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도 아닌데 기분이 팍 상하고, 괜히 서럽고 눈물부터 나요"

[그녀들의 맛있는 한의학] 22화. 정신력도 체력에서 나온다.

"기가 부족하면 병이 생긴다. '영추'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병의 기운이 머무는 곳은 모두 정기가 부족하다. 상부에 기가 부족하면 뇌수가 채워지지 않아서 이명이 생기고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고 눈이 침침해진다. 중기가 부족하면 대소변에 문제가 생기고 장에서 꾸르륵 소리가 난다. 하부에 기가 부족하면 다리에 힘이 없어지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氣不足生病. 靈樞曰 邪氣所在 皆爲不足. 故上氣不足 腦爲之不滿 耳爲之苦鳴 頭爲之傾 目爲之瞑. 中氣不足 溲便爲之變 腸爲之苦鳴. 下氣不足 乃爲痿厥心悗."

- 동의보감 내경편 권1 기(氣) 중에서

"요즘은 돌아서면 잊어 버리고, 눈이 침침해서 책도 오래 못 보겠어요."

"조금만 싫은 소리를 들어도 기분이 팍 상하고, 별일도 아닌데 괜히 서럽고 눈물부터 나요. 안 그래야지 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러네요."

"뭘 하다가도 갑자기 멍~ 할 때가 있어요. 당최 집중이 안 돼요."

"걷는데 둥둥 뜬 것처럼 발이 땅을 밟는다는 느낌이 없어요. 하체 힘도 부쩍 떨어진 것 같고요. 자꾸 한숨만 나오고 만사 귀찮아요."

병을 살피다 보면 같은 병이지만 사람마다 증상이 다를 때가 있고, 증상은 같아 보여도 그 원인은 다를 때가 있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땐 당장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발 방지를 위해서 사건의 경위를 조사하는 것도 중요하다. 병도 마찬가지다. 급한 증상을 해결하는 것 만큼이나 병의 이유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증상에 맞춰 병을 치료하는 것을 대증요법이라고 한다. 한의학을 포함한 모든 의학의 치료법은 대증요법이다. 다만 증상에 대한 대응(대증·對症)을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의학은 병이 생긴 일련의 흐름을 밝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 개인의 심리상태와 사회적 불평등에 닿기도 하고, 가족의 유전적 요인이나 임신 중 엄마의 몸과 마음의 상태에 닿기도 한다. 만성질환의 경우 병과 환경과 치료와 시간이 서로 얽히고설켜서, 하나씩 치료해 가다 보면서 비로소 병의 실체가 드러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일이란 결국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의사와 환자의 협업을 통해 환자가 ‘성장’의 과정을 겪을 때, 치유를 통해 인생이 바뀔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중한 병을 앓는다고 해도 돈을 쓰면서 고생만 할 뿐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멘탈이 무너지고, 기억력이 감퇴하고, 우울하거나 짜증과 화가 올라오고,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고, 작은 일에도 가슴이 두근대고 숨이 안 쉬어진다는 환자들이 있다. 그런 이들이 한의원에 올 때는, 병이 생긴 지 꽤 시간이 흘러 이미 신경정신과 처방을 받았거나 다양한 보조식품을 복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정신 및 감정에 관한 다양한 문제를 호소하는 환자들 중에는 기력과 체력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힘이 떨어진 것이 먼저일 수도 있고, 병에 시달리다 보니 지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회복에 필요한 신체적 에너지가 없는 상태에서 감정과 정신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은 어렵다.

한의학에서는 사람을 크게 정신(심心)·감정(기氣)·몸(체體)으로 나누어 본다. 이 세 영역은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고 서로에게 기대어 기능하는 상호 피드백 시스템으로, 어느 하나가 무너지면 나머지도 천천히 무너지게 된다.

체력이 떨어지면 정신기능이 저하되고 감정조절이 잘 안 된다. 감정 컨트롤이 안 되면 몸은 쉽게 지치고 정신집중이 어려워진다. 정신이 바로 서지 못해 생각이 삐뚤어지면 감정과 몸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엉망이 된다. 이런 연관성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살면서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따라서 체력이 떨어져 있다면 정신과 감정의 문제라고 해도 그것에만 집중해서는 잘 낫지 않는다. 환자가 말하는 증상을 조절하면서도 체력을 보충해서, 감정과 정신을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물길을 터주면서도 그 길에 물을 대주어야 논과 밭의 곡식이 잘 자라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본인이 정신과 감정을 갈아 넣는 정신노동자 혹은 감정노동자라면 평소에 좋은 체력을 유지하는 데 소홀해서는 안 된다. 물 위로 드러난 고고한 정신과 우아한 감정을 유지하고 싶다면, 쉼 없는 물갈퀴질을 통해 체력을 키워야 한다.

체력이 차야 감정이 살고 정신이 맑다.

ⓒ고은정

그녀들을 위한 레피시 : 인삼마유

동의보감 내경 편의 기(氣) 부분을 읽다보니 나는 상부와 하부, 중기 모두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심란하다. 나이가 드니 그럴 수 있으려니 하다가도 내 몸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생활 패턴과 백신접종 후 생긴 부작용, 마스크의 생활화와 과도하게 조심하면서 생기는 자신감의 결여 등으로 몸과 마음이 엉망이 된 상태에서 나온 걱정일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앞으로의 일정을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생각이 염려가 되고 급기야 그 염려가 내 몸으로 나타나는 상황을 만났다.

잡생각이 많아지면 내 몸은 가장 먼저 먹은 음식을 소화해내지 못한다. 소화가 안 되면 다음으로 두통이 찾아오고, 두통이 심해지면 생각이 멈춰진다. 이쯤 되면 나는 모든 일을 접고 두문불출해야 한다. 그렇게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속을 달래며 두통을 이겨내는 시간을 가진다. 길게는 열흘도 간다.

그런 시간엔 정신 상태가 무너진다. 때로 우울하고 때로 짜증이 나며 때로 분노로 치를 떨며 대체로 잠을 설친다. 그러다 나를 괴롭히던 증상들로부터 해방이 되면, 기운이 없고 만사에 의욕이 없어진다. 아주 천천히 오래도록 누룽지를 끓여 물인지 죽인지 모를 상태로 떠서 마신다. 조금씩 몸이 회복되지만 걸을 때마다 허공을 떠다니는 기분을 느낀다.

이쯤에 나는 인삼마유를 만들어 조금씩 마신다. 입에서 오래 머물게 하며, 머무는 동안 건더기는 없지만 천천히 씹어서 삼킨다. 우유가 마와 인삼, 꿀을 만나고 어우러져 한 모금 마시면 우유의 부드러움에 갈린 마의 매끈함과 인삼의 향과 맛이 더해져 입안에서 춤을 춘다. 꿀이 적당하게 들어가 마시는 순간 기분마저 달달해진다. 달달해진 기분은 몸을 일으키니 이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체력이 차서 감정이 살고 정신이 맑아진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면 된 거다.

<재료>

인삼 1뿌리(6년근 80g), 마 200g, 우유 800ml, 꿀 1큰술

<만드는 법>

1. 인삼은 뿌리째 깨끗하게 씻어 뇌두를 잘라내고 물기를 제거한 후 잘게 썰어

놓는다.

2. 마는 깨끗하게 씻어 껍질을 벗긴 후 잘게 잘라 놓는다.

3. 푸드 프로세서에 손질해 썰어 놓은 인삼과 마, 꿀을 넣고 우유 한 컵과 함께

간다.

4. 재료가 다 갈아지면 남은 우유를 넣고 한 번 더 간다.

5. 그릇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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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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