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두 소녀를 죽음으로 몰았나 ... "이 죽음은 사회적 타살입니다"

대법, 청주 '친족 성폭력' 사망 사건 가해자에 징역 25년 확정

지속적인 성폭력 끝에 중학생인 의붓딸과 딸의 친구를 죽음으로 내몬 계부가 대법원 판결 끝에 징역 25년을 확정 받았다.

15일 오전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57세 남성 A 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여성·시민사회 단체는 "(대법원의 상고 기각은)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판결"이라면서도 "시스템이 어린 소녀들을 보호하지 못했다"며 사법부와 수사기관 등의 각성을 촉구했다.

청주여성의전화,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 '걔네', 전성협 등 청주시 및 전국단위 여성·시민사회 단체는 15일 대법원 선고 직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꿈 많은 두 소녀의 죽음 자살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다"라고 강조했다.

'청주 중학생 성폭력·사망 사건'으로 알려진 해당 사건은 가해자 A씨(57)가 의붓딸과 딸의 친구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성폭행 등을 저지른 사건이다. A씨는 지난해 1월 의붓딸인 B씨의 친구 C씨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며, B씨에게도 2013년부터 학대 및 성추행을 저질러왔다는 혐의를 받았다. 성폭력 피해 및 2차 피해 등으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오던 피해자들은 경찰 수사가 진행되던 지난해 5월 12일 청주시 오창읍의 한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열린 '청주 중학생 성폭력 사망 사건 대법원 선고 기자회견' ⓒ프레시안(한예섭)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활동가들은 피해자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 결국 "사회 전체의 시스템 미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건의 수사과정에서 피해자들은 "가해자와 가해자 주변인에 의한 회유·협박" 등에 시달렸으며, 피해자를 보호했어야 할 사회의 '안전망'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언에 나선 꿈마 군포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시 관계자는 학생들이 (보호조치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법과 피해자 탓을 했고, 경찰은 영장 신청이 반려됐다며 검찰 탓을, 검찰은 보강 수사가 필요했다며 경찰 탓을 했다. 교육청은 두 피해자가 사망한 이후에야 뒤늦게 사실관계를 파악했다"며 "(피해자들의 죽음은) 가해자의 범죄와 더불어 검찰, 수사기관, 지자체, 학교의 제도적 미개입과 미보호가 일으킨 죽음"이라고 지적했다.

친족 성폭력 범죄의 생존자들도 이날 현장을 찾았다. 회견장을 찾은 유민희 씨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은)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까봐, 말하면 소문이 날까봐, 혹시 나 때문에 가정이 붕괴될까봐, 내 이야기가 가족들에게 상처를 줄까봐 걱정한다. 어린 피해자들에게 이런 고민은 너무나 가혹하다"며 "어린 동생 같은 피해자들이 당시 어떤 심정이었을지 짐작돼 더욱 가슴이 아프다"고 연대의 발언을 전했다.

현장 활동가들에게 편지를 보내온 노유다 움직씨 출판사 공동대표는 대독된 편지를 통해 "'내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내 일도 아니야' ... 이런 말들로 세상에 적응해 가는 우리 모두가 공범"이라며 "아이들의 죽음은 포기가 아닌 침묵하는 세상에 대항하기 위한 마지막 외침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법원 선고로 법적 절차가 마무리된 청주 계부 성폭력·사망 사건은 친족 성폭력, 그루밍 성범죄, 아동학대 등 여성·청소년을 위협하는 각종 범죄가 집약된 양상을 보여줬다고 평가받고 있다.

김현정 청주여성의전화 상담소장은 "오늘 아침에도 여성 역무원이 한 남성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뉴스로 들었다. 지금 한국은 안전한 세상인가, (여성 시민들은) 정말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는가" 되물으며 "오늘의 (선고) 결과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두 어린 학생들에게 조그마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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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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