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갑질 신고했더니, 노동부 감독관이 다시 갑질"

시민단체, '근로감독관' 갑질 보고서 발표…"노동부 직무유기"

노동법 위반사항을 관리·감독하기 위한 근로감독청원제도가 "고용노동부의 직무유기" 아래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간공익단체 직장갑질119는 12일 '근로감독관 갑질 보고서'를 발표하고 △근로감독 청원 대비 낮은 근로감독 실시 비율 △늑장 대응으로 인한 낮은 사건 처리 속도 △근로감독관 개인의 업무 위반 및 갑질 사례 등을 현행 근로감독청원제도의 문제점으로 지목했다.

해당 보고서는 민주당 안호영 의원실이 제공한 고용노동부 통계와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이메일 제보 사례를 분석해 작성됐다.

근로감독관은 보복성 불이익 등으로 사업장 내의 노동법 위반 사항을 신고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사업장의 법 위반 사항 등을 관리감독하기 위해 존재한다. 노동자가 근로감독 청원을 신고하하고 해당 사업장에 감독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근로감독관은 근로감독관집무규정 제 12조에 따라 해당 사업장에 대한 불시·수시 감독을 실시할 수 있다.

그러나 직장갑질119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 현장에서 근로감독청원제도는 신청 단계에서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다. 2021년 기준 근로감독 신청 건수는 2740건이었는데, 실시 건수는 874건으로 31.9%에 불과했다. 신청된 10건의 사항 중 실제 근로감독은 3건만 실행된 꼴이다.

단체는 "문제는 근로감독 실시 비율이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노동부가 사실상 제도를 방치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6년 69.2%, 2017년 74%, 2018년 70.8%였던 '청원 대비 근로감독 실시율'은 2019년 51.6%, 2020년 33.1%, 2021년 31.9%로 감소해왔다. 올해 상반기엔 29.2%로 최초 20%대의 비율을 보이기도 했다.

직장갑질119 측에 이메일로 접수된 근로감독 신청 거부 사례를 살펴보면, 소위 '업체 쪼개기'로 불리는 사업장 분리로 인한 신청 거절, 프리랜서 노동자에 대한 근로자 지위 불인정로 인한 신청 거절 등 노동법상의 '사각지대'가 근로감독청원제도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직장갑질119 측은 감독관의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제시했다. 근로감독관 1인당 감독해야 하는 사업장 수, 사건 수는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데, 감독관의 평균 처리 일수는 그만큼 줄어들고 있지 않다는 게 단체의 지적이다.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근로감독관 1인당 사건은 307건에서 2021년 157건으로 49% 줄었고, 1인당 사업장 수는 2016년 1646곳에서 2021년 1073건으로 35% 감소했다. 같은 기간 평균 처리 일수는 2016년 48.1일에서 2021년 41.6일로 4.2% 줄어드는 데 그쳤다.

현행 근로감독관집무규정에 따르면 근로감독관은 사건이 접수된 날로부터 25일, 업무 과중 등으로 연장이 불가피할 경우 50일 이내에 결과를 진정인에게 통보해야 한다. 재연장이 필요할 경우 감독관은 신고인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매월 1회 이상 전화 등으로 처리 지연 사유와 예상 처리기일을 통보해야 한다.

그러나 단체에 접수된 근로감독관의 갑질 사례를 보면 이러한 규정은 빈번히 어겨졌다. 담당 근로감독관이 전화가 연결된 적이 없다거나, 메일에도 3~4일 정도 회신하지 않는 경우, 혹은 "결과도 제대로 공유받지 못해 진정인이 우연히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처리 결과를 확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근로감독관 개인은 담당 사건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구조로 인해 근로감독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신고인이 근로감독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지적됐다.

단체는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접수하면 그 민원이 해당 근로감독관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근로감독관 집무 규정 제34조의 3은 노동자가 근로감독관 기피신청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지만 사유가 매우 협소하고 사유에 대해 과장이 판단하기 때문에 각하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감독관이 회사의 편을 드는 등 편파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감독 업무에 성실히 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노동자 입장에선 마땅히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직장갑질119 신고 센터에는 △감독관이 회사의 편을 들며 일방적인 화해를 종용한 경우 △회사가 임금대장 등 필요서류를 제출하지 않음에도 이를 문제 삼지 않은 경우 △감독관이 노동자의 근무 태도 등을 지적하며 신청인의 진정을 무시한 경우 등이 감독관 갑질 사례로 접수됐다.

이에 직장갑질119는 △근로감독관의 질적 역량 강화 △근로감독관 규정 위반 전담 신고센터 운영 △사건 처리 절차 및 진행 상황 고지 △재진정 지침 개정 △진정인 입증책임의 경감 △근로감독관 감수성 강화 등을 근로감독신청제도의 개선 방안으로 제시했다.

단체 소속 권호현 변호사는 "직장인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제일 먼저 찾는 게 근로감독관"이라며 "노동부는 이러한 (제도에 대한) 신뢰 추락을 엄중히 인식하고 신속히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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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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