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법 개정, 노조 아닌 모든 노동자에게도 이롭다

[인권의 바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3권은 노조법 3조 개정만으로는 불가능

영하 10도, 체감기온 영하 19도였다는 12월 14일 아침 대흥동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앞에 갔다. 얼마 전 경총이 낸 "설문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8명이 노란봉투법에 반대한다"는 보도자료 때문이다. 경총의 해당 자료는 노조법 2조·3조 개정 내용을 왜곡할 뿐 아니라, 조사 결과에서 '모른다'는 응답자를 제외한 엉터리 설문조사였다.

살을 에는 아침에 국회 앞에서 15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단식자들도 참가했으나, 경총은 건물 셔터를 내리면서까지 항의서한과 공동설문조사 제안서를 거부했다. 지시를 내린 사람은 경총의 노사협력본부 황용현 본부장이라고 한다. 경총이 생각하는 '노사협력'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한다.

노조법 개정이 뭐길래, 경총은 저리도 반대하는가?

노조법 2조·3조 개정의 내용이 뭐길래 경총이 저리도 반대할까. 노조법 2조는 노동관계의 기본을 이루는 '노동자'와 '사용자', '쟁의행위'에 대한 정의규정이다. 3조는 손해배상 청구와 관련한 조항이다. 현행 노동자와 사용자, 개정안은 쟁의행위 규정이 협소하고 손해배상 청구를 남용하고 있으니 국제인권기준과 현실에 맞게 수정하자는 안이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플랫폼노동자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이 존재하고, 직접적으로 고용 계약서를 쓰지는 않았지만 원청인 진짜 사장이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에서 노조법 개정은 필수적이다. 한국처럼 국제노동기준, 국제인권기준과 떨어진 노조법으로는 헌법에 있는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니 2조를 빼고 3조 손해배상액만 일부 제한한다고 노동권이 보장될 리 만무하다.

▲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9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조합원이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파업을 한 화물연대노동자들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화물연대노동자들을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자라며 파업이 불법행위라고 했다. 파업을 부정하며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화물노동자들은 빚을 지고 자신의 돈으로 차를 사서 물량을 운반시킨다. 심지어 기름 값도 본인이 낸다. 그런데 운송료가 낮아서 대출도 갚고 생활도 하려면 과속, 과적, 과로를 하게 된다. 운송료를 정하는 것은 물건운반을 의뢰한 화물의 주인, 화주다. 화주업체들이 사실상 화물노동자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이로 인한 교통사고와 같은 위험은 사회성원 전체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안전운임과 관련한 운송사업법에서 화주의 책임이 중요하다. 화주가 안전운임제를 위반하지 않도록 정부가 관리감독해야 한다. 고용계약만 안 맺었지 사실상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정하는 것은 화주들이다. 그런데 노동자가 아니라는 게 말이 되나. 국제노동기구(ILO)는 2009년과 2016년에도 이미 '화물노동자의 노동조합 권리를 완전히 인정'하라고 권고했다.

택배노동자도 마찬가지다. 고용계약을 맺지 않았을 뿐 노동자이다. CJ 대한통운처럼 원청이 그 모든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고 수익도 대부분 가져간다. 많은 택배노동자들이 과로사로 죽어가는 현실에서 노동조건을 바꾸기 위해서는 노조법 상의 노동자 정의와 사용자 정의 규정이 바뀌어야 한다.

대법원 판례는 '고용계약을 직접 쓰지 않은 특수고용노동자도 노동자로 인정'하고 있다. 2018년 대법원은 특수고용노동자인 학습지교사를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했고, 올해 서울행정법원도 대법원 기준에 따라 대형마트 온라인 배송기사를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한국정부가 작년 비준해 올해 효력을 발휘한 ILO협약 87호와 98호 등 국제인권기준은 고용계약관계 유무로 노동자를 판단하지 않고 있다. 일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이 국제인권기준이다.

▲ 청계광장에서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 주최로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 이행 등을 요구하는 2022 전국 택배 노동자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조법 2조 개정해야

'임금 400원 상승'에 반대하고 최근까지 투쟁 중인 덕성여대 청소노동자와 같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2조는 개정해야 한다. 원청인 진짜 사장 덕성여대 총장이 청소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노골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청소노동자와 직접 계약을 맺는 곳은 용역업체지만, 용역업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용역업체는 원청이 주는 돈에서 월급을 줄 뿐 아니라 휴게공간 설치 등 공간과 시간에 대한 결정권한도 원청에 있다. 결국 사용자와 직접 교섭해야 해결될 수 있다. 진짜 사장이 교섭장에 나오지 않아 파업이 차일피일 미뤄졌던 지난여름의 대우조선하청노동자의 파업을 떠올려보라!

게다가 하청노동자가 원청 상대로 파업을 하면 불법이라고 하는 것도 노조법 2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목소리조차 못 내게 하는 노조법 2조의 독소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대부분의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파업했다고 불법파업이라고 한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노예로 부려먹겠다는 대기업의 탐욕을 거들어줄 뿐이다.

대법원이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는데도 원청인 현대기아차는 여전히 불법파견을 시도하고 있다. 물론 소송을 통해 해결할 수 있지만, 불법파견이라고 대법원에서 판정받는데 드는 소송비용이나 시간을 생각하면 당장 인권을 침해받는 노동자들에게는 힘든 일이다.

즉 노조법 2조와 3조는 대기업 사용자들만이 일방적으로 악용하는 조항인 셈이다. 심지어 현대제철 같은 경우는 '꼼수'로 자회사를 설립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파업을 불법파업이라고 규정하는 것이야 말로 부정의한 일이다.

노조법이 개정되면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사람에게도 이롭다

노조가입률이 10%에 지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노조법 개정은 마치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인권만 보장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앞서도 말했듯 노조와 사용자가 교섭을 통해 결정하는 임금이나 노동조건은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모든 노동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물론 노조 가입률이 높으면 그만큼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이다. 자신의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균형감을 가지고 노동자와 이익을 분배할 수 있도록 균형감을 가지려고 할 것이다.

발전비정규직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의 말처럼 노조법 2조 개정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음의 벼랑에 서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에 원청의 책임을 넣은 것처럼 노조법에도 진짜 사장 원청이 노동조건에 대해 책임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도 더는 죽지 않는다. 모두의 생명을 위해서도 노조법 개정은 필요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기억하는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투쟁 같은 일은 노동자가 아닌 모든 시민의 인권과도 직결 된다. 공공부문을 민영화하면 대기업은 돈을 벌지 모르지만 필수재인 대중교통이나 의료를 이용해야 하는 시민들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

2003년 민영화 저지파업을 했던 철도노조의 파업을 불법파업이라며 정부가 손해배상을 청구한 적이 있다. 당시 정부는 일방적으로 철도구조개혁법안을 국회에 상정하고 법안을 처리하려고 했고, 이를 막으려고 철도노조는 파업을 했다. 그런데 법원은 '철도노조 파업의 목적이 철도민영화 공사화 법안의 철회이므로, 노동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이 아니고 조정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니 불법파업'이라고 판단했다. 나중에 청구액이 75억 원으로 변경되기는 했지만 97억여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까지 청구했다. 현행법은 노동조건과 임금으로 한정한 파업만을 합법파업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2조의 쟁의행위 규정을 넓혀야 마땅하다.

▲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9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법 3조만 일부 손보겠다는 꼼수는 그만!

윤석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노조법 2조와 3조 개정을 막아서고 있다. 항상 재벌의 편이었던 정부여당의 반대는 예상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일부에서도 '노조법 3조만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있다고 하니 우려스럽다.

앞서 말했듯 손해배상 청구액을 제한한다고 해서 노동권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고, 불법파견 중단하라는 싸움을 불법파업이라고 하고, 민영화나 정리해고를 막으려는 파업을 불법으로 몰고, 청소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에 진짜 사장이 반대하는 현실을 바꾸려면 노조법 2조와 3조가 함께 개정되어야 한다.

노조법 3조도 손해액만 제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사실 현행 노조법3조(손해배상 청구의 제한)에도 함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이 있지만 손배 청구는 이루어지고 있다. 노조가 아닌 조합 간부 개인에게 청구하며 개인의 삶까지 압박하고 있는 현실이다. 사용자가 천문학적 손배를 청구하는 이유는 그 돈을 받으려는 목적만이 있는 게 아니다. 노조활동을 막으려고 기업은 노동자에게 손배를 청구하는 것이다.

또한 앞서도 언급했듯이 쟁의행위 규정이 협소해서 노동자들의 파업이 불법파업이 되고 있으므로, 노조법 2조 개정 없는 3조 개정은 팥 없는 붕어빵이다. 노조법 2조와 3조가 동시에 개정되어야 노동자가 최소한의 존엄을 보장 받으며 일할 수 있다. 힘센 대기업의 목소리가 아니라 노동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있다. 노조활동은 유럽에서도 이미 200여 년 전에 '인간의 집단적 권리'로서 인정된 인권이다. 무조건적인 노조에 대한 혐오는 집단적 권리인 인권을 부정하는 행위다,

지금 여의도 국회 앞에는 6명의 노동자들이 단식을 하고 있다. 단지 자신이 속한 사업장의 문제로 단식하고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노동을 존중하고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장하게 하기 위해서다. 국회는 더는 대기업 재벌, 경총 같은 집단의 눈치를 보지 말고 국제인권기준에 맞게 노조법 2조와 3조를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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