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포기' 선동과 '쇠고기 협상' 파동, 그리고 윤석열의 '전쟁'

[기자의 눈] 이명박·박근혜보다도 '정치 기술'에 무능하다?

윤석열 정부는 '정치 기술'에도 참 무능한 정부다. 박근혜 정부, 이명박 정부 시절보다도 더 무능하다. 여기 두 가지 예시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NLL을 포기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2012년 10월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정문헌 당시 의원(현 종로구청장)이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기록을 토대로 주장한 내용이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이명박 정부 통일비서관을 지내고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던 인물이다.

국정원이 갖고 있던 비공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은 뜬금없이 길거리에서 유출됐다. 폭우가 쏟아지던 2012년 12월 14일 대선을 불과 닷새 앞두고 박근혜 당시 후보를 지원하는 부산 유세에서, 김무성 당시 의원은 부산 진구 서면 거리 길거리 단상에 서서 비를 맞으며 노무현과 김정일의 대화를 7분간 줄줄 읽어내려갔다. 국기문란과도 같은 일이 다반사이던 시절이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정권을 잡은 박근혜 정부가 검찰력을 동원해 막상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열어보니 NLL 포기 발언은 초본에도, 수정본에도 어디에도 없었다. NLL 포기 발언은 오히려 김정일 위원장이 했다. 게다가 NLL은 포기되지도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어진다). 새누리당은 당시 이 스캔들을 대선 전후의 핵심 이슈로 부상시키고, 전 정권도 아니고 전전 정권(노무현 정부) 때리기로 이용한다. 

의도는 뻔했다. 노무현 정부가 영토(NLL이 영토가 아니라는 건 이 글에서 따질 일은 아니다)를 포기했다는 이미지를 뒤집어 씌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해봐야,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이 스캔들을 떠올린 건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파문' 때문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은 여기에서 돋보인다. 

과거 새누리당은 남북 정상회담 대화 극히 일부를 NLL 포기 발언으로 뒤집더니, 불리해지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초본 수정 논란으로 프레임 전환을 시도했다. 당시 여론 상황만 보면, 잠시지만 일부 성공하기까지 했다. 무려 '비밀 문서'가 소재다. 버젓이 '비속어 영상'이 존재하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데, 지금 국민의힘은 과거와 같은 '정치 기술'을 시전하려 하고 있다. 

아무리 양보해도 국민 세 명 중 두명은 '바이든'으로 들렸고 '욕설'이 들렸다고 하는 상황이다. 단순 해프닝을 눈덩이처럼 키워놓았지만, 여론은 냉랭하다. 왜냐하면 욕설 영상은 비밀 문서도 아닌데다, 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바이든이든, 날리면이든) 논쟁이 여지없이 즉각적 반응을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에 대한 '진상 규명'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이미 유권자는 모두 각자 판단을 내렸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수사에 나선다면 윤석열 대통령을 제일 먼저 조사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여의도에 이미 퍼져 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작품'으로 MBC의 '광우병 선동' 프레임이 있었다. 2008년 촛불 시위의 본질은 '광우병 선동'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첫해 정무적 참사로 기록된 '한미쇠고기협정'의 졸속 협상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그해 4월 18일 체결한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턱을 대폭 낮춰 미국에 '선물'을 안겨줬다. 특히 30개월 미만 미국산 소의 특정위험물질(Specified Risk Material, SRM)까지 수입을 가능하게 한 부분은 2000년대 초반부터 논란이 있어 온 공장식 축산과 도살로 인한 '광우병 소'에 대한 학계의 경고를 무시했다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충분한 정무적 판단 없이 '화끈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한미 동맹 복원'(복원을 하려면 이미 폐허가 있어야 한다. 망가진 적 없는 '한미동맹 복원' 구호는 보수 진영 선거 전략의 교과서다.) 차원에서 밀어붙인 사안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여론에 밀려 두 번의 재협상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이걸 '선동된 대중'에 밀린 것으로 서사를 다듬었다. 자신들은 잘못이 없고, 우매한 대중이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란 것이다.

▲28일 서울 마포구 MBC 본사 앞에서 박대출 MBC 편파·조작방송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위원장(오른쪽부터)과 권성동 과방위원, 박성중 국민의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 발언 보도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에선 '아침이슬'을 부르던 이명박 정부는, 뒤에서 '누구 돈으로 촛불을 샀는지' 뒤지면서 희생양을 찾고 있었다. MBC가 걸려들었다. 다소 과장이 있을 수 있을지언정, MBC <피디수첩>은 충실하게 광우병 담론의 역사를 보도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MBC의 보도가 광우병의 위험을 필요 이상으로 부각시키는 바람에, '촛불 좌파 좀비'들이 선동에 놀아나서 '한미 동맹' 훼손과 정부 전복을 획책한 것이란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정무적 판단 없이 밀어붙인 정책 실패는 '국민이 선동당했다'는 '국민책임론'으로 둔갑했다. 그렇게 몰아가는 게 정권의 '자기 최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역대 정부와 비교했을 때 근근한 지지율로 국정을 이끌어간 가장 허약한 정부였던 것으로 기록됐다.

지금 국민의힘과 보수 언론은 "광우병 선동"과의 싸움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부여한 서사를 재활용하고 있지만 녹록지 않아보인다. 애초에 사과하고 넘어갔더라면, 며칠의 비판만 감수하면 될 일이었는데 이젠 돌이키기도 어려운 상황이 돼 버렸다.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는 윤 대통령은 전가의 보도와 같은 '한미동맹 복원(다시 말하지만 폐허가 된 적이 없다)'을 내걸고 다자 외교 무대에서 무리하게 '양자 외교'를 추진했다. '흔쾌히' 합의됐다던 한미 정상회담은 불발됐고, 뒤늦게 일정을 만들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장에 들어가 48초 짧은 환담을 했다. 무엇을 '복원'한다는 것인지 모호한 상황에서 미국과 양자 정상회담 자체에 매몰되며 공허한 순방이 돼 버렸다.

그 때 터진 게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영상이다. 혼잣말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영상이나 취재 기자의 귀에 포착되면 뉴스가 된다. 이건 저널리즘의 간단한 상식이다. 저녁 식사하러 갔다가 옆방에 유력 정치인들의 모임을 알아채고 '귀대기'를 통해 엿들은 말도 뉴스가 되고, '사적인 식사 자리'에서 오간 거친 말들이라도 정치인들은 일단 지면에 나온 말들 자체는 인정해 왔다. 그런데 대통령이 "국회 이XX들"이라는 말과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발리면'인지, '발리믄'인지 "쪽팔려서 어떡하냐"는 비속어를 섞어 누군가에게 '일침'을 날리고 있는 모습이 영상과 녹취로 잡혔는데, 이걸 뒤집겠다고 꺼내 든 게 하필 또 MBC다.

무려 "한미 동맹의 뿌리를 흔드는"일을 획책하고 있다고 한다. 148개의 언론이 합세하여 한미동맹의 뿌리를 흔드는 일을 획책한다고 믿는 게 합리적일까, 윤석열 대통령 단 한명이 사적 대화에서 욕설이 섞였다는 걸 인정하는 게 합리적일까.

공교롭게도 2008년 촛불시위처럼, 이번 파문도 '외교 참사'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국민의힘은 '역공'에 나서면서 프레임 전환을 시도한다. 이게 될 리가 있을까. 

윤석열 정부는 정치 기술에 관애서는 이명박 정부보다, 박근혜 정부보다 더 무능한 모습이다. 왜 그럴까.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이XX들' 발언을 할 때 옆에서 동행했던 박진 외교부장관은 2008년 한미쇠고기협상의 졸속 협상 파문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다.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2011년에 공개한 2008년 6월 26일자 주한미국대사관 비밀 전문에는 제임스 신 미국 국방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박진 당시 의원이 6월 18일 만찬에서 나눈 대화를 기록했다.

박 의원은 이 자리에서 이명박 정부의 한미쇠고기협상에 반대하는 촛불집회를 두고 "한국은 너무 많은 민주주의(too much democracy)를 가졌다"고 추측했다. 이런 분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정치가 잘 될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대중이 너무 많은 민주주의를 가졌다는 인식 위에서 '대통령 비속어 영상' 스캔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라면, 이 정부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보다 더 박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대중이 선동당했다고 생각하기 전에, 스스로 '자기 최면'을 건 것은 아닐까 먼저 성찰해 보는 게 정치인이 갖춰야 할 기본 태도다. 사적 대화일지라도, 눈앞의 사실을 보도하는 게 저널리스트의 기본 태도인 것처럼.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오전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건군 '제74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열병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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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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