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지난 토요일 서울역에서는 '10.1 주거권 대행진'이 열렸다. 참석자들은 지난 8월 폭우 참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후재난이 가난하고 아픈 이웃들이 처한 주거불평등을 드러냈음에도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삭감한 윤석열 정부를 규탄했다. 세입자, 청년, 이주노동자, 장애인, 홈리스, 청소년, 철거민 등 주거문제 당사자들과 주거·노동·사회·복지단체들은 한목소리로 '불평등이 재난이다! 주거권 보장, 지금 당장!'을 외쳤다.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상품으로 만들고 심지의 사람의 생명에까지 가격을 매기는 이 시대에 대표적인 투자재가 되어버린 집. 집은 무엇인가? 집의 본질은 정착과 적절한 피난처라는데 있다. 우리는 누구나 폭우나 혹한 등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집, 내 소득과 형편으로 감당할 수 있는 집, 그리고 친구나 이웃을 초대하여 인간적 우애를 나눌 수 있는 집을 원하지 않는가.
이처럼 삶에 필수적이고 중요한 집이 우리의 건강과 관계가 없을 리 만무하다. 시민건강연구소에서는 집값 상승으로 인해 불가피한 '비자발적 이사',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집, 감염병에 취약한 좁고 밀집된 집, 임대료 체납으로 인한 퇴거 조치 등이 우리의 신체와 정신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들을 소개한 바 있다. 그래서 주거권은 곧 생명권이다.
주거권을 보장하라는 다양한 시민들의 요구는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주거정책의 공공성을 방기하고 경제정책의 수단 또는 정치적 지지 확보를 목적으로 동원되는 다음과 같은 정부의 조치들은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먼저 2023년 국토교통부 예산안에 따르면, 정부는 주택공급과 주택구입/전세자금 융자사업에서 민간건설사와 민간 금융기관의 역할과 비중을 늘렸다. 저소득층과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예산의 삭감과는 대조적으로 민간의 분양주택 공급과 분양주택 융자예산을 증액하고, 정부가 직접 시행하던 주택구입/전세자금 융자사업을 개인들이 민간 금융기관을 통해 먼저 대출받고 정부가 민간 금융기관에 이자비용 차이를 보전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였다.
이는 민간의 건설사와 금융기관들이 구매력 있는 개인을 상대로 상품화된 주택을 팔도록 함으로써 주거권 확보와 관련된 정부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주거권과 관련된 정부와 국민의 직접적인 관계 사이에 의도적으로 시장을 배치하여 민간사업체들이 사업기회와 이익을 확보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민간, 시장주도의 경제도약을 뒷받침한다'는 정부의 예산안 편성 기본방향과 같은 선상이라 볼 수 있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세제 개정안들은 이미 조세 형평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관련 정책에 대한 혹평에도 불구하고,(☞ 관련 기사 : <프레시안> 9월 30일 자 '집소유자 이익만 대변하는 두 거대정당') 지난 29일 정부는 또다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대폭 완화방침을 발표했다.(☞ 관련 기사 : SBS <나이트라인> 9월 30일 자 '힘 빠진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공급보단 집주인 위한 부자감세?') 주택가격의 안정과 부동산 자산격차를 해소하려는 취지로 만든 제도들이 오로지 집을 가진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 쉽게 변용되고 무력화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과연 무엇인지, 국민들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불평등을 강화하려는 이 정부를 그대로 용인해야 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8월 폭우 참사의 피해자들에 대한 많은 보고와 분석 중에 더욱 분노할만한 사실이 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국가의 주거급여를 받으면서 살고 있는 바로 그 집에서 수급자들이 죽는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그 이유는 공공임대주택이어도 반지하에 있거나 최저주거기준 미달 상황이 있기 때문이라 지적했다.(☞ 바로 가기 : LH·한국주거서비스소사이어티·한국주거복지포럼 주최 9월 28일 '국민주거안정 실현을 위한 정책 세미나')
부끄럽지 않은가. 국가의 보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에게 지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열악한 수준의 집이라는 사실이. 건전재정이나 긴축재정이라는 말은 실상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에게 돈을 쓰지 않으려고 할 때 정부가 내세우는 기만이 아닌가. 적어도 공공임대주택이 최저주거수준에 미달하지는 않도록, 이만하면 사람이 살 만한 수준의 집이라는 질적인 상향을 이루어 내는 일이 시급하다.
집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필수재이다. 사람들의 투기적 욕망, 정치인들의 이해득실, 민간기업의 판매상품으로의 기대가 각축을 벌이는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합의를 이끌고 규칙을 지키고 실현하는 일차 책임은 바로 국가에 있다. 만일 국가가 국민들에게 주거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못할 때, 그 쓸모없는 정치를 바꾸는 다음 책임은 우리 시민들에게 있다. 주거권 대행진에서 간절하게 울려 펴진 사람들의 호소를 기억하자.
여기 사람이 있다.
불평등을 타고 흐르며 우리를 삼키는 집, 이제는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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