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차 한잔 하실래요'…내 몸의 울체를 풀어내는 방식

[그녀들의 맛있는 한의학] 21화. 모든 병은 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기의 흐름이 막히면 습이 쌓이고, 습이 쌓이면 열이 발생한다. 열이 몰리면 담이 생기고, 담이 쌓이면 혈의 흐름이 정체된다. 혈의 흐름이 막히면 먹은 것이 소화되지 않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몸속에 덩어리가 생긴다. 이 여섯 가지가 서로 원인이 되어 병을 만든다.

氣鬱而濕滯 濕滯而成熱 熱鬱而成痰 痰滯而血不行 血滯而食不消化 而遂成痞塊 此六者相因而爲病也"

-동의보감 잡병편 권6 적취(積聚) 중에서

"점심을 급하게 먹었더니 체했나 봐요, 명치가 꽉 막힌 듯 답답하고 어지럽고 식은땀이 나요."

"등에 담이 결렸나 봐요. 아침부터 아프더니 이제 목도 잘 안 돌아가요."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진통제를 먹었는데도 견딜 수가 없어요."

한의원에는 정말 다양한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오는데, 하루에 꼭 한 명 정도는 위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환자를 만난다.

그중 대부분의 환자가 침 치료를 원하는데, 환자 본인이 침의 효과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거나, 이런 증상에 침을 맞으면 좋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는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通則不痛 不通則痛)'고 하는데, 막힌 흐름을 통하게 하는데 침이 효과적인 것을 환자들도 아는 것이다.

이때 같은 증상이라도 병의 뿌리가 깊지 않고, 갑자기 생긴 병이라면 침으로 잘 풀린다. 그러나 만성화된 병이거나 겉으로 드러난 증상이 다른 병의 표현인 경우는 그 이유를 찾아서 치료한다.

한의학에서 인간의 몸은 외부 환경과 소통하는 개방형 시스템이자 쉼 없이 변화하고 흐르는 역동적인 순환시스템이다. 먹는 음식과 숨 쉬는 공기, 그리고 자극과〮 기후변화에 맞춰 흐름을 조정해 내부 항상성을 잘 유지하면 우리 몸은 건강하게 유지된다. 반대로 흐름에 문제가 생겨 더 이상 일정한 균형을 유지할 수 없게 되면 병이 난다.

한의학 치료에서 '기'의 생성과 움직임을 중시하는 것은 바로 이 기가 내부 흐름을 조절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제 앞서 인용한 동의보감의 구절을 살펴본다.

기(氣)의 흐름이 울체되면서 생긴 문제는 점점 습(濕) - 열(熱) - 담(痰) - 혈(血) - 식(食)과 비괴(痞塊)의 문제로 진행되는데, 이 여섯 가지가 서로 원인이 되어 병을 만든다고 했다.

먼저 이 말을 순차적으로 풀어본다.

어떤 원인에 의해 기의 흐름이 막히는 기울(氣鬱)의 상태가 발생하면, 순환이 떨어지면서 몸속에 습이 쌓이게 된다. 우리 몸은 어떻게든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순환시스템에 과부하를 거는데 여기서 열이 발생한다. 염증이 생기면 붓고 열이 나는 것을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해소되면 좋은데, 부단히 애를 쓰는데도 기의 흐름이 원활치 않으면 이때 발생한 열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마치 잼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체액이 좀 끈끈한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이것을 '담'이라고 표현했다. 요즘 말로 하면 '염증'으로 대표되는, 산화적 스트레스에 의한 손상으로 생긴 물질들이 다 처리되지 못하고 몸속에 쌓이는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긴 보다 유형화된 물질은 혈액의 순환까지 방해하게 되고, 이로 인해 몸속 장기들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게 된다. 외부에서 들어온 물질을 내 것으로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이러한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적취(積聚)'라고 표현하는 유형의 덩어리가 몸속에 생기게 된다. 양성과 악성의 차이는 있겠으나 각종 종양의 발생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서로 원인이 되어 병을 만든다고 했으니, 실제 병은 이렇게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여름철 무더위처럼 습열이 증가해서 병이 나기도 하고, 크게 다쳐서 생긴 어혈이, 혹은 상하거나 과한 음식이 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시작된 악순환이 풀리지 않으면 결국 점점 더 중한 병으로 진행되고 만다. 이 악순환의 흐름을 끊고 좋은 흐름을 회복하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흐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손에 잡히는 형태가 없는 기의 흐름이 '습열 – 담 – 혈- 적취'와 같은 유형의 상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병을 치료할 때도 기의 흐름을 순조롭게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화를 내리고 담과 적취를 제거하는 것을 그 정도에 맞게 한다고 했다.

두 번째는 병을 만드는 흐름이 실제로는 우리 몸이 스스로 문제를 부단히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는 것이다. 병이지만 그 과정은 생리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체는 이런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노력이 성공하면 건강하고 실패하면 병이 날 뿐이다. 만약 우리가 이런 눈물겨운 노력을 좀 알아주고 도와준다면 더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관리의 핵심은 뭔가 특별한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알아주고 애쓰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다.

사람이건 사회건 병이 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겉으로 드러난 것을 없애는 데만 초점을 맞추기 쉽다. 물론 잘못된 방법은 아니다. 이러한 접근은 드러난 병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건강하다면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다. 하지만 먹는 것이 체하고, 담이 결리고, 생리통이 있고, 종양이 생기는 것이 몸속 흐름의 악순환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잠깐 겉의 증상을 걷어내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악순환의 원인을 찾고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과 무너진 흐름을 회복시킬 수 있을 때 진정한 회복이 가능하다. 그리고 모든 회복은 울체된 것을 푸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고은정

그녀들을 위한 레시피 : 된장차

덥고 습한 여름의 정중앙이다. 어쩌면 이미 나의 몸은 기의 흐름이 막혀서 습(濕)이 쌓이고, 그로 인해 열도 발생해 혈의 흐름이 정체된 영향으로 콱 막혀 있었나 보다. 그러니 체했을 것이다.

까짓 냉장고 고장이 뭐 별거라고 그 때문에 체했겠나. 강의 부탁하는 사람들의 갑질쯤이야, 먼지 털 듯 가볍게 털 수 있는 내공이 쌓였을 시간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자잘한 실수 등으로 마음이 불편해 체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마치 여름이라서 체한 것인 양 여름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면서 약을 먹고 잠을 잤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머리도 살짝 아프고 몸도 평소보다 무거운 느낌이다. 남은 냉장고 정리를 해야 하고 AS도 받아야 하지만 몸이 영 말을 듣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그랬다. 나는 소화가 안 되면 두통이 따라오고 두통이 시작되면 온몸이 다 막힌 것 같은 느낌으로 살기 싫어질 만큼 고통스러워졌었다. 그래서 두려우니 공연히 남편에게 짜증을 내게 된다.

그러다 김치냉장고를 뒤져 며칠 전 마련해둔 멸치육수를 꺼낸다. 냄비를 찾아 육수를 붓고 된장을 한 스푼 넣어 불에 올린다.

된장물이 끓기 시작하면서 집안 가득 된장국 냄새가 퍼진다. 맛보지 않아도 이미 맛있을 것이다. 먹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이 주는 위안을 얻는 시간이다. 오래 끓이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 된장은 충분히 끓였을 때에야 비로소 더 부드럽게 구수하므로 불을 줄이고 조금 더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된장이 끓는 냄새는 코를 통해 내 몸 안에서 오장육부를 자극하고 들쑤시며 깨우니 벌써 막힌 곳이 뚫리고 머리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그러는 사이 마음을 사납게 만들던 것들도 사라지고 나는 유순해져 엄마가 차리는 밥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된다.

조금 큰 컵에 다 끓여진 된장 물을 넉넉히 담아 식탁에 앉는다. 따뜻한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안으니 전해진 손의 온기가 위장까지 도달하는 기분이다. 후루룩, 한 입 들이키는 순간 나의 몸과 마음은 잘 소통되던 이전의 나로 돌아와 있었다.

<재료>

멸치육수(혹은 물) 3컵, 된장 1큰술, 실파 1뿌리(생략 가능)

<만드는 법>

1. 냄비에 육수를 넣고 불에 올린다.

2. 된장을 육수에 푼다.

3. 물이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10분 이상 더 끓인다.

4. 실파를 송송 썰어 그릇에 담은 후 끓인 된장물을 부어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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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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