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원전 올인'에 기후도 국민도 뒷전

[함께 사는 길] 누가 원전 부활이 대세라 말하는가

지난 8월 17일 취임 100일을 맞은 윤석열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어 그간 정부의 노력과 향후 과제를 제시했다. 115년 만의 기록적인 집중 호우로 인한 피해가 발생한 직후였지만, 대통령의 발언에 '기후'라는 단어는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 '피해 지원과 복구'와 같이 이번 폭우를 자연재해의 일환으로만 대하는 인식을 드러냈다.

탈원전 폐기 반대 여론 높아

에너지 전환 기조도 들을 수 없었다. 반면 원전 산업의 부활에 대해서는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스스로를 추켜세웠다. 윤 대통령은 "탈원전 정책을 폐기함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의 원전 산업을 다시 살려냈"고 원전 세일즈 외교 덕분에 해외 원전 발주 움직임이 시작됐다며 "앞으로도 제가 직접 발로 뛸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전 세일즈맨'으로서의 대통령 이미지가 지지율을 올리는 데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는지 모르지만, 여론은 반대였다. CBS가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탈원전 정책 폐기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만 18세 이상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 결과 '탈원전 정책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응답이 47.5%, '탈원전 정책은 폐지되어야 한다' 응답은 37.8%로 조사됐다.

원전 확대는 전 정부에서 추진했던 에너지 전환 정책 방향과 차별화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탄소중립부터 한전 적자와 전기요금 인상,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이르는 문제를 해결할 가장 중요한 해법이 원전 활용이라는 논리가 만들어졌다. 특히 올해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촉발된 국제 에너지 가격 인상과 공급망 불안은 각국이 '에너지 안보' 이슈에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윤석열 정부는 에너지 위기에 따른 해외 국가들의 원전 회귀 움직임을 국내 원전 확대 정책의 주요 명분으로 내세운다. 이와 관련한 해외 정책 동향을 살펴보는 한편 한국의 상황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도 분석하고자 한다. 아울러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돌파하기 위해 원전 확대는 불가피하고 효과적인 대안인지도 따져본다.

▲ 고리원자력발전소. ⓒ함께사는길(이성수)

유럽이 친원전으로 회귀? 사실은

우선, 최근 각 정부의 원전 정책에 변화가 있는 건 사실일까. 러시아 침공에 따른 가스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유럽의 경우,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는 한편 재생에너지 목표를 상향하기로 했다. 지난 6월 영국의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가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유럽 27개국이 발표한 정책에 따라 2030년 전력 비중의 변화가 예상된다. 2030년 화력발전 비중은 기존 26%에서 18%로 하락하는 반면 재생에너지 비중은 기존 55%에서 63%로 높아졌다. 원전 비중은 19%로 그대로 유지된다. 에너지 위기를 맞은 유럽 국가들이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다만, 일부 국가는 원전 정책을 수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럽의 최대 원전 운영국인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원전이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9%에 달하는 프랑스는 원전 비중을 낮출 방침이었지만 올해 2월 원전 부활을 선언하며 25기가와트(GW) 규모의 원전 14기를 추가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프랑스 원전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원전 건설 공사기간과 비용은 계속 상승 추세다. 프랑스전력공사(EDF)가 건설 중인 플라망빌 3호기 원전은 당초 33억 유로의 건설 비용으로 2012년 완공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원전은 아직 건설 중이며 준공 예정일은 2023년으로 연기됐고 건설 비용 역시 127억 유로로 껑충 뛰었다. 올해 역대급 가뭄으로 프랑스 원전 절반이 가동을 멈추는 등 프랑스전력공사 재정 악화도 문제다. 프랑스의 원전 확대 계획이 실제 현실화될지 낙관할 수 없는 이유다.

벨기에의 경우, 애초 2025년 원전을 모두 폐지하기로 했지만, 러시아발 위기에 따라 지난 3월 원전 가동을 10년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수명 연장 대상은 도얼 4호기와 티앙주 3호기 등 원전 2기다. 다만 벨기에 정부는 원전 운영사인 프랑스 업체 엔지와 원전 수명 연장과 관련한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앞서 엔지는 벨기에 정부 발표에 대해 원전 수명 연장에 따른 안전 문제와 규제 불확실성이 크다며 상당한 의구심을 표한 바 있다. 최근 벨기에 총리는 올해 말까지 최종 합의에 도달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외에, 그리스와 불가리아가 원전 공동 건설과 관련해 협의 중이다.

독일이 올해 말로 예정된 최종 원전 폐쇄 일정을 번복하고 녹색당마저 친원전으로 '유턴'했다는 식의 국내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는 대체로 사실이 아니다.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사민당)와 로버트 하벡 경제기후보호장관(녹색당)은 반복적으로 탈원전 기조를 분명히 해왔다. 그럼에도 국내에 독일의 원전 정책 번복이라는 식의 보도가 나오게 된 배경은 원전 수명연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장관(자민당)의 발언 때문이다. 현지 언론 보도를 보면, 독일 정부는 원전 수명 연장이 타당한지와 관련해 8월 말까지 진행되는 전력계통에 대한 2차 평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앞서 3월에 진행된 1차 평가에서는 원전 수명 연장이 현재 에너지 위기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에너지 위기를 재생에너지 확대 기회로 삼는 유럽

국내 언론이 주로 소개하는 유럽 동향을 보면, 원전을 확대하거나 폐지를 유예하겠다는 발표가 있긴 했지만, 이는 일부 국가, 특히 프랑스 같이 원전 의존도가 전통적으로 높은 국가들에 국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마저도 원전 비용 상승과 강화된 안전 규제에 따라 건설 계획이 이행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원전으로 회귀하는 흐름을 대세라고 보기에는 무리라는 의미다.

유럽 국가들의 탈원전 정책에 다소 제동이 걸리거나 원전 활용으로 일부 회귀하는 흐름이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여기엔 한국 사정과는 다른 차이점이 있다. 첫째, 유럽은 러시아 화석연료 수입 의존을 완전히 그리고 신속하게 줄이려는 강력한 행동을 취하고 있다. 지난 5월 18일 발표된 유럽연합의 '리파워이유(REPower EU)' 계획은 러시아산 화석연료로부터 에너지 독립을 이루고 녹색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목표와 방향을 담았다.

2030년까지 에너지 소비량 감축 목표를 기존 9%에서 13%로 상향하고, 재생에너지 1차에너지 비중 목표도 기존 32%에서 45%로 높였다. 발전량을 기준으로 하면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는 69%로 올라간다.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2100억 유로의 신규 투자가 필요하지만, 화석연료 수입 비용을 줄여 해마다 1000억 유로를 절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유럽연합 내 러시아 화석연료 최대 수입국인 독일의 경우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석유와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할 예정이다. 가스의 경우, 2024년 여름까지 러시아 수입을 종료할 계획이다.

반면, 한국 정부는 러시아 화석연료 수입을 줄이려는 특별한 정책 방향을 발표하지 않았다. 기후 에너지 분석기관인 <에너지청정대기연구 센터(CREA)> 데이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100일 동안 한국은 화석연료 구입비로 약 30억 유로를 러시아에 지불했다. 한국의 러시아 화석연료 수입액 규모는 석탄 5위, 석유 7위, 천연가스 8위로 나타났다.

에너지 위기를 맞아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도 없다. 정부가 지난 6월 23일 '시장원리 기반 에너지 수요효율화 종합대책'을 발표해 2027년까지 에너지 소비량 감축 목표를 제시했지만, 이전 정책 목표보다 후퇴됐다. 국내 에너지 소비량은 2000년 이후 연평균 2.3% 증가하는 추세지만, 정부가 에너지 감축에 대해 무기력한 신호를 보낸 셈이다. 올여름 전력 수요 역시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책 초점이 에너지 소비 감축보다는 원전과 같은 대규모 발전원을 통한 공급 위주로 여전히 맞춰져있다는 방증이다.

또 다른 뚜렷한 차이는 에너지 위기를 재생에너지 확대 기회로 삼는 데 있다. 원전 확대는 매우 일부 국가에 한정된 움직임인 반면, 재생에너지 보급 촉진은 공통적 추세다. 화석연료 가격이 크게 솟구치면서 재생에너지 경쟁력 역시 올라갔다. 재생에너지는 프로젝트 개발과 공사 기간이 짧아 단기적으로 화석연료를 대체해 에너지 안보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운영 과정에도 원전이나 화력발전처럼 연료비가 들지 않아 장기적으로 에너지 요금을 줄이는 데도 긍정적이다.

앞서 프랑스가 25GW의 원전을 추가 건설하겠다고 소개했지만, 재생에너지 확대 규모는 이를 넘어선다. 프랑스는 2050년까지 해상풍력 40GW, 육상풍력 37GW를 확대할 계획이다. 독일은 2030년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을 기존 65%에서 80%로 상향하기로 했다.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벨기에는 지난 5월 북해에 2050년까지 해상풍력 150GW를 공동 개발하는 사업 계획에 합의했다. 영국은 내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를 15% 확대하고, 2035년까지 태양광을 5배로 늘릴 계획이다. 50GW 규모의 해상풍력도 추진한다. 유럽 19개국은 코로나19와 에너지 위기를 지나는 지난 2년 사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더 강화하기로 발표했다.

최근 극적인 소식은 미국에서도 들려왔다. 지난 8월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막대한 투자 방안을 포함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면서 이를 법률로 확정했다. 이 법의 핵심 목표는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고 고유가로 인한 국민 에너지 비용부담을 줄이며,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로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

4400억 달러의 정책 지출 예산 중 3750억 달러(약 489조 원)는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40% 감축하기 위한 사업에 투입될 예정이다. 재원은 연 매출 10억 달러 이상의 대기업에 최소 15%의 법인세를 부과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마련된다. 청정에너지 공급망 전반에 약 600억 달러를 투자하여 2030년까지 태양광 패널 9억5천만 개, 풍력발전기 12만 기, 배터리 발전소 2300개를 가동할 예정이다.

원전 올인에 기후도 국민도 뒷전인 한국

재생에너지 확대에 막대한 투자 흐름에 따라 세계 에너지 산업의 지형 변화가 예상된다. 이는 무역뿐 아니라 국내 산업과 일자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글로벌 기업들의 RE100(재생에너지 전력 100% 조달) 이행 요구와 미국과 유럽 등의 탄소국경조정제도와 같은 새로운 무역장벽에 대비하지 않는 상태를 방치하다간 국내 경제는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속도 조절'하겠다며 뒷전인 반면 원전 산업계 살리기에만 올인하겠다는 식의 기조에 매몰돼있다. 윤석열 정부의 원전 부흥 정책에 기후도 국민의 살림살이도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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