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세, 반드시 연내 입법되어야 한다

[기고] 횡재세, 보편증세로 나갈 물꼬

21대 국회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공방으로 인해 뜨겁지만, 여야가 의견을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대기업에 불리한 법안에는 침묵하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더 구체적으로 횡재세 도입에 반대하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다.

이미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나라는 횡재세를 정식 세수로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와 석유위기를 거치며 앉아서 떼돈을 번 회사에는 그에 적합한 세금을 걷어 어려운 계층을 도와야 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이 정식 법안으로 마련된 것이다.

국내에서도 횡재세 도입안이 발의됐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과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했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양당은 본래 국회 기재위에 상정 예정이던 해당 법안을 상정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두 거대정당의 합의로 인해 횡재세 연내 도입은 어려워졌다.

이에 <프레시안>은 횡재세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두 편의 기고를 소개한다. 편집자.

최근 금융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올해 9월말까지 이자이익은 40조 원을 넘어섰다. 은행의 이자이익은 작년부터 매 분기마다 분기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금리 인상에 따른 예대마진(대출과 예금의 금리 차이) 확대와 대출 증가가 폭리의 원인으로 꼽힌다. 민생경제가 무너지는 와중에 은행이 땅 짚고 헤엄치기 식 이자놀이로 벌어들인 '횡재이윤'이다.

정유사들은 어떤가. 올해 9월말까지 SK에너지, SK인천석유화학,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 5개사의 합산 매출총이익(매출액에서 원가를 차감)은 16.5조 원이다. 코로나19 이전 2019년 같은 기간의 4배가 넘는다. 올해 3분기까지 매출총이익률(매출총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눈 비율)은 2015년~2019년 5개년 평균의 약 2배다. 이익이 어떻게 갑자기 늘어났는가. 전쟁과 경제제재, 상품시장 투기로 국제유가가 오른 덕이었다. 한마디로 횡재였다.

ⓒ나원준

독점자본의 횡재와 심화되는 양극화, 그냥 두고 볼 일인가

은행과 정유사에 막대한 이윤을 몰아준 고금리와 고유가가 서민들한테는 고통이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결과, 올해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실질소득은 작년보다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인 2009년 이래 가장 큰 감소다. 실질소득 감소는 특히 저소득층에서 두드러졌다. 상위 20%와 하위 20%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 저소득층은 필요지출마저도 억제하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 부담 탓이다.

은행을 배불린 고금리는 중소기업도 덮쳤다. 한국은행은 9월 금융안정 상황 보고에서 한계기업(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못 내는 기업) 비중이 작년 14.9%에서 올해는 18.6%까지 오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위기와 에너지위기를 배경으로 한쪽에는 독과점 대기업의 횡재이윤이, 다른 쪽에는 서민들과 중소기업의 고통이 쌓여간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횡재세 논의의 출발점

이 양극화의 현실을 목도하면서도 그것을 제도적으로 바로잡지 않고 눈 감고 말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평등과 연대의 가치를 입에 올릴 자격은 없다. 오늘과 같은 상황을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한다. 독점자본의 초과이윤을 환수하는 제도인 횡재세를 둘러싼 논의는 그런 절박함에서 출발했다.

양극화의 심화가 기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에 유럽 여러 나라는 횡재세를 이미 도입했다. 올해 7월 기준 각국의 횡재세 현황은 다음 표와 같다. 8월 이후로도 네덜란드, 벨기에, 오스트리아로 횡재세 도입이 확산하고 있다. 독일도 지난 9월 집권 연정 3당인 사회민주당, 녹색당, 자유민주당이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횡재세 부과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유럽연합 차원에서는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공개지지 속에 '연대기여금'이라는 이름의 횡재세가 최근 설계되었다. 자국만의 횡재세가 없는 회원국에는 12월부터 유럽연합 연대기여금이 각국의 법인세 체계에 맞춰 적용될 예정이다.

ⓒ나원준

횡재세는 협소한 시장 논리로 반대할 일이 아니다

유럽도 그렇지만 입법 움직임이 막 본격화된 한국에서도 횡재세에 대한 반론은 만만치 않다. 당장 기업 활동을 지나치게 억압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시장경제를 위협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대규모 감염이나 전쟁 같은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누구는 크게 이득을 보고 다른 누구는 크게 손실을 보는 상황이 자연스러울 리 없다. 그렇게 경제 내 불균형이 누적되면 시장경제 발전에도 결코 유리하지 않다. 극단적인 시장 변동이 초래한 분배적 영향은 제한되고 조절되어야 한다. 횡재세는 그 한 가지 수단일 뿐이다.

현재 논의되는 횡재세 계획으로는 초과이윤의 전부를 환수할 수도 없다. 관련 기업은 여전히 초과이윤을 부분적으로 누린다. 더욱이 횡재세는 현재로서는 한시적인 위기 대책이다. 따라서 횡재세 때문에 실물투자가 급감할 것처럼 과장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는 시장원리주의 시각에서 횡재세를 반대하는 것이야말로 기득권 세력의 이해관계만 앞세우는 가장 이념적인 주장이다. 시민 다수한테는 초과이윤 환수가 이득이다. 현 시기 횡재세는 경제를 포함하는 보다 큰 외연인 시민사회의 정당한 요구를 반영한다. 평등과 연대라는 공동체적 가치가 그것이다. 시장 논리에 갇힌 좁은 시각으로 볼 일이 아니다.

횡재세는 횡재이윤이 독점자본에 집중되는 구조가 정당한지 묻는다

횡재세가 추가적인 물가상승을 불러와 결국 그 부담이 소비자에게 귀착되고 말 것이라는 비판도 들려온다. 그러나 횡재세가 법인세에 부가되는 방식으로 설계되는 한에서는 그럴 우려가 적다. 독과점 기업이 상품가격을 인상해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면 횡재세 세액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미 발생한 이윤이 과세 근거라면 그 과세 때문에 가격을 더 인상한다는 주장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것은 시장지배력의 남용이다.

결국 횡재이윤을 얻은 기업의 시장지배력과 독과점적 행태가 문제일 터이다. 혹자는 이와 관련해 한국 정유사들은 독과점이 아니라고도 주장한다. 한국 정유사들이 국제시장 가격을 수용한다는 사실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국내시장에서 독과점이 아니라는 말은 억지다. 진짜 핵심은 외부환경이 변동할 때 일부 독과점 대기업이 횡재이윤을 쓸어 담을 수 있는 시장구조에 있다. 횡재세는 그 구조가 정당한지 묻는 세금이다.

횡재세 적용 업종은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다

횡재세는 최근 경제상황에서 정상 범위를 넘어서는 초과이윤의 발생이 확인된 업종에 국한돼 적용된다. 대상 산업의 선정에 있어 정유사와 은행에 일차적인 관심을 둔 것은 그런 점에서 잘못되지 않았다. 민간발전사나 빅테크 등 다른 업종으로 범위를 넓히는 논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문제는 연내에 횡재세 입법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2022년에 발생한 은행과 정유사의 대규모 횡재이윤을 환수하기 어려운 시간 제약에 있다. 그래서도 반드시 올해 내에 입법되어야 한다.

부연컨대 정유사의 경우 2013년에 개정된 석유사업법 제18조에 의해 국내 실정법상으로도 횡재이윤을 환수할 수 있는 근거가 이미 존재한다. 동법 제18조 제1항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석유 수급과 석유가격의 안정을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자로부터 부과금을 징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그 제2호는 "국제 석유가격의 현저한 등락으로 인하여 지나치게 많은 이윤을 얻게 되는 석유정제업자 또는 석유수출입업자"를 특정하고 있다. 최근 횡재세 법안은 그동안 기능하지 않았던 석유사업법 제18조를 실정에 맞게 구체화하는 의미도 갖는다.

한편 혹자는 한국 정유사들은 산유국 석유사업자들과는 처지가 다르다고 항변한다. 한국 정유사들은 탐사와 개발, 생산(업스트림)을 못하고 정제에 치중하는 이른바 '다운스트림' 사업구조를 가져서 횡재세 부과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업스트림이 아닌 사업자를 포함한 에너지산업 전반에 걸쳐 횡재세 부과 및 사회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미 스페인이나 헝가리에서는 횡재세 부과 업종이 에너지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있다. 횡재세가 특정 업종에 국한될 이유는 전혀 없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은행은 앉아서 폭등하는 이자이익을 누리고 있다. 반면 서민과 중소기업은 일방적으로 고통받고 있다. 횡재세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횡재세 반대론은 적어도 노동계급 관점은 아니다

또 다른 횡재세 반대론은 한국 법인세는 이미 누진구조를 갖추고 있기에 횡재세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누진구조 자체가 횡재세를 반대할 근거는 아니다. 유럽연합의 연대기여금을 개별 회원국에 적용할 때도 각국의 누진구조 차이는 고려되지 않는다. 더구나 한국 법인세는 명목 최고세율은 높지만 각종 공제감면으로 인해 실효세율의 누진성은 그에 못 미친다. 한국 법인세의 누진성 정도가 어떻건, 횡재세가 누진구조를 약화하지 않고 강화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무엇인가.

횡재세 반대론자들은 한국 기업의 법인세 부담이 이미 과도하다는 자신들의 시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국의 법인세수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큰 이유는 재벌에 경제력이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고 소득세율보다 법인세율이 낮아 법인이 선호되는 사정에 있다. 법인의 과세대상 소득이 워낙 크니까 법인세수도 클 뿐이다. 횡재세 반대는 법인세 증세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나왔다. 그러나 적어도 노동계급 관점에 선다면 그런 입장을 지지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횡재세 반대론에는 법인세 자체가 공평하지 않은 세금이라는 주장도 있다. 기업이 지속적인 결손에 직면한다면 과거 이익 발생 시 납부했던 세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기에 불공평하다는 것이 그 요지다. 그러나 횡재세를 낼만한 기업인데 미래 지속적으로 결손을 보리라고 예상하기는 참으로 난망한 노릇이다.

횡재세는 부자증세, 보편증세로 나아가는 물꼬 역할을 할 수 있다

횡재세는 대기업 법인세 증세이기에 민주노조운동이 그간에 제기해온 부자증세와 맥락이 다르지 않다. 횡재세 세수가 빈곤층과 에너지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특정 목적에 사용된다면, 횡재세는 시민사회에서 추진해온 목적세로서의 사회연대세 성격에도 부합한다. 횡재세는 특정 업종과 특정 시기에 한정해 적용되기에 대중적인 증세 운동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한테는 일점돌파의 승리 경험이 절실하다. 바로 그런 이유로도 횡재세는 반드시 연내 입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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