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대대적 감세에 맞설 재분배 조세 정책은 횡재세"

[기고] 현시점 한국에서 증세 정치의 유일한 가능성, 횡재세

21대 국회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공방으로 인해 뜨겁지만, 여야가 의견을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대기업에 불리한 법안에는 침묵하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더 구체적으로 횡재세 도입에 반대하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다.

이미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나라는 횡재세를 정식 세수로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와 석유위기를 거치며 앉아서 떼돈을 번 회사에는 그에 적합한 세금을 걷어 어려운 계층을 도와야 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이 정식 법안으로 마련된 것이다.

국내에서도 횡재세 도입안이 발의됐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과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했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양당은 본래 국회 기재위에 상정 예정이던 해당 법안을 상정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두 거대정당의 합의로 인해 횡재세 연내 도입은 어려워졌다.

이에 <프레시안>은 횡재세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두 편의 기고를 소개한다. 편집자.

(기고 전편 보기: 횡재세, 반드시 연내 입법되어야 한다)

지난 10일 개최된 '한국형 횡재세법 쟁점과 입법과제' 토론회에 유럽연합(EU) 세금 및 관세총국 경제분석 사무관과 에너지총국 역내시장부서 사무관이 발제자로 참여해 유럽 차원에서 횡재세가 담당하는 역할을 설명했다. 유럽에서 연대 기여금(solidarity contribution)이라는 이름의 횡재세는 에너지 가격 안정, 기후변화 대응, 러시아 에너지 의존 탈피,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 등 다목적 사회경제 정책 패키지의 핵심 수단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유럽의 사정과 달리 한국에서는 여전히 횡재세의 규범적 정당성과 조세정책적 타당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어김없이 이를 확인하였다.

필자가 지난 4월 도입 필요성을 공론장에 선도적으로 제출한 이후 횡재세는 악화일로의 세계 경제 환경과 맞물려 거의 대세라 불러도 될 정도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횡재세는 조세 이슈로는 이례적으로 자주, 그리고 꾸준하게 언론과 시민사회의 관심을 받아왔다. 이에 힘입어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필자가 각각 8월과 9월에 법인세 과세특례 형태의 한국형 횡재세법 대표발의를 할 수 있었다.

횡재세마저도 증세 정치를 열 수 없다면…

그러나 횡재세 도입을 담은 2개의 법인세법 개정안의 1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상정은 불발됐다. 올해 안에 입법되지 않을 경우 정유사와 은행의 올해 분 초과이득에 대한 횡재세 과세가 입법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올해 초과이득에 대한 과세를 위해서는 상임위 안건 상정이 최소한의 조건인데 이것이 불발된 것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이미 몇 차례 횡재세 도입 반대 의사를 밝혔고, 정부여당이 대규모 대기업 및 부자감세를 조세 정책의 기조 방침으로 정하고 있으며, 과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횡재세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 등을 고려하면 상임위 상정 불발은 필자도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기는 하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시민사회의 압도적 지지만이 한국형 횡재세 도입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호소하고자 한다.

공통부(commons)를 주요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을 주창하는 기본소득당 국회의원으로서 필자에게 횡재세는 이미 발의한 기본소득 탄소세법, 기본소득 토지세법과 함께 다음과 같은 자문에 깊이 관련된 세제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 과연 증세 정치가 가능한가?'

윤석열 정부의 2022년 세법 개정안은 문재인 정부 초기와 중반에 이뤄진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중반에 이뤄진 종합부동산세 강화,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등 힘겹게 이룬 증세를 완전히 무위로 돌릴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윤석열 정부 첫 세법 개정안의 감세 효과를 향후 5년간 누적 73.6조 원으로 잡고 있다.

그리하여 2023년 세입 예산은 물가인상률과 경제성장률에도 턱없이 미달한다. 대규모 감세 그 자체도 문제지만, (이미 시행령 개정으로 예상되는 세수의 약 절반을 삭제해버린) 종합부동산세의 다주택 중과 폐지, 법인세와 소득세 과표구간 조정 및 최고세율 인하, 금융투자소득세 유예 등의 귀착 효과는 세제의 본질상 대부분 대기업, 고소득층, 고액자산가에게 이익을 듬뿍 안기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 위기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어느 때보다 재정의 역할이 절실할 때 이뤄지는 부자 감세에 대해 시민사회의 저항은커녕, 유의미한 대응도 없다시피 하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금융투자소득세 유예 이슈 역시 이미 지난한 합의를 통해 내년부터 시행될 세제가 그냥 유예(국민의힘)냐 조건부 유예(더불어민주당)냐라는 대치선으로 후퇴했다.

여기에서 한국에서 유독 증세 정치가 작동하지 않고 간간이 이뤄지는 증세마저도 무위로 돌아가는 이유를 상설하지는 않겠다. 다만 한국의 조세 레짐이 증세 정치에 지독하게도 비우호적이며, 그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증세와 복지 수혜의 관계를 철저히 차단하고 오히려 비과세감면이 중산층 이상에게 사실상의 현금 복지로 기능하도록 만든 현행 조세 제도의 설계라는 사실만은 지적하고자 한다.

정치 일반이 그렇듯 증세 정치도 '조세 체제를 바꾸자'는 일반론적 호소와 설득을 통해 돌파의 계기를 만들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횡재세는 현재 상황에서 유일무이한 증세 정치의 계기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첫째,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횡재세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깝다. 한국의 주류는 자신의 횡재세 반대에 미국에서 횡재세법이 발의는 됐지만 도입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주장을 덧붙인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서 자사주 매입액에 대한 1% 과세 등 상당한 증세안을 마련해 놓은 실정이다. 횡재세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것은 대중 설득 과정에서 그만큼 유리한 입지에 선다는 것을 뜻한다. 필자 스스로 횡재세 공론화 과정에서 이를 절감했다.

둘째 횡재세가 현재 시점에 유력한 증세의 계기이지만 횡재세 도입의 승리는 이후 증세 과정 일반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는 횡재세의 내포적 의미로 인해 주어지는 가능성이다. 횡재 이득과 그것에 대한 과세를 인정한다는 것은 시장 경제에서 경제 주체의 노력으로 귀속될 수 없는 외부적 요인에 의한 이득을 인정하고 공동체가 이를 과세 대상으로 제도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마도 한국의 주류가 횡재세를 반대하는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세수의 금융 및 에너지 취약 계층 지원으로 재분배 및 연대 원리 구현

사실 우리 법에도 유사한 개념과 제도가 법에 들어와 있다. 재건축초과이득환수법은 용적률 상향 등으로 인해 정상가격 상승분을 훨씬 넘어서는 초과이득에 대해 부담금을 부과한다. 세법의 형태로 횡재세가 도입된다면 우리는 경제적 외부효과에 의해 독과점 기업 등이 독식하는 횡재 이득을 과세하는 공식적인 세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디지털 플랫폼 경제는 외부효과를 내부화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하는데, 횡재세는 플랫폼 경제에서 나타나는 광범한 외부효과 독식에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만큼 증세 정치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한국에 발의된 횡재세법은 증세 정치의 관점에서만 정당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용혜인 의원안은 몇 가지 점에서 입법적 완성도를 가졌다고 감히 자부한다. 용혜인 의원안은 우선 정유사만이 아니라 은행에도 횡재세를 부과한다. 한국의 횡재세 논의는 석유정제업에 집중돼 왔지만, 횡재세의 성격상 초고금리 상황에서 초과이득을 누리는 산업 부문에 은행을 빼놓을 수 없다.

용혜인 의원안은 또한 처음 시도되는 세법임을 감안해 위헌 시비를 최소화하기 위한 규정을 두었다. 횡재세가 기존 법인세와 중복 과세되는 경우 횡재세액에서 차지하는 법인세액을 공제하는 규정을 두었고(이중과세 위헌 관련), 초과이득이 너무 커서 횡재세액이 법인세액보다 많이 나올 경우 그 초과되는 액수는 횡재세액에서 차감하도록 하였다.(과잉금지 위헌 관련). 이로 인해 명목세율은 50%이지만 실효세율은 최대 30%를 넘어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용혜인 의원안은 횡재세 세수를 초과이득공유기금으로 편재하여 금융 및 에너지 취약 계층을 지원 용도로 사용토록 하였다. 이는 횡재세가 단지 증세를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유럽의 연대 기여금처럼 재분배 세제로 기능하고, 이로써 저소득층과 서민의 지지 속에서 증세가 힘을 받도록 하고자 한 것이다.

한국에서 증세 정치의 전망은 밝지 않다. 그러나 증세 정치를 포기하고는 모든 구성원들의 더 나은 삶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횡재세 하나로 증세 정치가 실패냐 성공이냐를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현 시점에서 증세 정치의 가능성과 한계를 가늠해 볼 중요한 시금석임에는 틀림이 없다. 진보 시민사회의 초당적 지지를 호소한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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