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내 '사당화 논란'을 일으킨 '권리당원 전원 투표 우선' 당헌 신설이 무산됐다. 사실상 눈앞으로 다가온 '이재명 지도부'의 독주에 벌써 제동이 걸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민주당 중앙위원회는 24일 온라인 투표를 진행한 결과, 556명의 중앙위원 가운데 430명이 투표에 참여했으며 이 가운데 절반에 못 미친 268명이 찬성(47.35%)해 당헌 개정안이 부결됐다고 밝혔다. 중앙위 가결 요건은 '투표 참여자 과반'이 아닌 '재적 과반'이다.
이날 투표 안건으로 올라온 당헌 개정안 가운데에는 '당의 최고대의기관인 전국대의원대회 의결보다 권리당원 전원투표를 우선한다'는 14조 2항의 신설, '이재명 방탄' 논란이 일었던 당헌 80조 '기소시 자동 직무정지' 조항 일부 개정 등이 포함됐다.
이 가운데 '권리당원 전원 투표 우선' 신설 문제는 중앙위 투표를 목전에 두고 당 내 논란이 지속되고 있었다. 해당 당헌이 신설되면, 권리당원 100분의 10 이상의 서명으로 합당, 해산을 비롯한 특별당헌·당규 개정과 개폐 안건을 발의할 수 있게 된다. 중앙위원회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의 의결로 부의한 안건도 권리당원 전원 투표가 가능해진다.
당 지도부는 지난 19일 14조 2항 신설안을 당무위원회에서 의결한 후 "기존에는 권리당원 전원투표가 당헌에 명시돼있지 않아 규정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당무위 의결 이후 당 안에서는 '강성 지지층에 의해 당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재명 당 대표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이 지난 대선을 거쳐 권리당원으로 대거 유입된 상황에서 권리당원 투표가 당의 최고 의사결정 통로가 될 경우 사당화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용진 당 대표 후보와 조응천 의원을 중심으로 25명의 의원들은 지난 23일 오후 변재일 중앙위 의장과 우상호 비대위원장에게 14조 2항 신설안에 대한 투표 연기를 요청했다. 참여 의원들은 투표 연기 요청 사유에 대해 "당헌 신설 추진이 절차적, 내용적 논란이 있으며 충분한 공론화를 통한 총의 수렴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우 위원장은 그러나 24일 비대위 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표시한 우려는 받아들이지만 그렇게 우려할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일축하고 중앙위 투표를 강행했다.
하지만 결국 5시간에 걸친 온라인 투표가 끝나고 오후 3시 '부결'로 결론이 나자, 지도부는 당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신현영 대변인은 중앙위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나 "부결될 것은 예상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면서 "흩어진 당헌·당규를 모으는 과정서 토론이 부족했음을 인정한다"고 했다.
비대위는 이번 부결 사태가 14조 2항에 대한 논란에서 기인했다고 보고, 14조 2항을 제외한 나머지 당헌 개정안에 대해선 다시 표결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나머지 당헌 개정안은 오는 25일 당무위원회 의결을 거쳐 26일 다시 중앙위 투표 안건으로 올라갈 예정이다.
신 대변인은 이날 오후 4시 긴급 비대위 회의를 진행한 후 기자들과 만나 "80조에 대해서는 많은 토론과 논의가 있었고 더 나은 대안을 마련해 우리 내부에서의 합리적 결정이라 말한 만큼. 그 부분에 대한 당내 논란, 이견은 크게 없을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헌 80조 개정안은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전당대회 준비위원회가 해당 당헌의 '기소 시' 부분을 '하급심 유죄 판결 시'로 완화하는 방안을 냈다가 당 내 반발에 부딪혔었다.
이에 비대위는 80조 1항 내용은 그대로 유지하되, 3항에서 정치 탄압의 사유 등으로 제재 예외 적용을 판단하는 주체를 윤리심판원에서 당무위원회로 변경하도록 하는 절충안을 마련한 바 있다.
박용진 "민주당에 민주주의 살아있어" vs 친명계 "당원 요구 받아들여지지 않아 두려움 느껴"
14조 2항 신설안 반대 움직임을 주도했던 박 후보는 이날 '부결' 결과에 대해 "민주당 안에 민주주의가 살아있음 보여주는 투표 결과"라면서 "오늘 부결 결과가 민주당 바로 세우기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박 후보는 이날 중앙위 발표 직후 국회 소통관을 찾아 "국민의 상식, 민주주의 기본 원칙, 그것에 대한 중앙위원의 확고한 인식을 보여준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80조 관련 개정 논란, 이번 당헌 신설 논란 과정에서 민주당 안에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하고자 하는 건강함이 훨씬 더 많이 자리 잡고 있단 점이 확인됐단 것을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차분하게 어떻게 당원들의 직접 민주주의, 당원 참여를 확장시킬지 고민하고 제도적 정비를 해나갈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면서 "지도부도 그런 점에서 중앙위원 투표 결과를 깊이 숙고하고 받아들이길 바란다"고 했다.
박 후보는 다만 이날 투표 결과가 전당대회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느냐는 질문에는 "선거 유불리, 그런 건 크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면서 "단순히 전당대회에서 표를 얼마나 얻을 것이냐, 앞설 것이냐, 그런 문제가 아니라 제가 전당대회 초기부터 노선과 정체성에 대해 논쟁하겠다고 했고, 그에 충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날 중앙위 표결 결과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내놓고 있지 않다. 이 후보는 전날 오후 문화방송(MBC) <100분 토론>을 통해 진행된 당 대표 후보자 토론회에서는 14조 2항 신설과 관련해 "당원투표는 많이 할수록 좋다"면서도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한 바 있다.
친(親)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장경태 최고위원 후보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원 중심 정당, 검찰이 좌지우지 할 수 없는 정당으로 가고자 하는 노력이 중앙위 부결로 막혔다"면서 "당원의 요구와 명령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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