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하지만 실제 책임지는 국가는 보이지 않는다"

[시민건강논평] 책임지는 국가를 만들어내자

이태원 10.29 참사 후 2주가 흘렀다. 일상으로 돌아온 듯 하다가도 문득 먹먹하고 무기력하고, 화가 날 때가 있다.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들의 인식과 태도가 슬쩍 엿보일 때 특히 그렇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야당의 인식과 진단, 대응을 보고 있자면 사람들의 그것과는 괴리가 너무 커서 암담하다. 참사 이후에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추가적인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참사가 아닌 사고, 희생자 아닌 사망자로 규정하는 데서부터 인식의 차이가 드러난다. 처음에는 피할 수 없는 사고였다는 입장을 보이다가,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자 지금은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직접 관련 있는 개인과 조직의 행위를 조사해서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아마 개인과 조직을 문책하는 것에서 좀 더 나아가더라도 일부 조직 개편이나 매뉴얼을 만들고, 교육을 추가하는 정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사고를 당한 사람들과 시민들에게 보상과 심리 지원을 하면 정부는 스스로 할 만큼 했다고 여기리라 예상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느끼는 문제의 핵심은 참사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책임지는 국가의 부재다.

돌이켜보면 이번 참사뿐이 아니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지켜지지 않은 크고 작은 사건들의 배경에는 국가권력의 책임회피가 있었다. 책임회피는 사후 대응 방식이면서, 사전에 원인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은 그보다 높은 우선순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민의 삶을 지키는 책무가 최우선의 가치가 아니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이 무엇인가. 진상규명을 하고 대책을 세운다면 표면적, 우연적 요인을 넘어 이 부분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권력이 스스로 책임회피를 성찰할 의향과 역량이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테니, 이를 감시하는 시민들의 몫인지도 모르겠다.

정부가 무슨 말을 하는가보다 실제 시행하거나 시행하지 않는 정책이 무엇인가 주의를 기울이면, 정부가 우선시하는 것이 보인다. 예를 들기 위해 멀리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SPC 노동자가 일터에서 사망한 이후 기업의 대처에 많은 사람이 분노했고, 대통령은 안타깝다 했다. 그와 동시에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계속되는 건 무슨 의미인가.

코로나19 유행으로 의료체계 붕괴를 걱정하던 시기에 의료진들이 고군분투하며 온몸으로 위기를 막아냈다. 정부가 나서서 ‘덕분에’ 챌린지를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국립중앙의료원과 국립대병원은 오히려 인력을 감축할 예정이다. 혹시나 해서 덧붙이자면, 유행이 잠잠해지고 인력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의료진의 노동 강도는 올라가고, 환자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추진하는 것이다.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 때문이다.

예산을 어디에 투입하거나 투입하지 않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정부의 본심을 확인하기 좋은 방법이다. 이번 달 들어 한국철도공사 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어서 서울 영등포역에서 무궁화호가 탈선했다, 국토교통부 장관은 무슨 속셈인지 철도공사를 다 바꿔야 한다고 탓했지만, 지난 몇 년간 시설 유지보수인력 및 운영인력 충원 요구를 정부가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3년 예산에는 급기야 단 한 명의 인력 충원도 반영되지 않았다. 사건 이후 기재부에서 공공기관 혁신 계획 검토 시 필수안전인력을 감축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례. 폭우로 반지하 방에서 일가족이 목숨을 잃은 것이 불과 몇 달 전이다. 정부는 근본 대책을 마련하겠다 했지만, 2023년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5조 7천억 원 삭감했다. 예산 없이 마법처럼 해결할 방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약속은 하지만 실제 책임지는 국가는 보이지 않는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 인간다운 삶을 지키는 것! 이제 이것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기보다는 국가권력이 자본가의 이익을 중심에 두는 경제성장과, 효율성을 중심에 두는 통치 비용의 절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선택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국가의 책무성을 축소하는 것이 통치전략이고, 이 전략이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는 것은 시민사회와 그 구성원들이 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하거나 스스로 내면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가 책임지지 않으면, 시민사회와 그 구성원들이 이를 받아들이면, 안전과 생명, 인간다운 삶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 되고, 결국 그것은 개인의 책임이 된다. 개인이 어떠한 규제도 받지 않고 알아서 자신의 삶을 살되 그 책임 역시 오롯이 개인의 몫이 되는 사회!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것 같지만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에게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일 리 없다. 민주주의와 공공성에 기반한 시민사회의 전망은 더욱 약해질 것이다.

궁극적으로 국가권력이 원하는 것이 이러한 상태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공공성에 기반한 사회를 꿈꾸고 있다면 시민사회는 반격해야 한다. 시민들의 삶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순위가 되는, 책임지는 국가를 만들어내야 한다. 앞서 정책과 예산을 언급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그 반격은 사회적 규범과 가치, 문화, 정치를 아우르는 간단치 않은 작업이며, 광범위한 연대가 필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어렵고 복잡해도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수밖에 없다. 이태원 참사의 구조적 원인까지 진상규명이 이뤄지도록,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정책을 만들어 나가도록, 그리고 현재 국회에서 심의 중인 예산안이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 인간다운 삶을 지키는 예산안으로 거듭나도록 감시하고 목소리 내고, 소통하자. 지난 주말에는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국가의 통치 전략에 대한 저항의 촛불이 더 늘어났다고 하니 사회권력의 반격은 이미 예상보다 많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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