상 무제한의 지원을 제공하고 있지만, 그 어떤 피도 흘리지 않고 있다.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이다.

남북한의 강대강 대치국면에서는 사소한 행동도 오해를 부를 수 있으며, 이는 우발적 충돌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남북은 이미 서해 NLL에서 수차례 해전과 연평도 포격전을 벌인 바 있다는 점을 자각할 때다.

대통령실 발표대로 남북, 북·미 간에는 그 어떤 핫라인도 물밑 접촉라인도 가동되지 않고 있다.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대남 강경노선을 천명했으며, 윤석열 정부도 강경노선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가 시계 제로의 문턱을 넘고 있다.

현재 여러 가지 요인으로 긴장 고조가 필요한 쪽은 북한이다. 우리는 평화가 절실하며 평화의 길을 사수해야 한다. 긴장 고조에 맞장구를 쳐주어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어 갈 이유가 없다.

우리의 좌표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북한으로 하여금 긴장 고조는 경제 파탄의 지름길이며 민생 도탄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핵무장을 접고 평화의 길로 나서 동행할 때 북한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진정한 안보는 감성적인 사이다 발언이 아니며,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 북한의 선을 넘는 군사적 위협에는 원칙적이고 확고한 안보적 대비를 철저히 할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반도 긴장관리와 군사적 신뢰를 위한 대화의 장은 마련되어야 한다. 당장 북한과 대화에 나서야 하며, 미국은 물론 중국과도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전방위적 노력을 경주할 일이다.

한반도 긴장 국면의 전환을 위해서는 공개, 비공개 차원의 모든 채널을 가동해야 하며, 파격적인 행보도 마다할 일이 아니다. 2023년 한반도에 안보위기가 덮쳐오는 속에서는 세계경제와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의 파고를 넘을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진정한 안보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성찰적 판단을 내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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