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신역 앞, 갑자기 이상한 자전거 보관소가 괴물처럼 들이닥쳤다

[기고] "그린모빌리티 주민협치 모델 만들자"

8월 들어, KTX의 시발역인 경기도 고양시 행신역에서 매일 주민들이 피켓팅과 서명활동을 벌이고 있다. 고양시가 행신역 앞에 설치한 대형 '자전거보관소' 구조물을 이전하라는 주민들의 활동이다.

이상하다. 동네에 자전거보관소가 설치되면 좋은 일 아닌가? 기후위기를 맞아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해야하는 것 아닌가? 물론 그렇다. 기후 위기 시대에 주민들이 자전거를 이용하는 그린모빌리티는 장려되어야 한다. 이 목적에 부합하는 구조물이라면 환영해야 한다.

행신역 앞 자전거보관소를 둘러싼 고양시와 주민들의 갈등

그런데 주민들은 행신역에 설치된 자전거보관소가 이 취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적합 구조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자전거보관소가 들어선 위치가 문제이다.

▲ 경기도 고양시 행신역 앞 광장 인도 절반을 차지한 대형 자전거보관소 구조물. 행신역 삼거리 횡단보도 바로 앞이기도 하다. (사진제공: 대책위)

행신역은 KTX 역사로는 광장 공간이 좁은 편이다. 역사를 나오면 행인들이 오갈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계단을 내려오면 광장 겸 인도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행신역 앞 딱 중앙 위치 인도의 절반을 차지하는 대형 구조물이 들어선 것이다. 도로를 따라 확 틔었던 인도의 시야가 순식간에 막혀 버린다.

행신역 앞은 출퇴근 시간에 이동 시민이 무척 많다. 이 구조물로 인해 행신역 앞 인도가 절반으로 줄어드니 행인들의 통행은 크게 방해를 받는다. 게다가 이 구조물의 위치는 행신역 삼거리 횡단보도 바로 앞이다. 출근시간에 서둘러 뛰어가는 시민들이 부딪힐 수 있고, 자전거와 킥보드 이용자도 많아 사고까지 발생할 수 있다.

행신역을 오고가는 시민들은 왜 이 구조물을 여기에 설치하였는지 어이없어 한다. 일부 행인들은 고양시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거냐, 예산을 이렇게 사용해도 되는거냐며 항의도 한다. 이 사업을 담당한 부서가 행신역 현장에 한번이라도 와보았을까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탁상행정의 대표 사례이다. 이 구조물로 인해 그린모빌리티는 희화화되고 대신 고양시와 주민 사이에 갈등만 증대되고 있다.

아무도 모르게 진행된 공사

이 구조물이 설치되는 과정도 문제이다. 왜 이렇게 비밀리에 공사가 진행되었을까?. 6월 말에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행신역을 오가는 행인들은 이 구조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어디에도 공사 내역이 공지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인 행신2동 주민센터, 주민자치회조차도 무슨 공사인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7월에 취임한 고양시 시장실도 공사 시작을 몰랐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마침내 8월 초에 구조물의 실체가 알려졌다. 구조물 내부에 자전거 거치대가 들어서면서 자전거보관소라는 게 드러난 것이다. 아무리 그린모빌리티 사업이라지만 역 광장의 공공성과 인도의 안전성까지 훼손하는 공사를 아무런 공지와 협의도 없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추진해도 되는건지 주민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이다.

이 구조물이 자전거보관소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공사의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었다. 현재 행신역 공간에는 인도의 화단을 따라 자전거 거치대가 즐비하게 놓여 있어 나름 자전거와 행인의 흐름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다.

그런데 고양시는 이 조화를 깨고 애초 자리에 있던 30대분 자전거 거치대를 철거하고 1층과 2층에 각 25대씩 50대를 수용하는 대형 철골 구조물을 만든 것이다. 예전 거치대와 비교하면 인도 공간을 대폭 차지하면서도 늘어나는 보관대수는 20대에 불과하다. 게다가 2층 거치대는 사용이 불편하여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더 수용하는 보관대수는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여기에 투입된 예산이 1억 6천만원이니 더욱 말문이 막힌다.

'공사 중단, 즉각 이전' 활동에 나선 지역 주민들

주민들은 난감했다. 말도 되지 않는 구조물이었지만 이미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상황이었다. 곧 자전거보관소가 완성되고 이용하는 사람들도 생길텐데 과연 고양시가 우리 뜻을 반영해줄까?

쉬운 일이 아니란걸 알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행신2동 주민자치회가 먼저 나섰다. 우리 마을의 자랑인 행신역 앞에서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고 안전까지 위협하는 '흉물'을 허용하지 말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주민자치위원들은 이 구조물이 자전거보관소라는 사실을 알게 된 8월 4일 당일부터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피켓팅을 시작했다. 8일에는 폭우를 맞으며 기자회견까지 가지며 고양시에 공사 중단과 즉각 이전을 요구하였다.

고양시가 답변을 보내 왔다. '우선 완공하여 사용하고 이후 주민, 전문가 등과 함께 대안을 논의해 보자'는 내용이다. 주민들의 한탄과 분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아니 무시한 답변이었다. 결국 8월 18일, 전체 주민들의 힘을 모으기 위하여 “행신역 부적합 구조물(자전거보관소) 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대책위는 여러 홍보전단지, 영상물을 만들어 지역사회 주민들 및 행신역 이용자들과 공유하고, 22일부터는 주민서명도 시작하였으며, 8월 30일에는 1차 678명의 주민서명을 고양시 시장실에 전달하였다.

▲ 주민들이 행신역 자전거보관소 구조물 앞에서 주민 서명 활동을 벌이는 있다. (사진제공: 대책위)

기후위기 시대 그린모빌리티, 시민들과 함께 나아가야

기후위기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그린모빌리티는 무척 중요하다. 정부, 지자체가 자전거 이용을 독려하는 사업을 펴는 것도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린모빌리티에서 실질적 주체는 시민들이다. 시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사업 방식은 오히려 그린모빌리티 취지마저 훼손해 버린다. 지역에서 주민들이 참여하고 활용하는 방식으로 그린모빌리티, 자전거 이용 활성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고양시에게 촉구한다. 잘못된 행정은 시정되어야 한다. 자전거보관소를 이전하려면 추가 비용이 들겠지만 전화위복의 사례로 삼아야 한다. 이 부적합 구조물을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이전한다면 주민과 지역사회를 배제한 채 추진하였던 그린모빌리티 사업을 주민협치로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는 단지 고양시, 행신역에 머무는 사례가 아니다. 지금 전국적으로 추진되는 지역사회 그린모빌리티 사업의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일이다. 여기서 얻어지는 주민협치는 구조물 이전에 소요된 비용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소중한 것이다. 조속히 고양시에서 지자체와 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기후위기 시대 그린모빌리티 사업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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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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