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선 '월드컵 보이콧 하자' 확산…'성소수자 옹호 완장'에 불붙은 인권 논쟁

FIFA 착용 금지에 독일축구협회 스포츠재판소 제소 뜻…독일 대기업 "축구협회 협력 중단" 불만 표출

국제축구연맹(FIFA)의 성소수자 옹호 완장 착용 금지에 독일축구협회(DFB)가 법적 조치 검토로 맞불을 놓으며 카타르 월드컵에서 인권 논쟁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주노동자 인권 문제까지 불거지며 독일 내부에서 월드컵 거부(보이콧) 움직임이 확산 중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독일 일간 <빌트>를 인용해 22일(현지시각) DFB가 카타르 월드컵에서 FIFA가 유럽 7개 대표팀 주장이 성소수자 권리를 옹호하는 표시로 여겨지는 '하나의 사랑(one love)' 완장을 차고 경기에 임하는 것을 금지한 데 대해 스포츠중재재판소(CAS)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슈테펜 시몬 DFB 대변인은 "FIFA는 우리가 다양성과 인권의 상징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또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 설명 없이 경기 중 막대한 제재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DFB는 이 조치가 합법적인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전날 독일, 네덜란드, 잉글랜드, 벨기에, 덴마크, 웨일스, 스위스 등 유럽 7개 대표팀은 "주장이 해당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설 경우 FIFA가 경기 중 제재를 부과할 것임을 매우 명확히 함에 따라" 완장을 차고 경기에 임할 계획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FIFA는 FIFA가 주최하는 대회 본선에서 각 팀 주장은 FIFA가 제공하는 완장만 찰 수 있다는 장비 규칙 13조 1항 2호를 들어 '하나의 사랑' 완장을 차고 경기에 임할 경우 옐로 카드가 발급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성소수자(LGBT+) 축구팬 모임인 프라이드인풋볼은 유럽팀들이 완장을 포기한 것을 두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월드컵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며 실망감을 표하기도 했다.

성소수자 권리를 상징하는 무지개색을 표방한 것으로 보이는 여러 색을 사용한 하트 모양 도형 안에 숫자 1을 표기한 해당 완장은 지난 9월 차별에 반대하고 포용을 장려하자는 의미로 네덜란드 축구협회(FA) 주도로 유럽 9개국 축구팀에 도입됐다. 미국 CNN 방송은 이 캠페인이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동성 간 성관계를 금지하는 카타르 내 성소수자에 대한 탄압과 이주노동자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유럽축구연맹(UEFA) 내부에서 촉발되며 나왔다고 설명했다. 인권단체와 언론은 카타르 월드컵 개최가 결정된 2010년 이후 경기장 건설 등에 동원된 북한 노동자들을 포함한 이주노동자들이 적절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열악한 노동 환경에 시달리며 열사병 등으로 사망에 이르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지난해 <가디언>은 관련해 최근 1년 간 사망한 이주노동자 규모가 6500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독일 기업들은 완장 미착용 결정과 관련해 DFB를 압박하고 있다. 독일 대형 슈퍼마켓 체인 레베(REWE)는 22일 이 결정에 반대하며 DFB와의 협력 철회를 선언했다. 라이어널 스쿠 레베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에서 "우리는 다양성을 지지하고 축구는 다양성이다. 여러 기업의 최고경영자로서, 또 축구팬으로서 FIFA의 불미스러운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가디언>은 독일 통신사 도이치텔레콤도 이날 DFB와 관련해 대화할 방침을 밝혔고 폭스바겐, 루프트한자 등 다른 기업들도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에선 대기업 뿐 아니라 통상 매장에서 축구 경기를 단체로 관람하는 손님 등으로 인해 월드컵 특수를 누리는 술집까지 보이콧에 동참하고 있다. <가디언>은 독일의 몇몇 술집들이 매장 내에서 경기 영상을 상영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또 다른 술집들은 매상을 이주 노동자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낸시 패저 독일 내무장관은 22일 "다양성과 개방성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고 믿는다"며 FIFA의 결정을 "어마어마한 실수"라고 비난하고 완장 착용을 포기한 유럽팀들의 결정에도 실망했다고 밝혔다. 패저 장관은 월드컵이 개최 중인 카타르 수도 도하를 방문해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월드컵에선 지난 9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를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는 이란의 출전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인권 관련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란에선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도 순찰대에 끌려간 쿠르드족 여성이 의문사한 것을 계기로 진상조사와 여성 인권 증진에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퇴진 요구까지 나아간 반정부 시위가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당국의 폭력 진압으로 다수의 미성년자를 포함해 400명이 넘는 시민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1일 잉글랜드와의 경기에 앞서 이란 대표팀은 국가 제창을 거부하며 시위에 대한 연대의 뜻을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 9월2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 축구팀 선수들이 차별에 반대하고 다양성을 옹호한다는 의미로 카타르 월드컵 등 경기에서 유럽 7개국팀 주장이 착용할 예정이었던 '하나의 사랑' 완장을 내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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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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