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가스 공급 중단" 맞서 유럽 "겨울 충분히 버틴다"지만…

전문가들 "길어야 석달 분량"이라며 '절약' 당부

러시아가 독일로 향하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1 가동 재개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표는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이 러시아산 원유에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한 직후 이뤄졌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EU) 국가들은 가스 저장고 확충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고 시민들을 안심시켰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길어야 석달"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러시아가 기술적 문제로 3일(현지시각) 재가동이 예정됐던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 가동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당초 러시아 쪽은 가스관 수리를 이유로 지난달 31일 새벽부터 이달 3일 새벽까지 3일간 노르트스트림1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는데 이 조치를 연장할 방침을 밝힌 것이다. 

러시아 쪽은 지난 7월에도 수리를 이유로 한 차례 노르트스트림1을 통한 가스 공급을 중단한 바 있고, 이후 가동이 재개된 뒤에도 공급량은 용량의 14% 수준에 머물렀다. 재차 가동 중단을 선언한 지난달 31일부터는 노르트스트림1을 통해 가스가 전혀 공급되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제재에 맞서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유럽은 가스 공급의 40%가량을 러시아에 의존해 왔다.

유럽 각 국은 러시아의 가스 공급 재개 연기 통보에도 올 겨울을 충분히 버틸 수 있다며 시민들을 안심시켰다. 유럽연합은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 중단에 대비해 난방 수요가 커지는 겨울이 오기 전 11월까지 가스 저장고 80%를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해 왔고 지난달 말 그 목표를 조기달성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55%에 달했고 노르트스트림1으로부터 직접 가스 공급을 받고 있던 독일도 10월께 자체 목표인 저장고 85% 확충을 조기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를 보면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2일 발행된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로부터의 공급이 다시금 줄어들더라도 겨울을 잘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체는 독일이 전쟁 이후 노르웨이·네덜란드·벨기에 등에서 가스 공급을 받으며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10%가량으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독일 에너지부 대변인은 2일 성명을 통해 "우리는 최근 몇 주간 러시아를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이에 따라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으로부터 우리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조치를 지속해 왔다. 그 결과 몇 달 전보다 훨씬 더 잘 준비된 상태"라고 밝혔다. 3일 유럽연합(EU) 경제 담당 집행위원 파올로 젠틸로니는 EU가 "러시아의 가스 무기화에 저항하는 데 잘 준비돼 있다"며 "우리는 푸틴의 결정이 두렵지 않고 러시아가 계약을 존중하기를 바라지만, 그러지 않을 경우 반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안심하기에는 이른 상황이라고 경고한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영국 컨설팅업체 오로라에너지리서치는 가스 저장고를 다 채우더라도 유럽 국가들이 "길어야 석달"을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겨울을 버티는 데 저장고를 채우는 것보다 수요 감소가 더 중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화학시장 정보제공업체 ICIS는 <로이터>에 겨울 공급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는 유럽 각 국이 지난 5년 평균보다 가스 사용량을 15%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ICIS에 따르면 8월 첫 보름 간 유럽의 가스 소비는 지난 5년 평균에 비해 11% 감소했다. 독일의 경우 산업용 가스 사용이 7월 2018~2021년 평균에 비해 21% 급감하기도 했지만 다른 달에는 14% 이상 감소한 적이 없다. 

독일 정부는 이달부터 가스를 이용한 개인용 수영장 가열 금지, 공공 장소에서의 조명 제한 등 각종 에너지 절약 방침을 도입했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제한에 특히 취약하다고 지적돼 온 독일의 경우 올 겨울 가스 사용량을 20~25% 이상 줄여야 버틸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EU 회원국들은 지난 7월 올 겨울 가스 사용량을 2017~2021년 겨울 평균보다 15% 줄일 것을 합의한 바 있다. 

러시아 쪽은 이번 가스 공급 재개 연기가 노르트스트림1에 가스를 공급하기 위한 시설인 포르토바야 가압기지의 가스터빈에서 기름 누출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터빈 수리를 담당하는 독일 지멘스 에너지는 "그러한 누출은 일반적으로 터빈 작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현장에서 고칠 수 있다. 과거에는 이러한 유형의 누출로 인해 운영이 중단되지 않았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러시아의 공급 중단 발표는 G7( 영국·미국·캐나다·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이 러시아산 석유에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한 직후 나왔다. 2일 G7 재무장관들은 화상회의 뒤 공동성명을 내 "가격 상한제는 러시아의 전쟁 자금 조달 능력과 (원유 판매) 수입을 줄이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이라고 밝혔다. 

가격 상한제 도입은 EU의 러시아 원유 수입 전면 금지 기일인 오는 12월 5일에 맞춰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상한 가격에 대한 구체적 사항은 제시되지 않았다. <로이터>에 따르면 올렉 우스텐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경제고문은 상한선이 배럴당 40~60달러선으로 책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배럴당 120달러까지 치솟았던 국제유가는 최근 침공 직전 수준인 93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가격 상한제의 효력은 상한 가격의 수준과 얼마나 많은 국가가 동참할지에 따라 크게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석유 수입을 줄여 왔지만 인도 등은 고유가 상황에서 가격 할인의 이점을 누리며 오히려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늘려 왔다. 다만 <파이낸셜타임스>는 미 재무부 고위 관리를 인용해 상한제에 명시적으로 동참하지 않은 국가들도 러시아 원유 구매 때 상한제를 이용해 더 낮은 가격에 협상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러시아 쪽은 이미 지난 1일 가격 상한제를 도입한 국가에는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바 있다.

▲지난 3월 8일(현지시각) 독일 루브민에서 촬영된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 설비.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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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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