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당 노태우 이래 최초? '한동훈 당대표론'이 드러낸 여당의 허약성

[기자의 눈] '한동훈 당대표 차출론'? 칼에는 눈이 없지만 정치엔 눈이 필요하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국민의힘 대표로 거론된다고 한다. 한동훈 당대표론의 정당사적 의미부터 짚어 보자. 아직 상상속의 일이고 가정에 불과하지만, 대한민국 정당사에서 현실 정치 경험이 '제로'인 최측근을 대통령이 여당 대표로 밀어붙인 사례는 아마 5공 시절 전두환의 노태우 이래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내무부장관 노태우는 1985년 2.12총선 전국구로 나가 당선됐으나, 당이 패배한 후 이종찬의 건의를 받아들인 전두환에 의해 당대표로 직행한다. 2.12 총선에서 야당 돌풍으로 민정당이 사실상 패배한지 11일 만에 전두환은 당직 개편의 일환으로 노태우를 당대표에 임명했다. 원내총무 이종찬 등이 '수도권 민심'을 강조하며 한 노태우 천거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다.(김충식, <5공 남산의 부장들>) 그러나 이후 결말은 썩 좋지 못했다. 

박정희의 김종필도 민주공화당 창당을 주도했지만 초반에 총재와 당의장을 맡지 않았다. 변호사 출신의 문민 인사인 정구영을 총재로, 김정렬을 의장으로 두고 시작했다. 이회창도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당대표직에 뛰어들긴 했지만, 퇴임 후 이미 총선 신한국당 선대위 의장을 맡았었고 현직 대통령 김영삼을 포함한 '3김 청산'을 내걸어 전국구로 15대 국회의원 배지를 단 후에야 당대표에 올랐다. 스스로 쟁취한 당대표다.

'윤심'이 아무리 중해도, 현 정치 지형이 1980년대 수준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하고 그 밑으로 당대표-사무총장, 원내총무, 정책위의장(당3역)을 두는 형태의 민정당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당원이 직접 선출하는 21세기 국민의힘에서 가능한 일은 아니다. 만약 당대표 경선에서 민심 비중을 줄이고 당심 비중을 높이면 '윤심'의 구심력이 커져 한동훈이 당대표에 당선될 수 있다고 해도 이건 가정일 뿐이다. '한동훈 당대표론'이 나오자 원내대표 주호영이나 원내대표를 지낸 적 있는 나경원이 이를 부인한 건, 현실성 문제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끊임없이 '한동훈 당대표 차출론'이 흘러나오는 데에는 아마도 다른 무언가, 이런 저런 속사정이 있을 것이다.

한동훈은 문재인 정부 초기 정권 2인자 역을 했던 이낙연이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을 판판이 깰 때 차기 대권 지지도 1위에 올랐던 것과 비슷하다. 요컨대 한동훈은 문재인 정권 초기의 '이낙연 포지션'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인기가 식어가며 '이낙연 대세론'도 흐지부지됐다. 게다가 국정을 아우른 이낙연과 달리, 그는 야당과 전 정권을 겨냥한 검찰 수사를 꽉 잡고 있는 데서 지지자들을 결집할 힘이 나온다. 보수 진영 차기 지지율 1위의 힘이다. 

결국 한동훈의 '정치적 장점'이란 건 '칼'을 쥐고 있을 때만 발휘된다는 가설이 생긴다. 그는 다른 정치 경험을 해 본 적 없다. 특히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아래에서 최측근으로 자타 공인을 받고 있을 때여서 그의 발언도 힘을 얻게 되는 구조가 단단하다. 만약 '칼' 없는 '조선 제일검'이 정치판에서 통할 수 있을까. 법무부장관 한동훈과 여당 대표 한동훈은 완전히 다른 역할이다. 검찰을 지휘할 수도 없고,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기도 힘들다. 게다가 여의도 허허벌판에 '0선' 경험의 당대표를 내걸고 당을 장악하고 공천권을 원하는대로 행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상명하복의 검찰 조직과 달리 당은 살아있는 생물이다. 비정치인 출신 대통령이 당에 비정치인 출신 최측근을 파견하는 모양새인데, 이걸 MZ 세대와 수도권 민심으로 엮는 그 창의력의 끝이 어디인지 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즉 '한동훈 당대표론'은 여당의 허약함을 드러내 주는 일종의 '진단 키트'다. 대통령 후보도 당 외부에서 구하고, 당대표도 당 외부에서 구한다는 건 국민의힘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건강한 보수 정치인'을 키울 수 없는 구조란 걸 고백하는 일이다. 게다가 검찰 출신 대통령이 천거하는 검찰 출신 당대표라니. 군인 출신 대통령이 천거한 군인 출신 당대표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사실, 이런 모든 해석들은 부차적인 일일 뿐이다.  

▲한동훈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대체 '윤심'의 실체가 무엇이냐는 의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대표를 대하는 솔직한 심경은 '권성동 문자 파동'에서 드러난 바 있다. 대통령은 당대표 이준석을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굉장히 기괴한 일이었는데, 왜냐하면 '내부총질'은 당대표의 고유 업무에 대한 대통령의 사적 평가일 뿐이기 때문이다. 당의 일에 관여하고 당이 배출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관여하는 건 당대표의 의무고 당무다. 대통령에게 비판적이라도 하더라도, 그건 당원들이 직접 선출한 당대표의 권한 내의 일이다. 당대표의 당무를 내부총질이라 표현한다면, 앞으로 '윤심'을 반영할 당대표는 '영혼 없는 관료'를 들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내부총질' 파동조차 '윤심'을 절반만 보여준 데 그쳤다. '윤심'이 원하는 정책이나, 비전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대통령의 '心'은 대체 무얼 원하고 있는가. 대선 후보 단일화 때 안철수가 강조했던 '연금 개혁'은 청사진도 제시 못 했고, '담대한 구상'은 북한의 연이은 도발에 쫓아가듯 대응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노동 분야에선 이전 정부의 개혁을 되돌리는 것도 야당에 부딛힌 데다, 화물연대 파업 등 이미 벌어진 일에 열심히 대응할 뿐이다. 원전 건설 등 일부 정책 영역에서 적극적 행보를 보이지만, 이건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윤심' 비전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오히려 해외 순방 과정에서 각종 사건 사고로 구설에 올랐고, 폭우 피해, 이태원 참사 등 수습 과정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으며, 초등학교 입학 시기를 당기는 학제 개편 구상은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졌다. 조각 과정에서 인사 참사에, 대통령실 사적 채용 의혹이 도마에 올라왔고, 청와대 용산 이전의 기대 효과도 사실상 끝난 터다.

중요한 건 '윤심'을 업은 당대표가 누구냐가 아니라, 대체 '윤심'을 업은 당대표를 통해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다. 이 중요한 질문을 여당 내에서 누구도 던지지 않고 있다. 2024년 총선 전까지 의회를 해산하지 않는다면 현재 존재하는 '거대 야당'은 상수다. 야당과 협상을 통해 '윤석열표 대한민국'을 위한 청사진을 최대한 반영하려 하는 게 온당한 일일텐데, 한동훈 당대표론이든, '윤심 당대표'든 대야 투쟁의 상징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윤심 당대표론'은 다음 총선까지 통치를 아예 포기하겠다는 시그널로 읽힌다.

이재명과 문재인에 대한 동시 수사 과정에서 야당은 똘똘 뭉치고 있다. 특히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서 법원이 서훈 전 청와대 안보실장에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여권 일부는 적잖이 당황했다. 한 여권 인사는 "이재명과 문재인, 동시에 치는 건 너무 무리한 일 같다. 전선을 너무 넓히는 것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아니나다를까 검찰은 문재인 직접 수사엔 속도 조절에 나섰다. 그런에 야당 쪽은 결사 항전이다. 특히 문재인은 '내가 했다'는 정공법으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서훈의 구속 역시 정공법의 부산물이다. 이미 '문재인 진영'은 범죄 혐의 구성 요건을 깨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한 일은 범죄가 아니다'고 방향성을 잡았다. 처벌을 피하자는 게 아니고, 윤석열 정부에 대해 저항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이런 충돌은 결국 극한 대립을 낳는다. 

요컨대 정치는 꽉 막혔고, 비전은 부재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전 정권과 야당 대표 수사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실상 '윤석열 검찰'을 상징하는 한동훈의 여당 대표 차출론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야당을 궁지에 몰아넣고 하는 정치는 제대로 되지 않는다. 칼에는 눈이 없지만, 정치에는 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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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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